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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편지] 빨라진 봄의 걸음에 따라 더 빨리 피어난 자목련 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4. 8. 14:12

[나무편지] 빨라진 봄의 걸음에 따라 더 빨리 피어난 자목련 꽃

   ★ 1,282번째 《나무편지》 ★

   봄의 걸음걸이가 빨라졌습니다. 분명 활짝 피어난 자목련을 보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그런데 더 없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활짝 피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의 어느 봄이라도 거르지 않고 편안하게 만나서 인사 나누는 한 그루의 자목련입니다. 강원도 춘천 한림대학교 교정의 자목련입니다. 23년이라고 했지만, 해마다의 사진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둔 건 아니고, 또 제 강의실이 이 자리의 정 반대쪽에 배당되었던 적도 있어서, 어쩌면 한두 해는 빠뜨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목련 꽃 피어나는 봄이면 강의 시간이 비어있는 한낮에는 어김없이 캠퍼스를 거닐며 여러 아름다운 꽃들을 찾아보았기에 이 자목련을 놓친 적은 없을 겁니다.

   공강 시간이면 머무르는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에 맞추어 강의실로 가려면 마주치게 되는 자리에 서 있는 이 자목련의 개화 조짐은 지지난 주부터였습니다. 학교 안의 다른 곳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백목련이 아직 제대로 피어나지 않은 상태여서, ‘좀 이르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살포시 꽃망울이 열린 이 자목련 꽃봉오리의 꼬무락거림을 보며 설레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리고 엊그제, 온 나뭇가지에 꽃망울들이 가장 싱그러운 모습으로 피어난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목련 종류의 꽃들이 좋은 향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자목련의 향기는 유난히 좋습니다. 그냥 기분 탓일지 모릅니다. 꽃 그늘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잠시 이 꽃의 핑크빛 향기를 가슴에 담으면 모든 일상이 향긋해지곤 한 기억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적다보니, 이 나무를 꽤 오래 만나왔네요. 학교에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콘텐츠 제작’을 이야기하며 ‘교수’라는 분에 넘치는 호칭으로 지내온 시간도 무척 길었네요. ‘겸임’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또 비정규직 ‘겸임교수’인 까닭에 ‘안식년’도 없이 줄곧 23년을 지내왔습니다. 처음 이 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아 향기에 취해 있던 때는 40대의 한창 젊은 나이였다는 것도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휴대폰 카메라가 흔치 않을 때여서 사진으로 남겨둔 건 없지만, 그 동안 나무도 크게 잘 자란 건 알 수 있습니다. 잘 자란 나무에게, 그리고 23년 동안 빠짐없이 이 나무 그늘에 앉아 향기에 취할 수 있게 한 모두에게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멸종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우리의 ‘깽깽이풀’ 사정을 지난 주에 전해드리면서,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또 하나의 멸종위기식물이며 우리 고유의 토종식물인 ‘미선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앞의 학교 자목련 이야기를 적다보니 ‘미선나무’는 다시 다음으로 미루고 싶어졌습니다. 학교에서 보낸 긴 시간들과, 그 동안 학교에서 만난 숱하게 많은 나무가 내 안에 드리운 향기와 무늬를 더 생각하게 해서요. 그저 오늘은 지난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린 깽깽이풀 바로 옆에 피어있던 미선나무 꽃의 사진만 보여드리고, 미선나무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은 다음에 기회를 마련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걸음걸이가 빨라진 이 봄, 《나무편지》로 전해드리려 정리해둔 나무와 봄꽃 사진들은 미선나무 아니고도 한가득입니다. 매실나무 꽃 매화를 비롯해 회양목의 꽃과 복수초 노루귀의 앙증맞고 아름다운 꽃들이 사진첩에서 다음 《나무편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여름으로 달려가는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언제 다 보여드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복수초 노루귀를 이야기하기에도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한꺼번에 피어나는 봄꽃들을 이 작은 《나무편지》에 어떻게 다 담아낼 수 있을지요. 내년 봄으로 또 미루어야 할 봄꽃 이야기들이 올 봄에 전해드릴 나무 이야기보다 더 많아질지 모르겠습니다. 《나무편지》가 느린 건 분명하지만, 계절의 흐름, 특히 봄의 흐름이 너무나 빨라진 것도 사실이니까요.

   다음 주에 띄울 《나무편지》에는 또 다른 봄 꽃이 채비하고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내일은 목련 꽃 한창인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올 생각이거든요. 당연히 다음 《나무편지》에서는 지금 한창 ‘목련대잔치’ 중인 천리포수목원의 목련 꽃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겠지요. 계절에 맞춰 봄 소식 제대로 전해드리지 못하는 느린 《나무편지》를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4월 7일 아침에 1,282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