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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시집 『오늘은 맑음』:위기지학 爲己之學의 시詩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1. 25. 11:40

해설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시詩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사랑은 당연한기라 말이 필요 없제

-아버님 말씀

 

1. 시인 정은희

 

 

시집『오늘은 맑음』은 시인의 첫 시집『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1989)에 이어 나온 두 번째 시집이다. 1983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미래시 동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첫 시집을 발간하면서 시단을 떠났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마침 고희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또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면서 시집을 상재하게 된 것이다. 시단을 떠나기는 했지만 부산의 전원문학회의 동인으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오늘은 맑음』에 수록된 59편의 시도 전원문학회에 발표한 시편이다.『오늘은 맑음』은 이립而立부터 종심從心에 이르까지의 시인의 삶을 축약한 시편들로써 시인의 인생관, 세계관을 조감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따라서 첫 시집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에 드러난 시의 얼개가 『오늘은 맑음』에 이르러 어떻게 변모했는지 어떤 방향성을 띠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시집『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의 해설을 쓴 유한근 평론가는 ‘죽어 있다고 간과해 버리는 것들을 시의 방법으로 살려놓고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혹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감성으로 확인해 보려는 시’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시인이 마주하게 된 소외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슬픔이 가득한 세상에서 감상感傷이 아닌 넘치지 않는 서정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명이 시 쓰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슬퍼하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이 시인의 시론詩論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는 첫 시집의 표제시로서 존재 일반에 대한 시인의 시각을 살펴보는데 필요한 작품인 동시에 시집『오늘은 맑음』의 기점이 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위하여

꽃잎은 반쯤 시들고

녹슬은 낮달이 바람 속을 가는

대낮의 평정을 위하여

익숙하게 제 몸을 죽여가는,

젖은 얼굴,

한낮에도 낮게 낮게

쓸쓸하게 드러눕고 마는

곰팡이를 아십니까

여름날 지하실의 그윽한 배려에도

끝없이 끝없이 죽어가는,

무관심의 구석배기에 자리한

외면당한 슬픔의 우울한 실체

세상 어디서나 한 귀퉁이에

없는 듯 있어야 하는

얼굴 가린 곰팡이,

곰팡이는 외로워서,

외로운 곰팡이는 쓸쓸해서

아무에게나 제 볼을 부벼댑니다

아무 것에나 제 손자국을 찍어 봅니다

 

- 「 쓸쓸한 곰팡이를 아십니까」전문

 

곰팡이는 인간에게 쓸모 있는 미생물인 동시에 유해한 – 반드시 제거해야할 –존재이다. 그런데 시인(화자)는 곰팡이를 ‘슬픔’으로 치환하면서 슬픔의 근원인 소외된 실존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쓸모가 없으면 도태되어 버리는 세상의 이치를 그리면서 아무에게나 제 볼을 부벼대고, 아무 것에나 제 손자국을 찍어보는 사랑의 갈구渴求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의식 속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슬픔의 곰팡이가 가득할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2. 사랑의 실체를 찾다

 

‘사랑’은 매우 범박한 관념이다. 그 말뜻은 외연이 너무 넓어서 쉽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기도 하다. 쓸쓸한 곰팡이는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런 까닦에 타자他者에게 맹렬하게 다가간다. 이와 같은 타자와의 사랑을 꿈꾸는 시가 『오늘은 맑음』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나는 공이다

그래서 나는 굴러간다

나는 공이다

그래서 이놈이 발로 차고

그래서 저놈이 데굴데굴 굴린다

나는 공이다

그런데 내가 구르고 싶을 때만 구르고 싶다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싶다

손발로 땅을 짚고 싶다

하늘을 날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서서히 내려오고 싶다

유혹이다

그래, 그러려무나

네가 원하는대로 하려무나

뭐야 이건 뭐야

흔들리는 마음을 꽁꽁 숨긴다

 

나는 공이다

햇살은 나를 굴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좋다

내 맘대로 멈춰있다

해 저물 때까지 혼자 논다

 

나는 공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달빛은 그리움으로 포근해진다

나는 집에 가고 싶은 나는

아마도 굴러가야 할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차지 않고 가슴에 안고 갔으면 좋겠다

 

나는 공이었고 나였다

산들바람에도 움직일 나였다

올려다보는 달빛에 젖는다

젖어 땅에 스민다

바람은 달빛에 젖어 바스라지는 나를

내 집으로 손잡고 간다

 

- 「나는 공이었고 나였다」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공은 쓸쓸한 곰팡이보다 더 활동적이고 개방된 존재이다. 말하자면 음습하고 폐쇄된 공간을 떠나(곰팡이) 더 넓은 세계, 즉 사회적 존재(공)으로 바뀌면서 화자가 꿈꾸는 타자와의 원만한 관계는 사라지고 발로 채이면서 ‘누군가 나를 차지 않고 가슴에 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 이는 시인이 생활인으로, 가정을 꾸리고 어느덧 자식을 거느리는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면서 느끼게 되는 애환이다. 또한 부대끼는 타율적 삶에 항거할 수 없는 절망과도 일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무념한 산들바람과 달빛만이 친구가 되는 외로움에 봉착하는 것이다. 『오늘은 맑음』에는 이와 같이 어두운 일상의 풍경이 질펀하게 깔려 있다. ‘다 버리고 / 모르는 척 / 돌아서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빗방울」 톡 6연)거나 ‘시간이 흘러 해거름이 되어도 나를 찾는 / 전화 한 통 없’(「나도 돌아간다네」) 는 탄식, ‘그대도 / 내가 원하는 때에 오고 / 그대 오고 싶을 때에 오는 것을 / 매번 나 기다리고 있을 때에 왔으면 한다’(「 뜀박질」4연 ) 는 희망 등은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체득한 세상살이의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언제 들어갔는지

빼놓았던 그리움, 부끄러움

언제 녹아들었는지

새소리, 바람소리

눈물 한 방울까지

빠짐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방을 연일 바꿔도

바람은 늘 가방 안을 채운다

비운 만큼 늘 가방 안을 채운다

길을 가다 가방을 열어본다

버릴 것이 없어

왜소해진 나는 무거워서 가라앉는다

풍경 속으로 기울어진다

 

- 「내 가방」 3,4연

 

시인은 매우 검소한 사람이다. 반지와 같은 액세서리에 눈길을 주지 않을 뿐더러 요란한 치장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가방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을 갖는다. 이 가방은 너무 무거워 힘들다고 저 가방을 바꿔 들어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취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가방은 사용가치 –유용성-이상의 의미를 띠게 된다. 말하자면 은근히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자존감의 상징으로 가방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의 가방에 대한 애호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바람으로 표상되는,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삶의 허무는 절망적이게도 늘 가방 안에 가득 차서 어쩔 수 없이 풍경 속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가방은 무거워서 들기 힘든 형벌과도 같다. 이러한 삶의 스산함이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시「뜀박질」에서 토로한 바와 같이 내 삶을 위무해줄 그대 – 행운, 희망,-가 내가 원할 때 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느덧 시인은 마음의 소외와 더불어 몸의 소외를 느끼기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 이제는 그냥 /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 예사롭지 않’(「당연하거니 당연하지 않거나」)은 까닭은 마음과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이다. 지천명을 지나고 이순에 이르게 되자 ‘사람이 없는 사람들 이야기 / 글자만 남은 시(詩)들 / 무슨 맛인지 모를 음식들 / 향을 잃어버린 커피’(「세상이 달라졌다」)와 같은 의식의 진공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젠 내 몸이 마음보다 무거움을 나도 안다 / 지나간 시간들의 무거움을 나도 아’(「이젠 가끔씩 내 몸이」)는 나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쇠락해가는 몸을 안타까워 하면서 쓴 편지를 읽게 된다.

 

있잖아,

내가 어깨랑 팔이랑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었어. 근데 약도 주사도 필요 없다네. 물리치료 받고 어깨근육 기능 강화를 위한 도수치료를 받으라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너 보고 싶다고 연일 손짓하며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그런 것 같아. 내 손짓이 심한 날갯짓이 되어 병이 되었나봐. 친구야 벚꽃잎 날아갈 때 그 가지도 몸살 앓겠지. 손톱 끝에 연분홍 꽃잎을 얹어 날려 보낸다. 바람에 흩어지는 안개처럼 꽃잎들이 머얼리 더 멀리 그리움을 실어 나르고 나면 나는 다시 병원 문을 찾고 있겠지.

있잖아, 네 머리 위에 벚꽃잎 하나 내려앉으면 내 그리움의 한조각인양 바라봐 줘.

창밖 벚꽃나무에 지빠귀 울어대면 지난날의 시간들이 네게도 찾아온 거야.

있잖아, 내가, 내가 병원에 갈테니 너는 어디서든 잘 살아. 내가 날갯짓 할 테니 너는 그냥 잘 지내. 나도 네가 보낸 소식인 양 꽃비 속에 서 있을게.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병원 문을 연다네.

 

-「편지」 전문

 

번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편지」는 와락와락 달려드는 외로움과 슬픔과 그리움이 한 몸이 되어 가슴을 적신다. 타자와의 이격에서 비롯되는 외로움 없이는 그리움은 발화되지 않는다. 서로 서로의 외로움과 슬픔이 하나가 될 때 저 먼 피안에 있을 것 같은 사랑은 바로 내 앞에 당도해 있다. 그리움이 없다면 사랑은 꽃이 필 수가 없다.「나의 그리움」,「그리움」,「어머니의 그리움」등등의 시는 감상에 치우친 단순한 서정이 아니다. 시인의 태생적 성품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가족,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이면서도 일방적이지 않은 상호교감 相互交感에서 이루어진 감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쓸쓸한 곰팡이’, ‘공’으로 인식된 시인의 자아가 절망과 허무에 빠지지 않는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가족,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의 교류가 이타적利他的이라는데 있다. 한 마디로 이타적 사랑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베풀 수가 없다. 측은지심으로도 치환할 수 있는 사랑은 때때로 ‘쓸쓸한 곰팡이’나 ‘공’처럼 상처받는다. 그러나 끝끝내 사랑은 소멸되지 않는다. 봄이 되면 동토를 이겨내고 돋아오르는 싹처럼 아마도 시인은 그런 상처를,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가족)을 그리워함으로써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3.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시

 

시집의 4부에 수록된 시편들은 혈연에 대한 곡진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하늘로 집을 옮긴 아버지 – 「성묫길」, 「노래」, 「아버지의 눈」, 백수를 맞이한 어머니-「할머니꽃」,「어쩌라구요」,오래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요양원에서」-, 장성하여 분가한 아들- 「아들아」- 쑥쑥 자라버린 손녀 –「오늘 아침」- 등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남은 생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묻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혈연관계를 넘어서서 경쟁과 분별심으로 가득찬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묘파한「아버지의 눈」을 감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세미가 철갑상어도 되고

구부러진 무릎 안쪽

바짓가랑이에 숨어든 생쥐 한 마리가

들썩이는 걸 보기도 한다

고놈! 맹랑하네!

아버지는

힘찬 목소리로 바라보지만

잡아라 하지 않으신다

고놈 참 맹랑하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의 다른 것들을 만나고 계신다

 

- 「아버지의 눈」전문

 

우리 선대의 어른들은 오늘날과 같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시인의 아버지도 그러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세상의 이치를 한눈에 꿰뚫고 있는 있음을 시인은 목도하고 무상의 지혜로 이어받는다. 연로하여 눈이 불편한 아버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사물들의 정의를 아무렇지 않게 전복顚覆시킨다. 수세미는 절대로 철갑상어가 될 수 없지만 사물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의식의 거울에서는 하나의 상相일 뿐이며, 바짓가랑이 속을 드나드는 생쥐를 굳이 잡으려 하지 않는 너그러움은 자연스럽게 불가佛家의 인연에 닿는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분별심分別心이 모든 고뇌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이미 아버지는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도道에 다다른 것이다. 시인은 그런 아버지를 통해 삶의 진경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며 ‘보이는 것들은 / 보이지 않는것들을 /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는 절구絶句는 상상력과 구차한 비유에 얽매이지 않는 시인의 공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이 시에 함축된 의미를 짚어보자니 노자도덕경 제 81장이 떠오른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이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고 있지 못한 편이다.(지자불박 박자부자 知者不博,博者不知 기이위인기유유既以為人己愈有 기이여인기유다既以與人己愈多).

 

시집『오늘은 맑음』은 사랑을 뿌리로 삼아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려고 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기도문이다. 자신을 향한 어떤 평판이나 시류詩類에 연연하지 않고 궁극적인 사랑을 양식으로 삼아 험난한 길을 걸어온 발자국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있어서의 궁극적인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이란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의 정의는 너무 막연하여 구체성이 떨어지고, 스테르고(헌신), 우정, 이보다 더 고양된 초월적 사랑인 아가페는 다가가기 힘들다. 이렇게 사랑이 가변적이라면 영원히 사랑의 실체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울보가 되었습니다

살아온 시간만큼 눈물이 쌓였나봅니다

쨍한 햇살 한자락

가을하늘을 가로지르는 작은 벚꽃 한송이

마른 풀더미 속에서 고개드는 하얀 꽃

시멘트 틈새 파란 질경이들

공간을 뒤흔드는 찌빠귀의 울음소리

눈앞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벌레들

가슴에 피멍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애달픈 치열함이

눈물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지옥같은 삶들이

살려는 의지가

사람도 다르지않음에 눈물이 납니다

살려고 잡은 한줄의 희망이

그만 그 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울보가 되었습니다

기억하지 마세요

심장이 멎을만큼의 아픔이 삶이었던

그대는 이제 기억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어디에 있던

더는 당신에게 위로가 되지못할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나는 울보입니다

 

- 「나는 울보입니다」전문

 

시인은 스스로 울보임을 자인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만물의 생명력을 사랑의 근원으로 인식한다. 온갖 생명들의 몸부림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인은 ‘살아온 시간만큼 눈물이 쌓이고’, 절망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울게 된다고 고백한다. 시인 앞에 험로나 난관이 빈번하게 다가왔을 때, ‘살아있는 것들이 아름답다’( 「달 뜨다」 끝연) 는 순수한 감정이 시인에게 있어서의 궁극적 사랑이 되는 것이다. 타자에게 기투企投되기 전에 시인의 의식에 가득 차 있는 눈물이 충분히 고여 있을 때 시인은 고요해지고 편안해진다. 이렇게 시인의 시들은 눈물이 스며들어 있고 스며든 만큼 따뜻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시인은 앞에 나서서 명예를 얻거나 돋보이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오늘날 같이 시인이, 시가 범람하는 시대에 자신의 삶을 꼿꼿하게 세우기 위한 시인의 행로는 타인에게 다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을 사랑으로 가꾸려는 공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시를 배우려는 자세는 또 얼마나 겸손한가!

 

나는

후회하는 나에게

너라고 부르고 싶은 그날의 나에게

비 갠 뒤 숲의 나무들이 떨구는 빗방울처럼

바람 그치고 머리 흔들며 일어서는 그 강가의 풀잎처럼

그냥

아침햇살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사랑이 필요해

나는 나에게 사랑이 되고 싶어

나는 나에게 사랑이 되고 싶어

 

 

- 「사랑이 되고 싶어」 후반부

 

헤르만 헤세는 ‘사랑을 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이 아름다워졌고, 그 사랑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오면서 마주한 후회와 절망을 온전히 나에게 온 선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마저 사랑하게 될 때, 외부 대상으로 향해 있던 자아가 그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다시 자아 내로 돌려지는 상태 즉 이차적 자기애二次的自己愛 로 돌려질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냉철한 거울로 비춰보면서 앞으로 남은 생生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4. 종심從心은 삶의 출발점

 

나이 70은 오늘날 노년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임서기林瑞期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생의 황금기golden age라고도 하듯이 번다한 삶의 소요에서 벗어나 정신적 여유를 가져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세월을 붙잡을 수 없겠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늘이 높았다

산으로 산 위로 올라갔다

산꼭대기

여전히 하늘은 높고 푸르다

그곳에서도

하늘은 높았다

 

강을 보았다

거기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있었다

나는

강물에서 하늘을 건져올려

힘껏 사방으로 뿌렸다

천지사방이 하늘의 기운으로 환하다

푸르다

닫고 선 땅의 모두가

가슴 속에 하나씩 푸르름을 품었다

 

- 「오늘은 맑음」 전문

 

 

언제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와 함께 걸어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