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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밀린 삶이라고 얕보지 마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8. 10. 26. 11:12

떠밀린 삶이라고 얕보지 마라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다시 찾은 것은 12년 만의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 고흐 미술관은 평일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전 세계를 통틀어 한 사람의 화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으로 이만한 규모와 내용을 갖추고 있는 곳은 더 이상 없다. 그만큼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요, 현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이웃 일본은 유독 고흐에 대해 광적이다. 일본은 고흐가 그들의 목판화, 즉 우키요에의 영향을 적잖게 받았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자부심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왜 고흐에게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고흐의 삶은 한마디로 '떠밀린 삶'이다. 매 순간 그는 몸부림쳤지만 세상은 그를 잔혹하리만큼 떠밀었다. 고흐는 그렇게 서른일곱 해를 살았다. 그중 10년 남짓한 기간 그림을 그렸다. 그전에는 화랑 점원이었고, 이미 남과 약혼한 하숙집 딸을 짝사랑하다가 좌절하기도 했다. 정신 차려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되려 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그렇게 떠밀려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고흐다. 어쩌면 우리가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는 까닭은 그도 우리처럼 늘 떠밀린 삶을 산 인간이었기 때문이리라.


# 고흐의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그의 그림 속에 우리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느낌이다. 특히 1890년 5월부터 7월 27일 고흐가 자신의 삶을 권총 자살로 마감할 즈음까지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 것은 단지 연민이 아니었다. 그는 떠밀릴 대로 떠밀린 삶의 그 지점에서조차 싸우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처절한 싸움이었다.


# 생전에 그의 그림은 닭장 문으로 쓰이고, 사격연습용 표지판으로 쓰였을 만큼 푸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그림은 가장 값진 그림 중의 하나가 됐다. 단지 값이 비싼 그림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이는 그림이 된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기꺼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 단적인 증거다.


# 고흐의 그림은 떠밀린 삶의 지점에서조차 처절하게 싸운 삶의 위대한 흔적이다. 그런 그의 그림을 반 고흐 미술관 다음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다. 네덜란드의 국립미술관으로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을 간 후 버스로 갈아타고 20분을 더 가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고흐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데 호헤 벨뤼베 국립공원'의 숲길을 따라 15분 남짓 내달려야 갈 수 있는 숲 속의 미술관이다. 그곳에서 만난 고흐는 더욱 특별했다. 특히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이란 제목의 그림을 보노라니 별빛과 달빛 사이의 시골길이 시공을 뛰어넘어 내 맘에 길을 내고 있었다.


 #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나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석양 녘의 '고흐의 숲' 길을 한 시간 넘게 내달렸다. 아마도 평생에 다시 갖기 힘든 감동의 오후였다. 자전거를 타고 석양의 숲길을 달리며 생각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도 떠밀린다. 때로 스스로의 삶을 끊도록 강요당할 만큼. 하지만 잊지 말자. 삶은 어차피 그 떠밀린 바로 그 지점에서의 처절한 싸움임을. 고흐는 떠밀린 그 지점에서조차 죽도록 그렸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삶의 위대한 작품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려라. 주저하지 말고. 싸워라. 처절하리만큼. 그리고 삶은 떠밀린 지점에서 끝이 아니라 거기서 다시 시작임을 결코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