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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가 직접 찍은 사진과 그의 친구들이 찍은 마그리트의 사진들이 대거 소개됩니다. 이 사진 속에는 마그리트의 아내 조제트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의 친구들이 마그리트의 그림 속 한 장면을 유쾌하게 연출해내고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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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1925년 경부터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화면에 도입해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시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내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개척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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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이전에는 가구와 벽지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했고, 화가로 유명해 진 이후에도 종종 광고와 장식미술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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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탐구에서 잠시 벗어나 인상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표현적인 붓 터치를 도입한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이 시기의 작업은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저항으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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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마그리트는 야수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거친 표현성을 도입해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작업을 선보입니다. 불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슈는 포비즘(야수주의)의 포브(야수)를 패러디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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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 이후에 마그리트는 다시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합니다. 마그리트는 그 이유를 아내인 조제트가 이전의 화풍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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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1930년대의 화풍으로 복귀하면서 그 당시에 그려진 작품들을 약간씩 변형시키거나 유화를 과슈로 다시 그리는 식으로 스스로 자신의 회화를 복제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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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언제나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말년인 1960년대의 작품에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마그리트의 철학적 회화관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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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 애호가였던 마그리트는 1956년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그의 영화들은 집과 화실을 배경으로 아내인 조제트와 친구들의 유쾌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무성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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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마그리트는 미국의 유명 사진 작가 듀안 마이클에게 그의 일상과 작업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개방합니다. 마이클의 사진은 실재와 상상의 세계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마그리트의 회화와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