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검이불루 儉而不陋의 삶을 노래하다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중천中天 김창현은 서예로 입신한 한국서예대전 초대작가이다. 그는 한국서예협회 사무국장, 노원서예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서예의 참맛을 알리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지역의 문화관련 기관에서 서예를 지도하면서 끊임없이 법고창신 法古創新의 길을 모색하는데에도 게으름이 없었다.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으로 청개구리를 등장시켜 대중들의 호응을 얻기도 하고 전통 서예를 바탕으로 하는 캘리의 개발하는 등 그의 전방위적 활동은 삶의 현장과 유리되지 않는 즐거움의 예술을 지향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시서화詩書畵의 경계를 허물고 각각의 특성을 살리면서 삶의 애환을 기쁨으로 힐링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한다. 그 결실로 그는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무이재, 2021)를 선보였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는 바 그대로 작가의 삶을 통해서 –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회적 존재로서 알게 모르게 위장 僞裝되어진 의식의 내면을 고백하는 짧은 글과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청개구리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상징물로 삼아서 아이러니한 세상을 풍자하기도 하고, 자신의 비루함을 거침없이 폭로하기도 한다. 청개구리는 우리에게 모든 일에 엇나가고 엇먹는 짓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엇나감을 작가는 창의와 도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이 청개구리 정신이야말로 구태의연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뒤엎는 에너지로 생각하고 있다.
청개구리의 핵심은
말을 안 듣고 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함과 다양성이다
4방 8방을 넘어 360방향
어떤 각도에서 생각하는 가가
청개구리가 가진 본질이다
내가 가야 하는 길에서
가장 빠르게 가는 길
가장 사색할 수 있는 길
가장 운동이 되는 길
가장 풍광이 좋은 길
가장 모험적인 길 등
생각에 따라 길이 달라진다
내가 튀고자 하는 방향이 핵심이다
- 「청개구리 마음」 전문
작가는 이순耳順을 넘어 종심 從心을 향해 가기에 수많은 기로와 신고 辛苦를 거쳤을 것이다. 글과 그림이 있는 중천의 힐링 북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드러난 작가의 완숙함이 한층 깊어진 책이다. 우리 모두는 신체적으로는 노화 老化되어가지만 정신은 얼마든지 ‘생각에 따라 길이 달라지’는 경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가식을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일러 공수래공수거이니 마음을 내려놓자고 하고, 오래 살아서 뭐하냐고 짐짓 초연한 체 한다. 온통 세상은 아귀다툼이라 진저리를 치면서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너스레를 떤다. 책에서 얻은 지식, 교회당과 절간에서 들은 설교와 법문을 이타적으로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작가는 이분법적 사유에 길들여진 우리의 인식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치면서 원융 圓融의 세계를 직시한다. 생각해 보면 서예 書藝는 궁극적으로 서도書道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원전에 뜻을 헤아리면서 그 뜻을 마음에 담는 행위임을 작가는 일찍이 체화했다고 본다. 엄밀히 말해서 그의 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의 위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우리에게 동감을 넘어 공감 共感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접한 수많은 경전의 뜻을 자신의 삶에 깊이 아로새기는 공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단말마와도 같다.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으세요
세상은 온통
똥 밭이랍니다
아마도
세상에 새싹이 나고
건강히 자라나게 하기 위해
온통 거름이 넘쳐납니다
당신은 아닌 것 같으신가요?
이후
거름으로 자라난 세상은
온통 꽃 밭이랍니다
-「똥 밭」 전문
작가는 이 세상이 똥밭임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피폐한 이유는 이것과 저것을 나눔에 있어 유용 有用의 잣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잡초는 무용하지만 실제로 잡초야말로 땅을 기름지게 하는 천연비료이다. 부정과 긍정, 무용과 유용의 경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작가는 허무주의자이기도 하고 닉관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좌우로 움직이는 시계추처럼 그는 자유롭게 세상을 거닌다.
맞다
사람은 개만도 못하다
개는
사람 말을 알아들어도
사람은
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토록 우습게 보는
개의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면서
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어찌 알아듣겠는가?
사람이
개만도 못한 소통능력을 가지고 있음에
서로 못알아 듣는 것을 알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개만도 못한 사람」전문
그동안 우리는 개를 못된 존재로 비속적으로 빗대어 사용해 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불통의 세상이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역설을 펼치고 있다.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너의 말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인류의 역사에서 하루도 없던 날이 있었던가? 그리 생각해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식자연 識者然하지 않는 하심의 정신이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에 가득함을 어찌 하겠는가!
우리는 매일 매일
잠을 깨면
다시 태어난다는 걸
감사하게도
갓난아이가 아니라
어제까지 익히고 배운걸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걸
그걸 몰랐네
일생을
한번 태어나 한번 죽는지 알았더니
밤이 되어 죽고난 후
아침이면 다시 태어나는 걸
그걸 몰랐네
-「 그걸 몰랐네」전문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삶을 역사상 살아본 적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유례없는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짊어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마디로 행복의 조건이 너무 많아 타인과 비교하다보니 성공의 척도가 높아지고 자칫 자신만이 소외되고 낙오한 것 같은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작가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골에서 올라와 마장동 판자촌에서 살 때 동네 곳곳에서 싸움질하고 사니, 못사니 아귀다툼이 그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터로 나가고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 그걸 몰랐네」는 생명의 존귀함을, 삶의 위대함을 물질적 풍요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버려야함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희망이니 꿈이니 그런 구름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나는 신생 新生의 기쁨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아무 쪽이나 펼쳐 읽어도 좋고, 그림을 먼저 보고 글을 읽던지 아니면 따로 따로 보아도 좋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읽으면 위안이 되고 한껏 자신감이 차오를 때 읽으면 신독 愼獨의 경계심을 갖게도 된다. 검이불루는 간소하되 누추하지 않는 자존감을 일깨우는 말로써 화이불치華而不侈와 짝을 이룬다. 화려하되 사치롭지 않은 삶도 가치가 있지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분수에 맞게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일임을 전해주는 『그늘과 볕의 이야기』가 늘 곁에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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