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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르네 마그리트 작품감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7. 2. 1. 21:25



 

   

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가 직접 찍은 사진과 그의 친구들이 찍은 마그리트의 사진들이 대거 소개됩니다. 이 사진 속에는 마그리트의 아내 조제트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의 친구들이 마그리트의 그림 속 한 장면을 유쾌하게 연출해내고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1925년 경부터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화면에 도입해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시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내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개척하게 됩니다.

 



   

마그리트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이전에는 가구와 벽지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했고, 화가로 유명해 진 이후에도 종종 광고와 장식미술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탐구에서 잠시 벗어나 인상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표현적인 붓 터치를 도입한 작품들을 제작합니다. 이 시기의 작업은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저항으로 해석됩니다.

 



1948년 마그리트는 야수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거친 표현성을 도입해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작업을 선보입니다. 불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슈는 포비즘(야수주의)의 포브(야수)를 패러디 한 것입니다.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 이후에 마그리트는 다시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합니다. 마그리트는 그 이유를 아내인 조제트가 이전의 화풍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1930년대의 화풍으로 복귀하면서 그 당시에 그려진 작품들을 약간씩 변형시키거나 유화를 과슈로 다시 그리는 식으로 스스로 자신의 회화를 복제하기도 합니다.

 



마그리트는 언제나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말년인 1960년대의 작품에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마그리트의 철학적 회화관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평소 영화 애호가였던 마그리트는 1956년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그의 영화들은 집과 화실을 배경으로 아내인 조제트와 친구들의 유쾌한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무성영화들입니다.

 


   

1956년 마그리트는 미국의 유명 사진 작가 듀안 마이클에게 그의 일상과 작업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도록 자신의 집을 개방합니다. 마이클의 사진은 실재와 상상의 세계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마그리트의 회화와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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