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從心을 성찰하는 풀꽃의 시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
이 세상은 전부 사랑이다
울지마라 세상아
- 「이미 사랑이다」
1.
은월銀月 김혜숙 시인의 시집『풀꽃의 기억』은『어쩌자고 꽃』(2018),『끝내 붉음에 젖다』(2022),『아득하고 멀도록』(2023)에 이은 네 번째 시집이다. 2013년 시단에 등장한 이후 이와 같은 시인의 부지런한 행보는 등단 이전부터 삶에 대한 궁구窮究와 시를 통한 자아실현의 의미를 모색해 온 결과물로서 의미가 깊다.
돌이켜 보면 시집『어쩌자고 꽃』에 대해 공광규 시인은 자연주의자의 시로 규정 지었고,『끝내 붉음에 젖다』를 관통하는 의미를 ‘친자연적 서정과 사랑의 현장성을 당차고, 돌올하게 형상해 내었다’고 하였으며(조명제 시인),『아득하고 멀도록』의 특징을 ‘21세기의 물량주의가 주도하는 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거룩한 망명자의 삶의 지대에 선 인간들의 모습을 진실되게 다루고 있다’고 이충재 문학평론가는 분석한 바 있다.
이를 종합해서 지금까지의 김혜숙 시인의 시관詩觀을 요약해 본다면, 인간과 자연의 이항 대립의 조건 아래에서 인간이 속한 자연의 무위無爲를 이해하고 그러한 자연의 무위함을 자신의 삶에 이식하려는 거듭된 노력을 직관적 시법으로 구현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시집『끝내 붉음에 젖다』해설에서 김혜숙 시인의 시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김혜숙 시인은 철 따라 피는 꽃에서 생멸에 연연하지 않는 순수純粹를 배우고 자신을 둘러싼 굴레 – 사회라 통칭하는 –를 만행卍行하면서 그 순수함이 하늘이 내린 본능에 따라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순수함과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본능이 형이상학적인 시간에 포섭될 때 “빵이 사람이고 빵이 눈물”이라는 거룩한 선물을 기꺼이 받아드는 것이다.
- 「시공時空을 꿰뚫는 생명의 길을 묻다」부분
2.
예술의 본질은 새로움(창조)에 있다. 전인미답 前人未踏 은 작품을 구성하는 기법이나 주제의 참신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경우에 있어서도 헤아릴 수없이 많은 정의가 명멸하고, 시대의 조류에 따라 그 양상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는 은유이다’라든지, ‘시는 이미지다’하는 정의는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수렴되는 것이다.
겉말(일상적 담화)속에 속말 -상징이나 반어와 같은 장치-를 통해 시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그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해오는 느낌 – 희노애락의 정서- 일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혜숙 시인은 정치精緻한 수사修辭보다는 직설적 어법으로 시를 꾸민다. 이는 차차 검토해볼 문제이기는 하지만 시인의 시 쓰기는 대중들을 향하여 있기보다는 시인 의식의 갱신에 있기 때문에 관찰자의 입장에 선 화자話者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 마디로 시집『풀꽃의 기억』이전의 시집들은 오로지 시인 자신의 돈독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도문이다. 대다수의 시인들이 그러하겠지만 김혜숙 시인도 생업에 종사하는 생활인이다. 그의 시가 현학적이지 않은 까닭은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과의 조우를 통해 삶의 신고辛苦를 겪는 그의 낮은 자세에 있다.
가진 것이 많아 으스대면서도 베풀지 못하는 친구를 향해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인생 그렇게 살지마」 참조)이야기 하고 싶고, ‘그럼에도 난 살아가는 방법이 아직 서툰 것처럼/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픈 것은 지면에서 / 울리는 삶의 안간힘 / 이 나이에도 참아내는 인내를 깨우치지 못한 탓일 것’(「맨발 걷기를 하면서」 끝 연)이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지나고 보면 다 꽃 피는 때였다’(「다시 꽃 피는 날」 첫 연)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런 깨달음은 추론된 의식의 발화가 아니라 모난 돌이 구르고 굴러 둥글어지듯이 생활 현장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조우에서 얻은 경험이기에 값지다.
시집『풀꽃의 기억』에는 많은 꽃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꽃에 대한 시인의 관점은 단지 완상玩賞의 즐거움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꽃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닌 생명력을 강조하려는데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꽃은 생식의 활동이고, 이 생식의 활동은 그 무엇에 침윤되지 않은 순수한 생명성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 그 자체에게 호오好惡, 또는 선악善惡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음을 시인은 깊이 인식하고 있다.
온통 관음증에 걸려도
누구나 범죄해도 용서된다
보려고 애쓴다 봄
꽃가지 마다 흘리는 웃음에
혼절해도 좋다
- 「꽃 죄인」 2연
만발하는 꽃의 절정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축복이기에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도 살아있는 꽃이 아닌가!
우리 꽃으로 왔다
꽃으로 가더라도
행복해야 한다
- 「우리 그러더라도 꽃 하자」 끝연
우리도 언제가는 스러지는 꽃인데, 꽃이 되기 위하여 수많은 관습과 허욕에 오염된 세월을 맞이했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 핀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다시 꽃을 피운다면
진성성 있는 향기를 가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으로
그렇게 살다 다시 새로워진 꽃씨로 돌아가리
- 「꽃씨」 끝연
만사에 오염되지 않는 꽃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얽히고 얽힌 관계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다시 새로워진 꽃씨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신의 상처를 듣고 내 상처가
된 적 있어 잠 못 이뤘고
내 상처를 들려주고
당신이 상처를 보듬고
잠 못 이뤘을 것입니다
우린 태초 어미의 생살을 찢고
세상에 태어나고 지금 아린芽鱗에
싸여 있는 나무의 싹눈리 그것을 찢고
태어남을 봅니다
우린 언제나 상처를 받고 건네면서 삽니다
그러니 상처에겐 죄가 없습니다
세상 모두 원죄의 상처 가운데
성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산 날이 너무 많아 기억이 없다하고
살아갈 날이 너무 오래 남아
생각하지 않으려 함입니다
- 「날마다 상처가 나를 키웁니다」 전문
시인은 예리한 시선으로 나와 너의 상처를 바라본다. 우리가 입으로 외치는 상생 相生이 허허로운 까닭은 우리가 주고받는 상처가 일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이미 원죄로 만인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상처를 회피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라는 혜안을 역설적으로 시인은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욕심이 타인의 생활 영역을 침범할 때 주고받는 상처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때만이 치유될 수 있다.
당신과 나의 사이에도
적절한 소리의 경계가 있어야 한다
- 「소음」 끝 연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차별한 냉정을 넘어설 때가 있다. 자연에 대한 관찰은 도시와 농촌을 번갈아 오가며 살아가는 시인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이기에 보다 구체적으로 시로 형상화될 수 있다.
텃밭에 농부의 손길로
정성을 쏟아붓던
두덩에 고구마순
다리를 뻗고 뻗으며
여름 내내 씨알을 키운
생명을 맷돼지에게
자식을 다 내주고나니
...중략 ...
노동자들의 노동댓가에
찬물 끼얹고 삶의 터전마저
빼앗기는 억울한 세상이 그곳에도 있다
- 「고구마 순의 하소연」 부분
고구마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나 맷돼지나 자신을 약탈해가는 존재일 뿐이다. 먹고 먹히는 관계 –불교에서는 인다라망因陀羅網으로, 이것이 있으려면 저것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는 탐욕이 자리잡지 않은 자연계 自然界의 섭리이다. 또다른 국면에서는 자연계와 인간계의 불가피한 충돌도 일어난다. 시 「배나무」는 다 익은 열매를 따 먹는 까치와의 불편함을 그린 시이다.
짐승과 인간이 싸우는 것은
태곳적 일이라처도 가을만 되면
어리석게도 나눔을 넘어 성가심은 한나절 된다
-「배나무」끝 연
생각해 보면 인간은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배나무도 과실을 얻기 위해 인공아 가미되어 이식한 것이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이다. 따라서 인간의 입장에서 까치의 행동은 못마땅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인간계人間界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이욕을 채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시인도 이 억울한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무성한 숲으로 비유된 이 억울한 세상을 ‘ 날마다 보이는 저 숲을 보면서 / 사람과 사람 사이도 / 턱없이 골져 보’(「숲」 마지막 연)인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골져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마냥 투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사가 험하다고 스스로 강퍅해지는 것은 바른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의 시는 황량해지기 쉬운 마음 들판에 피어나는 꽃이다. 그러하기에 시집 전편에 깔린 꽃의 이야기는 심층적으로 풀꽃으로 한 생애를 살아온 시인의 고백이다.
3.
시인은 이제 황폐해지려고 하는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위무해야 함을 자각하게 된다. 인생의 가을에 당도했기 때문이다.
옷깃에 살살 찾아드는
선득한 기운
그 범접할 수 없는 촉감이
볼을 스쳐가는 촉 그 촉 빠르게
마음을 소매치기하는 절기
청춘은 그랬다
오든지 말든지 내던져 두었고
중년은 그랬다
소소히 다가오는 일상에
꼼꼼히 챙겼고
노년은 그랬다
매사가 그리움뿐
마음은 내 곁에 두어도
새어 나가고 마는
그렇게 절기는 변함없는데
우리만 퇴화되어가는
그럴지언정 살아갑니다
- 「그러하다」 전문
누구나 유추할 수 있듯이, 인생의 가을은 장년기 壯年期에 들어설 때부터 시작된다다.
시절은 가려 하고 난 이 자리인데
갈수록 둔한 몸 한 발짝 내밀 때 이곳저곳 곡소리
노을은 타오르고 서산은 점점 검은빛이네
-「가을 빛 저녁 놀」 끝연
이 때부터 몸의 불편한 변화가 일어나고 심리적으로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숨가빴던 지난 날이 문득 문득 후회와 안도로 뒤바뀜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도 된다. 심리학적으로 장년기에서 노년기로 가는 시기는 사회적 책무를 완성하는 때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안정과 자식들의 독립이 이루어지고, 점차 자신만의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이 때를 임서기林棲期라고 하여 숲에 들어가 자신의 삶을 명상하고 휴식을 취하며 그 이후 자연에 생을 바치는 유랑기를 준비하는 시기로 삼는다.
시「그러하다」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여로를 바라보면서,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아마 시인에게도 일흔 살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논어 위정편에 공자孔子가 자신의 생애를 술회한 문장이 있으니.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지학志學), 30세에 자신이 걸어가야 할 목표를 세웠으며(이립而立), 40에는 그 어떤 유혹에도 자신의 길을 걸어감에 의심을 두지 않았고(불혹不惑), 60이 되어서는 세상만사를 포용하는 귀를 얻었고(이순耳順), 70이 되어서 바로소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고 하였다. 시 「일흔 이후」는 바로 종심에 다다른 소회이면서 그 이후의 자신의 삶을 다짐하는 시로서 그 의미가 깊다.
시간이 한없이 흘러
삶을 흐지부지 살아
이제 터질 대로 터져
꿰매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말라서 흔적으로
남은 일평생 못한 것과
할 것만 조금 남았다
할 것이 딱히 있다 해도
살다가는 민폐만 아니면 된다
살아온 것이 다 내 욕심이었고
살아가는 것이 또 남은 민폐
일흔 이후는 남기지 말고
조금씩 비우고 홀가분하게
숲처럼 자연처럼 그림처럼
이른 이후
잊은 이후
잃은 이후
생 그 이후
- 「일흔 이후」 전문
여기에 종심에 대한 시인의 또 다른 관점을 살펴보면 오늘 이후의 삶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관점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연의‘이른 이후’는 조바심내며 남보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닌 느림이요,‘잊은 이후’는 살면서 지녔던 서운함과 아쉬움을 잊겠다는 것이며,‘잃은 이후’는 모든 집착물- 재화와 같은 것-이 사라진 공空 의 세계를,‘생 그 이후’는 늘 삶과 죽음의 아슬한 경계에 처해 있음을 자각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나눔의 세계,‘배냇속 부터 내린 말씀 태초의 주인이 / 내게 주신 심장 박동 이처럼 잔잔히 아직도 뜀애 /당신에게 주신 나눔으로 항상 감사하고 삽니다’(「오롯이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끝연),‘세상 태어나기 전부터 / 우린 사랑으로 탄생했으며 / 사랑으로부터 세상에 나왔’(「이미 사랑이었다」부분) 다는, 신앙에 기반을 둔 아가페적 사랑을 자아실현의 목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김혜숙 시인은 ‘당신도 이미 사랑으로 살고 / 누구도 사랑할 자격 있나니 / 하물며 네가 바라보는 잡풀도 / 나도 사랑으로 바라본 적 있었다’(「이미 사랑이었다」부분) 고 고백한다.
첫 번째 시집『어쩌자고 꽃』에서 이번 시집『풀꽃의 기억』까지 각 시집의 표제시는 꽃을 오브제로 삼았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 꽃들은 모두 시인의 자화상이었고, 그 꽃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이 아니었던가!
멀리 보이는 구름 길
젖은 지붕 위로 스쳐 가고
기다리다 지친 시간만큼
꺾인 풀의 진물이 아픔에서
아물기까지 치료제를
바르고 나면
그 시간을 견디어 우뚝 큰 만큼
시간은 지나가주던 안쓰러움과
그 일이 닥쳐왔던 거친 비바람
너에게도 그랬을 것이요
나에게도 그랬으니 아문
상처만큼 긴 날이 대견함이다
다신 절망하지 말고
다신 원망하지 말며
아무는 상처만큼 다신
뒤돌아보지 말자
그렇게 사는 것이
나를 너를 살리는 풀의 기억이다
- 「풀꽃의 기억」 전문
4.
종심에 다다른 시인은 풀꽃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를 염원한다. 아쉽게도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시들이 많다. 필자의 관점 때문에 소개하지 못한 시들은 서정이 가득한 시편들이다. 알다시피 은월 김혜숙 시인은 시낭송가로도 멋진 활동을 펼치고 있어 시 낭송으로 널리 알리고픈 서정 가득한 시편들은 독자들께서 함께 사랑해주시기 바란다.
끝으로 시집『풀꽃의 기억』이후의 시인의 시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무심의 세계, 인격의 가치판단이 무화된 서사 敍事가 가득한 시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면서 애잔하면서도 섬세하게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은 시 한 편을 내려놓는다.
은월 김혜숙 시인의 건필을 기원한다.
수평선 밀어내며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
뽀얀 얼굴 언뜻 언뜻 보이고
멀리 볼 우물에 걸린 달빛
하얗게 웃는 푸름한 미소
병색이 깊은 창백한 얼굴
넘실넘실 홀바람 언덕 가다말고
자꾸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 「메밀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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