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집중력과 직관
매달 《소요문학》의 월평을 쓰는 일은 즐겁다. 즐겁기도 하면서 그만큼 괴롭다. 새 작품을 기다리는 기쁨,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처럼 이것저것 단점을 들추어내야 하는 괴로움이 동시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칭찬은 아끼지 말고 싫은 소리는 꾹꾹 마음에 눌러 두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 또한 쉽지가 않으니 어떤 때는 내 도량의 부족함을 탓하기도 한다.
최근 《소요문학》은 매달 기획물을 선보이고 있다. ‘동두천’, ‘이름’ 이번 호에는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 1호’ 이다. 이런 기획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해내는 연습이 저절로 아름다운 글을 이루는 첩경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격려의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다. 《소요문학》회원들은 가정을 꾸려 나가는 분들이기에 글 쓰는 시간을 따로 내기도 힘들고 오래 생각을 곰삭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부족한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매달 한 권의《소요문학》은 매우 빛나는 결실일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글의 틈새를 엿보게 되고 헤집어 보게 되는 것은 《소요문학》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 역할을 자임했으니 이번 달에도 쓴 소리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편집 상의 기법인지는 몰라도 산문들의 행 나눔이 어법에 맞지 않는다. 여러 번 지적한 바도 있지만. 산문인지 운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은 요즘의 형식 파괴, 실험의식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운문이나 산문이나 엄격히 지켜야 할 기본 뼈대가 있는 것이다. 말미에 붙은 김형경 작가의 글과 산문으로 수록된 작품들의 구성을 잘 살펴 보기를 바란다. 형식의 파괴에는 반드시 그러해야 할 필연적 논리가 자리 잡아야 하고, 그러한 실험성은 글의 내용과 부드럽게 융합이 되어야 그 취지를 살리는 것인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운문형식 행 나눔의 당위성이 찾아지지 않는다.
내 인생의 보물 1호 특집에서는 남상례 회원의 「미용실 옆 한 켠에 있는 쪽방」이 눈에 띄었다. 눈에 띄었다고 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벗어나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마음의 부드러움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시인가? 아니면 산문인가? 시로서 읽기에는 압축성과 리듬감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산문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이 글을 쓴 남상례 회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문의 형식으로 재구성 해보겠다.
미용실 옆 한 켠에 있는 쪽 방
남상례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1번은 미용실 한 켠에 1 평 남 짓 만들어진 쪽 방입니다
10 여 년 넘게 일하면서 힘들 때 변변히 쉬지 못하고 미니 소파나 탁자에 기대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 기회가 있어서 조그만 방을 만들었습니다
나의 방은 아주 작아서 고급스럽고 큰 물건은 넣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작아서 꾸미지 않는 게 깨끗하고 단정합니다 발을 쭈욱 뻗으면 싱크대 밑으로 발가락들이 살짝 들어가지만 누워 예쁜 도배지 형광등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좋습니다
작은 방이 나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힘들 때 잠깐씩 몸을 눕게 할 수 있어 일에 의욕이 더욱 생깁니다 작은 공간을 손님들과 식사와 차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자리로 만들려고 합니다
살아가는 모습도 모양도 너무 크게 그리면 채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사람살이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설계해서 따뜻하게 온기를 불어넣고 겉치레가 아닌 내면이 채워져 흘러나오는
여유로 살아가면 좋을 듯 싶습니다
쪽 방에 옹크리고 있으려니 오늘따라 방축골 시골집이 그립습니다 5남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시절이....세상의 불빛은 점점 더 요란하고 현기증 나도록 어지러운데 왜이리 조그만 쪽 방의 형광등 불빛이 정겹기만 한지...
지금 나에게 소중한 1번은 미용실 옆 한 켠에 있는 작은 쪽 방입니다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요는 시가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형식적 규칙이 있고 산문이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글 구성의 틀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 보고 싶은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다른 회원들의 글 보다 남상례 회원의 글이 가슴에 와닿는 것은 글을 예쁘게 꾸미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어찌 보면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일일지도 모를 그런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것에 있다. 글의 내용과 그 글을 담는 그릇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글에는 글의 뼈대가 보이고 그 뼈대를 감싸 안는 시유의 살이 보드랍다. 글의 깊이는 뼈에 닿고 글 읽기의 즐거움은 살에 해당되는 문체에 있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오래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는 여유를 갖기는 힘들다. 그러나 작가나 시인들은 그들이 포착한 글감이나 시상을 그려내는데 직관으로 포착하고 집중해서 표현해 낸다. 이 말을 풀어서 이야기 한다면 쓰고자 하는 주제나 소재에 대해서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낼 수 있고, 그 글의 얼개를 순식간에 장악하여, 글의 구성에 있어서 작가나 시인의 의도가 남김없이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습작기에 있는 분들의 글과 이미 작가의 반열에 서 있는 사람들의 차이는 얼만큼 직관력이 강력하며, 자신이 써야 하는 글의 내용을 집중해서 파악하고 있는가에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오늘은 이만큼 생각하고 그 다음 날 그 생각으로부터 조금 더 나아가고 하는 식의 사유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단숨에 글을 쓰는 연습을 권하고자 한다. 시가 되었던 산문이 되었던, 한 걸음에 작품을 완성하는 연습이 부단히 계속되다 보면 잘 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의 구분이 확연해 지고 잘 되지 못한 작품은 계속 수정해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전순선 회원이 계속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욱 열심히 습작에 임해 주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지적을 드리고자 한다.「11월의 거리」는 요즘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소녀 취향의 여린 서정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결구가 너무 상식으로 흘러가 버린 단점이 보이고 특히 ‘11월의 문을 입장한다 ’는 표현은 어법에 맞지 않음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란다. 이는 ‘11월의 문으로 입장한다’로 바꾸거나 ‘11월의 문으로 들어선다’. 또는 11월의 문 안으로(문 밖으로)들어선다(나선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 번 호에서 언급하고 싶은 시는 장문영 회원의 「신호등」이다.
끊임없이
헐떡이며 달려가는 삶
느긋하고 여유롭게
한가한 삶은
얼마나 멋이 있을까
차선처럼
잠시 쉬어가도록
삶의 정지선은 없는 것일까?
속도위반이라고
경고하는
삶의 무인 카메라는
없을까?
그 길로 가면 맞다 고 하는
이정표는 없는 것일까?
바로 가라 돌아가라는
삶의 신호등은 없는 것일까?
사실 이 작품은 눈에 띄는 비유나 폭발적인 상상력이 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이승하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좋은 시를 살필 때의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
째는 새로움이 있어야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하며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 중의 하나라도 갖추고 있다면 우리는 그 시를 일러 좋은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시를 구성하는, 표현하는 새로움은 없다. 아주 전통적인 수법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감동이 하늘만큼 충만되어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시는 바로 감동과 깨달음 그 사이에 존재한다. 일상 속에 놓여져 있는 신호등과 우리의 삶을 대비하면서 독자들에게 작자의 깨달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깨달음이라고 으스대지 않고 바로 가라 돌아가라는 /삶의 신호등은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색다른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아니고도 자신의 깨달음을 넌지시 과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얻고자 하는 어법을 구사함으로서 넉넉한 사유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생각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 사명감, 과시욕 등이 어우러져서 글을 망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운동선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되듯이 글을 쓰는 우리들에게는 조급해하지 않고 욕심 내지 않는 부드러움이 함께 해야 한다. 글을 쓸 때는 집중하자.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유유자적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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