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 대중 분노가 만든 가짜 뉴스죠
역사 속 오해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고 알려진 말인데요.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경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이 있는 300캐럿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약 67억원에 낙찰됐다고 합니다. 1780년대 중반엔 한 프랑스 여성이 앙투아네트를 사칭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빼돌렸대요. 왕비는 이 사기와 큰 상관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앙투아네트가 사치스럽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앙투아네트는 재정 파탄의 원흉으로 비난받으며 프랑스 혁명 시기에 처형당하죠. 경매에 나온 목걸이의 다이아몬드 일부가 사기극 당시 빼돌려진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우리는 교과서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를 접해요. 하지만 역사 속 이야기 중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오해가 많답니다. 오늘은 역사 속 대표적인 오해들에 대해 알아볼게요.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은 말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을 흔히 들어봤을 거예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겼다고 알려진 말인데요. 그리스 시민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한 소크라테스의 삶과 아주 닮아 보이지만, 그가 실제로 한 말은 아니에요. 그리스 델포이 신전 기둥 밑에 새겨진 글귀랍니다.
신전에 새겨진 이 말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똑똑히 알라’는 의미였대요. 신이 인간들에게 내리는 일종의 경고였던 것이죠. 정작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것이었어요. 자신의 삶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우리 영혼은 겉모습과 관계없이 점점 더 초라해질 것이라고 주장한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건한 성품이었어요. 그래서 당대 권력자들과 다른 지식인들의 미움을 받았어요. 결국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지요.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 또한 그가 한 말은 아니에요. 많은 학자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오다카 도모오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한 것처럼 와전된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쾌락주의는 욕망 버리라는 의미죠
단어 뜻 때문에 오해를 사고 있는 철학 사조도 있습니다. 바로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인데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쾌락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고, 쾌락을 통해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어요.
그가 추구한 쾌락을 육체적인 쾌락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는 욕심을 줄여 육체·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답니다. 쾌락만을 좇다 보면 오히려 고통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욕망을 줄이면 작은 쾌락에도 쉽게 만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에피쿠로스는 육체에 고통이 없고 정신에 불안과 근심이 없는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부르며 이상적인 상태로 정의해요. 큰 행복도, 큰 걱정도 없는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여긴 거예요.
에피쿠로스는 분수에 맞지 않는 욕구가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여기고 헛된 욕망을 버리기를 사람들에게 조언했어요. 오해와는 달리, 절제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쾌락과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었답니다.
가짜 뉴스의 피해자, 마리 앙투아네트
다시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농산물 수확량이 줄어들었고, 영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1775~1783)을 벌이는 미국에 막대한 군사 지원을 해줘 재정은 크게 악화됐어요. 밀가루를 비롯한 생활 물가는 급등했고, 서민들은 빵 하나를 만들어 먹기도 힘들었어요. 굶주림에 분노한 프랑스 시민들의 화살은 왕비인 앙투아네트에게로 향합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와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혼인하게 됐어요. 그에겐 끊임없이 나쁜 소문과 가짜 뉴스가 따라다닙니다.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은 그의 말이 아니라 장 자크 루소가 남긴 ‘고백록’의 한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알려집니다. 책엔 어느 공주가 “농민들에게 빵이 없다면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적혀 있어요. 평상시 먹는 딱딱한 빵이 없으면 부드러운 고급 빵(브리오슈)을 먹으면 되지 않냐는 황당한 말이죠. 이 공주가 누구인지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당시 백성에게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는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철없는 왕비’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한 사람이 왕비라는 가짜 뉴스가 퍼졌다는 것이죠.
당시 프랑스는 몇 십 년 전부터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겪고 있었지만, 화가 난 프랑스 백성은 재정 파탄의 원인으로 ‘사치스러운’ 앙투아네트를 지목하죠. 근거 없는 말들이 분노를 먹고 자라 힘을 얻은 거예요.
결국 앙투아네트는 반역과 국고를 낭비했다는 죄목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돼요. 역사학자들은 앙투아네트를 ‘죄에 비해 너무 큰 처벌을 받은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답니다.
모차르트를 독살한 살리에리?
때론 ‘2인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종종 모차르트를 시기했던 질투의 화신이자 불행한 2인자로 여겨지죠. 당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황제와 귀족들의 후원을 받기 위한 경쟁 관계였던 것은 맞지만, 적대 관계라곤 볼 수 없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말이랍니다.
오히려 둘은 ‘동료’에 가까웠다고 볼 수도 있어요. 몇 년 전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공동으로 작곡한 작품이 발견되기도 했거든요. 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는 인식과는 달리, 살리에리는 오랜 기간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악장을 맡았던 인기 작곡가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 때문에 1791년 모차르트가 죽은 이후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당시 기록을 참고해 볼 때 모차르트는 독이 아니라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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