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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롭다… 통영 사량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2. 6. 13:07

칼바위 딛고 마주한 ‘360도 바다’… 전국 섬 산 중 단연코 원톱이로다!

[박경일기자의 여행]

  • 문화일보
  • 입력 2025-02-06 08:50
  • 업데이트 2025-02-06 10:08

바다만 좋아도 명산이고, 암봉만 좋아도 명산인데, 사량도 지리산은 둘 모두를 다 가졌다. 사량도 지리산 경관의 정점은 단연 옥녀봉이다. 옥녀봉 주변에는 바위 봉우리를 건너가는 출렁다리가 놓여있다. 출렁다리를 건너가면 마치 섬 사이로 비상하는 느낌이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롭다… 통영 사량도

뱀같은 해협에 갈라진 두 개 섬
윗섬엔 해발 400m ‘지리산’
매년 국내 名山 순위권에 들어

8㎞ 동서 종주 코스가 ‘정석’
5시간 걸을 체력 모자라다면
택시로 성자암까지 오를 수도

아랫섬엔 7개 봉우리‘칠현산’
도로변 해맞이 공원도 명소
병풍처럼 기다란 능선 눈길

면사무소 뒤에 최영장군 사당
원혼들 달래려 6·25때 건립
진촌엔 조선 수군부대 비석도

통영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근사한 자연경관은 그것 그대로 훌륭한 치유제다.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이 가닥을 찾고, 거칠게 일어서던 분노도 한결 차분해진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렇다. ‘아름다운 것’이 가진 치유력이다. 자연은 ‘정(靜)’이다. 고요하고 안정적이다.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혼돈과 위협 속에서 안정적 자연은 반복과 패턴, 대칭과 조화로 안온한 평화를 만들어낸다.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우리는 위안받는다. 겨울에 남녘의 섬으로 가서 산에 오른다. 경치 하나만으로도 거기까지 갈 이유가 충분한 곳이다. 경남 통영의 사량도 지리산. 보고 돌아오면 살아갈 힘이 나는, 그런 풍경이 그곳에 있다.

               사량도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낙조 모습. 수우도 너머로 낙조의 붉은 빛이 하늘을 물들였다.



# 섬에 가서 산을 오르는 이유

섬 산행은 팔할, 아니 구할이 경치다. 섬에 가서 산에 오르는 이유는 전적으로 경관 때문이다. ‘섬에 있는 산’은 어디든 올라도 밑지는 법이란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바다’가 있어서다. 고도를 높여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섬에서는 어디든 ‘가장 높은 곳’이 최고 명소다.

섬 산 가운데 최고라면 ‘바다의 밑그림 위에 산악미가 보태지는’ 경우다. 드물지만 그런 섬 산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경남 통영 사량도의 지리산이다. 최고의 섬 산을 꼽는다면서 사량도 지리산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거나,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사량도 지리산이 단연 섬 산의 ‘원톱’이어서다. 이만한 경관에 감히 견줄 만한 섬 산은 없다. 오죽하면 사량도에 가보지 않은 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까. 그곳을 ‘가봐야 할 곳’으로 아직 남겨두고 있으니 말이다.

사량도에 닿거든 섬 구경은 뒤로 미루고 먼저 지리산부터 올라보자. 가장 궁금한 게 자그마한 섬에 솟은 산에 붙여진 ‘지리산’이란 이름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해발고도가 398m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육지의 명산에 대면 하품 나는 수준이지만, 섬 산은 수준점인 해발 0m부터 올라야 하니 그리 낮은 건 아니다. 힘찬 기운의 바위산인 데다 봉우리가 많고 능선이 거친 말갈기처럼 일어서 있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해발 400m짜리 산인데도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종주산행으로 길게 타면 족히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건 그래서다.

사량도라면 ‘지리산’의 이름이 바로 나오지만, 사실 지리산은 사량도의 최고봉은 아니다. 종주 능선으로 이어지는 달바위(불모산)가 지리산보다 2m쯤 더 높은 400m다. 사량도를 찾은 이들이 지리산보다 더 많이 오르는 게 달바위다. 그런데도 ‘사량도 불모산’이 아니라 ‘사량도 지리산’으로 불리는 건, 순전히 ‘지리산’이란 이름값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량도의 지리산을 두고 외지에서 온 등산객들은 오랫동안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 불렀다. 바랄 망(望)자를 끼워 넣은 건 ‘거기 오르면 육지의 지리산이 보인다’는 의미에서다. 섬 안 산에 난데없이 붙여진 ‘지리산’이란 지명을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친 지리산을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없다. 사량도 지리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는 직선거리로 70㎞ 남짓. 대략 춘천에서 서울 북한산 백운대쯤의 거리다.

사량도 지리산은 기암 사이를 아슬아슬 오르거나 내려가는 구간이 많다. 한 등산객이 위태로운 암릉 사이로 내려가고 있다.



# 智異山(지리산) 아니고 池里山(지리산)

지리망산이란 지명은, 사실 근거가 없다. 사량도의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냥 ‘지리산’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육지의 지리산(智異山)과는 한자도, 의미도 다르다. 사량도 지리산(池里山)은 ‘연못 지(池)’ 자에 ‘마을 리(里)’ 자를 쓴다. 사량도 남쪽의 돈지리(敦池里)와 북쪽 내지리(內池里) 마을의 경계에 산이 솟아 있어, 공평하게 두 마을의 공통지명인 ‘지리(池里)’를 산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이 가장 믿을 만한 유래다.

내륙의 지리산이 보인다는 얘기를 덧댔던 건 사량도 지리산의 비범함을 말하기 위함이었을 터. 하지만 지리산이 보이든 안 보이든 상관없다. 육지의 지리산 힘을 빌리지 않고도 사량도 지리산은, 바다와 어우러지는 빼어난 경관만으로 존재감이 차고 넘치니까.

섬 산 중에서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안에 드는 건 몇 개 안 된다. 제주 한라산과 울릉도 성인봉, 그리고 홍도의 깃대봉. 여기다가 연륙교가 놓여 섬 산이라 말하기 어색한 통영 미륵도의 미륵산과 남해도 금산 정도다. 전국 명산을 통틀어서 매긴 순위에서도 사량도 지리산은 늘 ‘30위권’ 안에 들어간다. 특히 봄 시즌이면 순위는 15위권으로 뛰어오른다. 봄 바다가 아름다워서다. 수도권에서 멀고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안에 있는 산이라 여러모로 불리한데도, 이 정도 순위라면 기대할 만하지 않은가.

사량도 지리산에는 산행 코스가 여럿이다. 대략 간추리면 4개쯤으로 정리되는데, 가장 인기 있는 건 섬 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종주 코스다. 산꾼들은 이 코스를 ‘1코스’라 부른다. 섬 서쪽 끝의 돈지마을에서 출발해 지리산을 넘고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을 거쳐 동쪽 끝 진촌마을로 내려온다. 말갈기 같은 능선을 따라 거의 모든 봉우리를 딛고 내려오니 사량도 지리산을 그야말로 속속들이 다 맛보는 ‘정석’ 코스라 할 수 있다. 산행 거리는 8㎞ 남짓. 다섯 시간쯤 걸린다. 오르내림이 많아서 거리에 비해 소요시간이 길다.

# ‘콜밴 택시’를 추천하는 이유

체력이나 시간 여유 때문에 종주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조금 더 짧은 코스도 있다. 사량도 북쪽이나 남쪽의 마을에서 지리산 종주 능선의 중간쯤인 불모산에 바로 올라붙은 뒤에, 동쪽 끝 진촌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전체 종주 코스의 3분의 1쯤을 잘라내면서 지리산이 코스에서 빠지지만, 경관의 하이라이트는 거의 다 보고 내려오는 코스다. 이렇게 걸으면 세 시간쯤 걸린다. 더 짧은 코스도 있다. 동쪽 끝 진촌에서 시작해 옥녀봉과 가마봉을 찍고 대항마을, 혹은 원점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능선은 걷지 않고 봉우리 정상만 찍고서 내려오니 종주가 아닌 ‘산행’ 코스다. 이 코스를 택하면 한 시간 반쯤 소요된다.

지리산의 매력을 다 보고 오겠다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건너가는 종주 코스가 정답이지만, 휴식시간 등을 포함하면 총 산행 시간이 제법 길어진다. 빼어난 경치가 펼쳐지는 섬 산행을 앞만 보고 달리듯 주파할 수는 없는 일. 종주 산행 중 식사를 하거나 느긋하게 경관까지 감상하며 걷다 보면 여섯 시간쯤은 휙 지나간다. 거리가 짧은 2∼3코스도 경관을 감상하느라 자주 멈춰 서면 네댓 시간쯤 걸린다. 산행을 마치고 섬 구경까지 하려면 육지로 나가는 배 시간을 맞추기가 빡빡하다. 그렇다고 먼 남쪽 섬까지 가서 옥녀봉만 올라갔다 내려오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당일치기로 사량도에 들어가서 지리산 산행을 한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수밖에 없다. ‘산악인’보다 ‘여행자’에 가깝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사량도에는 콜밴 택시가 3대 있다. 이 택시를 불러서 타고 지리산 능선의 어깨쯤 높이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다. 지리산 종주 능선의 중간쯤에 불모산이 있고, 그 아래 암자 성자암이 있는데 택시는 가파른 시멘트 포장도로 끝에 있는 암자까지 간다. 사량면사무소가 있는 금평항에서 성자암까지 택시요금은 1만5000원. 거리는 가깝지만, 요금은 당연히 비싸다. 여럿이 함께 타는 걸로 비용부담을 나누자. 택시를 이용하면서 아낀 체력과 시간은, 섬마을을 속속들이 돌아보는 데 쓰자.

섬에서 숙박하며 여유 있게 산행하는 선택지는 여기서 제외했다. 경험해보니 겨울철 사량도 숙박은 여러모로 불편했다. 숙박 손님이 뜸한 겨울철이라 운영하는 숙소도 적은 데다, 방도 춥다. 숙박 요금도 그리 싼 게 아니다. 다른 계절이라면 모를까. 겨울만큼은 통영으로 나와서 자는 편이 낫겠다.

사량도 진촌마을 앞 해안에 전시된 퇴역 쾌속선 ‘엔젤 2호’. 1970년대 초반 한려수도를 다니던 관광 여객선이었다.



# 아기자기한 경관의 절정… 출렁다리

콜밴 택시를 타고 성자암에 올랐다. 법당 겸 요사채 하나가 전부인 조그만 암자다. 스님은 출타 중이다. 고요한 암자의 양지바른 담벼락에는 바다를 향해 투박한 솜씨로 만든 나무 걸상 3개가 나란히 놓였다. 거기 앉으니 산자락 틈으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사량도 아랫섬과 두미도, 욕지도가 잡힐 듯하다. 남도 끝 섬의 겨울 볕에 봄 기운이 묻어있다.

암자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주련의 글씨가 비뚤배뚤 서투르다. ‘성의 없는’ 악필이 아니라 ‘정성껏 썼는데도 못 쓴’ 글씨여서 마음이 더 간다. 주련의 글을 읽어보자. “몸과 마음이 다 평등하고(身心悉平等), 안팎으로 다 해탈하며(內外皆解脫), 영원한 겁의 시간 동안 정념에 머물면서(永劫住正念), 집착도 얽매임도 없도다(無着無所繫).” 이곳에서 매일 이런 경관을 보고 산다면 집착과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

성자암에서는 곧바로 불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붙을 수 있다. 능선까지만 딛고 올라서면 그 뒤로는 그다지 힘든 구간은 없다. 불모산에서 가마봉으로, 거기서 연지봉을 거쳐 다시 옥녀봉으로 이어진다. 봉우리를 연신 오르고 내리긴 하는데,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다음 풍경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빼어난 경관이 저절로 발걸음을 이끄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푸른 바다와 섬, 그리고 지나온 암릉과 가야 할 암봉의 경관이 360도의 시야로 펼쳐진다.

지리산에서 아기자기한 경관의 절정이 펼쳐지는 곳은 옥녀봉이다. 옥녀봉에는 세 개 봉우리를 건너가는 두 개의 출렁다리가 놓여있다. 다리 위에 올라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도, 뒤로 물러나서 출렁다리를 바라보는 경관도 좋다. ‘그곳에서’ 보는 것도, ‘그곳을’ 보는 것도 다 좋다. 보통 산행구간에 놓인 출렁다리의 매력은 아찔한 스릴인데, 이곳의 출렁다리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깎아지른 벼랑이며, 칼날 같은 바위 능선, 위태로운 급경사의 사다리까지 그동안 지나온 구간이 간담이 서늘해지거나 아슬아슬해서 그렇다. 암봉의 허공에 달아맨 출렁다리 위가 오히려 안락하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 칼날 같은 암릉 구간의 아찔함

지리산에서 가장 아찔한 구간은 달바위로 이어지는 암릉이다. 까마득한 벼랑에 시퍼렇게 날이 선 칼처럼 바위가 길게 이어져 있다. 경관의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 엄숙하고 장엄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여기가 해발 400m의 산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관의 규모가 크다. 칼날 같은 바위를 징검다리처럼 딛고 간다. 여기 올라서면 엄청난 고도감이 주는 현기증도 현기증이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빼어난 경치의 감동 때문에 가슴이 두방망이질한다.

달바위 암릉엔 예전에는 없던 쇠 난간을 박아두었다. 그래도 오금이 저리는 건 매한가지여서, 쇠 난간은 그리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섬증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게 없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건너갔는데, 지금 다시 보니 간담이 서늘하다. 쇠 난간이 없었을 때, 저 아슬아슬한 구간을 어떻게 건너갔던 걸까. 그러고 보면 예전의 지리산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위험하고 아찔했다. 출렁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밧줄을 붙잡고 용을 써서 수직에 가까운 까마득한 직벽을 올라가거나 내려와야 했다. 어찌어찌 올라왔다가 벼랑 위에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그야말로 유격훈련을 방불케 하는 산행이었다.

사량도 지리산을 종주하면 줄곧 압도적인 자연 위에 제 몸 하나를 올려놓은 것 같은 구간을 걷게 된다. 내 몸을 다 드러내는 지점에서는, 당연히 내가 바깥을 보는 시선도 거칠 게 없다. 산행 구간이 위태로우면 위태로울수록 주변의 경관이 황홀한 건 이런 이치다. 그래서 자칫 무리하기 쉽다. 경관에 욕심을 내는 건 금물이다. 위험구간에는 우회로와 안전시설을 갖춰 놓았으니, 자신의 체력과 경험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렵다고 생각되면 고민하지 말고 우회로를 택하는 게 좋겠다. 사량도 지리산에서는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사량도와 통영 가오치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반짝이는 바다를 가르며 항해하는 모습.



# 사량도, 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지리산 산행을 마친 뒤에 섬 구경을 하는 게 순서. 사량도(蛇梁島)는 통영에 속한 섬이다. 섬 이름은 ‘사랑’이 아니라 ‘사량’이다. ‘뱀 사(蛇)’ 자에 ‘들보 량(梁)’ 자를 쓴다. 왜 하필 뱀일까. 사량도를 이루는 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섬이다. 북쪽이 ‘상도(上島)’, 그러니까 윗섬이고, 남쪽이 ‘하도(下島)’, 즉 아랫섬이다. 두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사량도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지리산은 윗섬에 있다. 아랫섬에도 암릉 구간이 멋진 칠현산이 있다.

윗섬과 아랫섬을 갈라놓는 건 바다다. 이 바다를 ‘동강(桐江)’이라 부른다. 두 섬 사이의 바다가 길고 좁아 아예 강(江)의 이름을 붙였다. 동강을 ‘사량(蛇梁)’이라고도 했다. 구불구불한 동강의 해협이 꼭 뱀의 형상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량도의 본래 이름은 ‘박도(撲島)’였다. ‘두드릴 박(撲)’ 자다. 파도가 거칠게 해안을 때려 그렇게 불렀단다. 박도가 사량도로 이름을 바꿔 달게 된 건 육지의 수군 부대가 섬으로 옮겨오면서부터다. 조선 시대 해안 경비를 담당한 수군 부대 지휘관을 ‘만호(萬戶)’라 하고, 만호가 주둔한 수군 부대를 ‘만호진(萬戶鎭)’이라 했다. 박도에 주둔한 만호진에 해협의 지명인 ‘사량’을 붙여서 ‘사량만호진(蛇梁萬戶鎭)’이라 불렀다. 외딴 섬을 수군 부대가 장악하면서, 군부대가 섬의 중심이 됐다. 박도란 본래 이름이 지워지고, 부대 이름 ‘사량’이 섬 지명으로 새겨진 이유다.

‘뱀 사(蛇)’자가 들어가는 섬 이름에 대한 다른 유래도 있긴 하다. 먼저 섬 전체의 모양이 뱀 같아서 이런 지명이 유래했다는 얘기. 지도를 보면 이런 얘기가 설득력이 없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섬에 뱀이 많아서’라는 주장도 있는데, 사량도에 뱀이 많기는 해도 다른 섬보다 더 많은 건 아니라는 게 섬 주민들의 얘기다.

사량면사무소 뒤편의 최영 장군 사당.



# 아랫섬에서 보는 병풍 같은 풍경

섬의 중심은 면사무소 위치로 가늠된다. 사량도의 면사무소는 ‘진촌(鎭村)’에 있다. 조선 시대 수군 부대인 사량만호진이 주둔했던 자리다. 수군 부대 흔적은 면사무소 앞 화단에 다섯 개의 비석으로 서 있다. 지금으로 치면 해군 부대의 대대장급 장교인 ‘만호’ 벼슬을 했던 장군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다. 비석 중 2개는 사량중학교 교정에 있던 것이고, 나머지 3개는 13년 전 진촌마을 우물을 청소하다 발견한 것이다.

면사무소 뒤쪽에는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 고려말 창궐하는 왜적을 격퇴한 최영 장군은, 삼남 지방 해안에서 무속신앙의 숭배대상이 됐다. 무속이 숭배하는 인물의 공통점은 ‘억울함’이다. 최영은 고려말의 명장으로 이성계에게 패하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유로 무속신앙에 의해 신이 됐다. 사당이 지어진 건 6·25 전쟁의 와중인 1952년. 사당도 최영 장군의 승전을 기념했다기보다는, 바다로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원혼을 달래는 공간에 가깝다.

사량도 아랫섬에는 일곱 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해발 349m의 칠현산이 있다. 사량도를 다녀간 이들이 칠현산을 다시 찾기도 하는데, 윗섬의 지리산과 아랫섬의 칠현산을 한꺼번에 종주하는 산꾼들도 있다. 아랫섬에는 해맞이 공원이 있다. 연도교 건너 하도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먹방마을로 접어드는 도로변 해안가의 공원이다. 하도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덕동 쪽으로 내려서면 바다 너머로 지리산의 긴 능선을 병풍 그림처럼 마주 볼 수 있다. 여기에 서면 종주하며 딛고 갔던 기이하게 솟은 암봉과 구름다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아름다운 경관에는 자연스럽게 녹아든 질서가 있다. 자연의 미감에는 균형과 조화가 있고, 장엄한 풍경의 바탕에는 경이로움이 있다. 멋진 경관은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운을 안겨준다. 충만한 기운이 돕는 건 치유와 회복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단순한 휴식 차원을 넘어, 이른바 ‘경관치유’로 이어지는 순서다. 사량도 지리산에 올라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를 치유한다’는 걸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 사량도 가는 배편

경남 통영의 가오치항에서도, 고성의 용암포 선착장에서도 사량도 가는 여객선이 뜬다. 가오치항에서 뜬 배는 사량도 동쪽 금평(진촌)선착장에 닿고, 용암포를 출발한 배는 사량도 북쪽 돈지리(내지)선착장에 도착한다. 가오치항에서는 40분, 용암포에서는 20분쯤 걸린다. 섬에서 나가는 배는 매시 정각 진촌에서, 매시 30분 내지에서 뜬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용암포를 들고나는 배의 승선요금이 싸다. 특히 차량 승선료는 용암포에서 가는 게 반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