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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사명과 생명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1. 19. 14:55

문학의 사명과 생명

 

                                                   나호열( 시인)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일이 힘겹고 팍팍한데 시를 음미하고 소설을 읽는 일이 경제 효용 법칙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즉응하는 감각적 즐거움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에 문학이 더 이상 해방구가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꼭 들어맞는 분석이라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여전히 주말 신문에는 시집, 소설집의 리뷰가 실리고 있으며, 방송에서도 문학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음을 볼 때 아직도 문학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월간, 격월간, 계간으로 발행되는 문학지는 수를 헤아릴 수 없고, 그 문학지에 게제되는 작품 수 또한 만만하지 않은 양이다.

그러므로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언명의 진위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수요가 형성되지 않은 공급 과잉을 '문학은 아직 살아있다'는 확신으로 얼버무려서는 더욱 해답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의 실체는 문학의 수요자와 공급자, 양측의 문제일 수도 있고 문학이 소통되는 방식과 통로의 문제일 수도 있다.

먼저 수요자의 문제는 문학의 수요자가 누구이냐는 문제와 직결될 것이다. 즉응하는 감각적 즐거움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누구인가? 매스미디어가 방출하는 유용한 정보와 그 정보가 주는 쾌락 너머에 자리잡은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궁극적 아름다움은 존재하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에 혼쾌히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영토의 중요성을 잠재적 수요자에게 활착시키지 못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문학의 공급자 측면에서 이 땅의 시인, 소설가들은 마땅히 작가정신으로 우뚝 서야 한다. 수요자의 심장을 겨눌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수요자와 무엇인가가 다른 정신세계를 구축해야 하고 老莊이 설파하는 狂人의 경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인, 소설가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창조와 모험정신을 팽개치고 붓끝으로 일세를 풍미하겠다는 자세는 자기 위안과 과시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자폐의 태도는 독자를 문학으로부터 떠나게 만들고 문학의 의의를 왜곡하는 병폐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매체인 문학지의 역할이 충분하지 않을 때 문학은 살아남기 힘들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가상 공간의 위력이 증대하는 현실에서 활자 매체의 살안기 전략은 더욱 치열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예술의 본령이 창조 즉 새로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흘러간 것이라고 해서 무효용, 무가치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고전주의니나 낭만주의의 작품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 예술성은 오히려 예술의 다양성으로 풍성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자신들이 푯대로 세운 경향을 굳세게 밀고 나가거나 아니면 개방과 포용의 정신으로 다양한 상차림을 마련하는 일에 선후를 따지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패권주의에 함몰되지 않는다면 문학지의 융성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또 하나 문학지에서 배출하는 신예시인, 작가들의 함량과 성숙에 엄정한 잣대를 가져야 하는 일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학지의 운영상의 어려움을 신인들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상쇄하거나 勢를 불리는 용도로 왜곡시킬 때 문학지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할 수 밖에 없다. 문화의 핵심은 예술에 있고, 예술의 진수는 문학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 문학의 위기는 복합적이다. 학교 교육의 파행으로 빚어진 교양에 대한 인식부족, 절차탁마를 거치지 않은 시인, 작가들의 작가정신, 문학지의 부실한 매개 역할이 서로서로를 헐뜯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한다. 충실한 문학 애호자들이 증가하고 있고, 원로, 중진, 중견, 신예 시인 작가들이 폭넓게 포진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특성과 고집을 가진 문학지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이 말은 유효하다

 

문학이여!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