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깃발이었다
겨울이 되어야 완강해지는
나무의 팔뚝 위에
하얗게 빛나며 흔들리는
함성을 지운 깃발이었다
저 높은 나무를 기어올라
허물을 벗은 뱀은 어디로 갔나
수없이 허물을 벗겨내어도
얼룩진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주름과 주름 사이에 끼어 돋아나는
몸의 슬픔
결코 가볍지 않을 터인데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짐승은 위험하다
느닷없이 밧줄로 휘감기는
바람도 뱀의 허물임이 틀림없는데
울고 있는데 웃지 말라고
내 입을 봉하려는 너는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