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그 폐허
온몸으로 무너진 자에게 또 한 번 무너지라고
넓은 가슴 송두리째 내어주는 그 사람
봄이면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넉넉하게 자리 내어주고
여름에는 우중첩첩 내리쏟는 장대비 꼿꼿이 세워주더니
가을에는 이 세상 슬픔은 이렇게 우는 것이라고 풀무치, 쓰르레미, 귀뚜라미
목청껏 울게 하더니
겨울에는 그 모든 것 쓸어담아 흰 눈으로 태우는
건봉사, 그 폐허
나도 그에게로 가서
그대의 폐허가 되고 싶다
아무렇게 읽어도 사랑이 되는
사랑을 몰라도 눈물이 되는
바람의 집
그대의 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