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오늘 영면에 드셨습니다. 2025.09.19 오전 6시
1996년 제가 봉직하고 있던 경희대학교에 초청강연을 부탁드리면서 이웃 동네에 모신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선생님 평전을 쓰겠다고 말씀드리고 집필중이었는데 아쉽습니다
계간《시와 사람》2025년 가을호에 신작시 5편과 저의 작품론을
게재했는데 다시 그 글을 찾아 읽으며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이생진 신작시 5편
생(生) 1
사노라면
웃음보다
울음이 많으니
참기 힘들면
시(詩)를 쓰라
시로 태어난 서러움은
아무리
눈물을 뭉쳐놔도
아름다우니
-
생(生) 2
365일
웃음꽃인 그대에게도
말 못하고 흘리는 눈물이 있었군
바다와 같은 눈물
그것이 진한 뜻은
시(詩)로 바뀌었을 때
아름다우니
모두 바꿔 놓는 작업
생(生)은 한땀 한땀
그렇게 영위했던 거
어머니도
할머니도
-
성하신당 (聖霞神堂)
신당의 전설이
서러워 울다 못해
시(詩) 한 수 쓰고 돌아선
여인도 세상 떠나고
다른 시인이 모여 이야기하다
간 자리
물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끊이지 않고
밤에 달과 별 따라
바닷가를 돌다
잠이 들었다
나 보고
태하에 들어온
최고 고령자라며
시 한 편이라도 더 쓰라고
술을 권한다
성하신당 : 울릉도 서면의 신당
-
몽유도원 (夢遊桃源)
취한다는 거
복사꽃 밑에서
폭삭 취한다는 거
그건
꿈보다 더 황홀해서
바위도 멀컹멀컹 터질 것 같고
복사꽃 잎이
모두 입술이 되어
덤비는구나
몽유도원
-
그래
그래 내가
돌담 위를 자유롭게 넘어가
바다를 보는
보리수나무 사이로
문섬과 범섬을 보는 것은
큰 사람을 찾으려 하거나
큰 인연을 구하려는 것은 아니고
바위에 몸을 부딪쳐
바람 소리를 내는
그 바람의 넋을 보려는 것이지
안 봐도 그만이지만
-
이생진 李生珍
충남 서산 출생(1929), 현대문학 (1969)으로 등단. 시집 『산토끼』(1955)이후 『나도 피카소처럼』(2021)까지 40권, 시선집 『시인과 갈매기』 등 3권, 기타 시화집, 산문집 및 편저 다수. 대표시집으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 윤동주 문학상, 상화시인상 등 수상. 제주도 명예 도민, 신안군 명예 군민.
-
추수 秋水의 심장에서 뿜어 올린 시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좀 더 인생의 골수까지 파고드는 시
좀 더 온 삭신이 약동하는 시
좀 더 말하는 시
- 시집 『산토끼』 서문
이생진 시인은 97세에 이르는 현재까지 펜을 놓지 않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섬의 시인’으로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던 6, 70년대부터 천여 개의 섬을 탐방하면서 섬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시로 알리는데 힘을 기울였다. 한 예를 들면 저 남쪽 바다 끝 거문도를, ‘거문도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읊으면서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린다’(시집『거문도』서문, 1998 참조)는 식이다. 섬과 바다를 표제로 삼은 시집은 이외에도『바다에 오는 이유』 (1972),『섬에 오는 이유』(1987),『하늘에 있는 섬』(1997),『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2000),『독도로 가는 길』(2007),『우이도로 가야지(2010),『실미도, 꿩 우는 소리』(2011),『맹골도』(2017) 등이 있는데 그 중의 백미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을 들 수 있다. 이 시집은 1978년에 초판 500부를 신도출판사에서 발간이래, 개정 1판을 1987년 동천사에서, 개정 2판을 2008년 우리글에서 펴냈는데, 2023년 기준 6판 4쇄를 넘어서게 되면서 시인 이생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매개媒介가 되었다. 이는 섬이 우리의 심상에 외로움이나 그리움, 기다림과 같은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거니와 급격한 산업화로 말미암은 풍요가 오히려 사람을 계층화하고 물신物神에 삐지게 하는 세태를 정화하는 낭만적 시풍에 얹으므로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 이생진의 바다와 섬의 시편들은 단순히 시인이 지니고 있는 낭만저 기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편협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어떤 발문이나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 어떤 시류時流 나 시류 詩類에 영합하지 않는 시인은 첫 시집 『산토끼』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죽어도 아니다. 한 번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시의 희생은 수없이 하더라도 .....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없고 시만 있는 고독은 시와 함께 그 고독도 싫다. 그 고독도 시도 사람이 있는 고독이고 사람이 있는 시여야만 한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일관되게 평생 시업을 이루는 시관으로서 삶을 달관하거나 교훈의 메시지로서의 시가 아니라 필연적인 존재의 고독을 껴안고 그 고독마저 사랑하려는 열정으로 뿜어내는 깊은 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리운 바다 성산포』개정판에는 해설이 붙어 있다.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인 김석준은 「포월로서의 바다」를 통해 이생진 시를 관통하는 시론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의 이생진論은 시인의 평생 시업詩業을 규명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에 의하면 이생진의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삶의 공간이다.
성산포에서는
설교가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 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 「설교하는 바다」 전문
이 글의 서두에 쓴 말을 상기해본다. 바다는 이렇게 생명 그 자체이면서 사람에게 전언 傳言한다. ‘좀 더 인생의 골수까지 파고드는 시, 좀 더 온 삭신이 약동하는 시좀 더 말하는 시’는 시인이 형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시인은 바다의 전언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한시도 쉬지 않는 바다의 약동은 시인의 심장과 맞닿아 있다. 바다와 발붙이고 살고 있는 뭍의 세계 또한 바다이다. 김석준은 이렇게 말한다.
시인 이생진에게 바다는 절대다. 그것은 경험적 삶의 근거이자, 생과 사가 공동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바다는 존재의 본향이다. 하여 바다는 인륜적 실체이자, 인륜적 삶을 하나의 구체적 삶으로 치환시켜 시인의 삶 자체를 바다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이와 같은 본질적이면서 확장된 세계로서의 바다는 수많은 섬을 품에 안고 있다. 고립되어 있거나 아니면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의 섬은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섬에는 사람이 있다. 인공 人工을 거부하면서 자연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면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당연시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확인을 통해서 세속에 알게 모르게 물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사기 치는 일 같아 부끄럽다고 한다. 노심자 勞心者인척 하면서 노력자 勞力者의 노동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
시집 『섬에 오는 이유』 후기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가 시인이 섬에 오는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강씨가 내미는 술잔을 받자,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의 티 없는 소리를 듣자. 이 섬에서 평생을 살았어도 외롭다는 소리 한마디 안 했을 강씨의 주장을 듣자. 내 시보다도 몇 배 깨끗하고 진솔한 소리. 글 한 자 배운 일은 없어도 남을 해치지 않고 불편 없이 살았다는 강씨. 너는 하루 종일 처박혀서 글자만 쓰고 있는데. 안다는 놈. 너는 뭐냐. 갈매기 눈이 그의 눈이고 그의 눈이 갈매기 눈이다. 강씨는 웃는다. 자기는 이름 석자도 다 알지 못하고 가운데 글자가 새 봉 자라는 것만 알지 쓸 줄도 모르는데 너는 글자를 얼마나 알기에 하루 종일 써도 남느냐 한다. 새 봉 자 하나만 가지고도 60년을 살았다는 그에게 나는 시 쓰는 사람이요 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시 쓰는 일이 강씨 앞에서는 왠지 부끄럽다. 이 섬은 강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이 바다는 강씨의 술이지 강씨의 시는 아니다. 나는 강씨가 내미는 술잔을 받는다. 그리고 그 술맛이 내 시보다 더 진한 것을 안다.
다시 상기하자면 시인 이생진은 바다의 포괄성 包括性을 존재의 근원으로 인식한다. 섬은 그 바다가 내놓은 개별적 존재이면서 바다에 몸을 내놓은 사람이다. 위 글의 강씨처럼 무식해도 당당하게 위선의 탈을 쓰지 않은 의식의 내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생진 시의 전말을 바다와 섬에 국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40권의 시집은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서 그가 일관되게 이룩한 삶의 명제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김사갓, 고흐, 피카소로 빙의憑依 되어 길 떠남을 주저하지 않는다. 김병연의 비극적 삶의 족적을 따라가고『김삿갓, 시인아, 바람아』(2004), 미치고 싶어 반고흐가 되기도 한다.『반 고흐 , ‘너도 미쳐라』(2008). 시인은 고백한다. 80이 되어서도 삶에 희의가 든다고 하면서 ’예술은, 미술이고, 음악이고, 문학이고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미침‘은 열정이고, 열정은 사랑이다. 이 모두는 하나이다.
사랑은 아름다워
실패해도 아름다워
고흐를 달갑게 맞아들이던 가셰박사가
딸이 고흐를 사랑하는 기미를 알아채고
고흐는 정신 질환에 불치의 병이 있는 화가라고 말하자
그건 아버지 마음이라고 뿌리친다
스물 한 살의 맑은 마르그리트
곱게 단장하고 피아노를 치는 선율과
예쁜 드레스로 꽃밭에 서서 그려달라는 연정이
고흐를 향한 화살인 줄 아버지는 몰랐다
틈만 있으면 스며드는 사랑의 핵
고흐는 마르그리트의 가슴에 핵을 묻었다
- 「가셰 박사의 딸」전문
몇 달 전 이생진 시인은 내게 편지 한 통을 보내주셨다. 요즘은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으셨다. ’나호열 시인님! 나는 허망한 생각에 이 책을 손에 든 채 생각도 말도 이어나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가까워진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에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건필을 바랍니다. (2025. 3월 26일)‘ 톨스토이는 말년에 풍요로운 생활을 정리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생애를 마감했다.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톨스토이는 그 이치를 알고 실행에 옮겼는데, 무엇이 허망하다고 하는 것인가? 어줍잖은 추측을 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 남겨두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이 내게 있는가? 하는 허망함.
이제 다섯 편의 신작시를 읽는다. 윗글은 다섯 편의 시가 함유하고 있는 낭만적 허무와 연계된 진정한 시의 위의威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평생 시인이 추구했던 시의 염결성이 우리의 삶에 직핍하고 있음을 축약해 주고 있다. 모든 예술은 새로움을 향해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갱신하려고 하는 의식의 활동일 수도 있다. 1969년 김현승 선생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기 이전에도 다섯 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이는 시인이 추구해온 시작 행위가 사회적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는 시인들과의 교류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안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과의 어울림을 더 좋아했다. 진흠모 (이생진시인을 흠모하는 모꼬지 또는 모임의 약칭)모임은 2010년 이후 285번째 모임을 갖고 있다. 시를 낭독하고 즉흥 퍼포먼스를 함께 즐기는 모임에는 전국 각지에 시인들과 독자들이 찾아온다.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몰염진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은 당대 唐代의 시인 백거이 白居易의 시이다. 봄바람은 만물을 융성하게 하고 가을물과 같은 문장은 때묻지 않는다는 말은 종종 품이 넓어 장로운 사람과 대쪽같은 엄격함을 빗대는 의미로 회자되기도 한다. 시인 이생진은 가을물과 같은 문장(시)을 가꾸는데 평생을 바쳤다. 가을물은 농사철이 지나면 쓸모를 잊게 된다. 이생진의 시는 바다가 전하는 심장에서 뿜어나오는 가식이 없는 소리이다. 비유를 버린 비유는 곧바로 심장으로 육박해오는 노래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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