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 열에 아홉 ‘가족사진’ 찍은 적 없어… 카메라 앞에선 마법이 일어나죠
[김윤덕이 만난 사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종훈
양종훈 사진가는 자비를 들여 제주·서울·안양소년원 세 곳에 소년원을 찾아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있으며 "몇 년이 지나면 틀림없이 이 아이들이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탈바꿈할 것, 사진 한 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입력 2024.03.11. 03:00업데이트 2024.03.11. 06:42
공항에서 제주소년원으로 차를 몰던 양종훈 상명대 교수가 “용두암 바다는 집 나간 둘째 아들도 받아주는 어머니의 품 같다”며 웃었다. 그는 부모의 사업이 실패해 육지로 떠났던 열여섯 살 때까지 제주 칠성통에서 살았다.
한길정보통신학교란 간판을 단 소년원은 가수 이효리가 소길댁으로 불리며 살던 애월읍 소길리에 있었다. 국내 손꼽히는 다큐멘터리 작가 양종훈은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날아와 이곳 아이들의 가족사진을 찍는다. 소년범 열 명 중 아홉이 가족사진을 찍어본 적 없다는 뉴스를 보고 제주·서울·안양소년원 세 곳에서 자비를 들여 시작한 일이다.
“말 안 듣죠, 처음엔. 머리를 이마 뒤로 넘기면 사진이 더 잘 나온다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부모님들도 어색해서 카메라를 잘 못 쳐다봐요. 근데 촬영이 끝날 즈음엔 달라져요. 마법이 일어납니다, 하하!”
◇미웠던 엄마를 업고 웃다
-가족사진 촬영을 작년 2월에 처음 시작했더라.
“일단 서울, 안양, 제주에서 시작했다. 전국에 소년원이 10곳 있는데, 모든 곳에서 가족사진 프로젝트가 진행됐으면 좋겠다.”
-왜 가족사진이었나.
“소년원 아이 상당수가 결손가정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와 사이가 좋을 수 없고 가족 관계가 이미 훼손된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의 90%가 가족사진을 찍어보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끼어들기로 했다.”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한다. 부모와 멀찌감치 떨어져 눈도 안 마주친다.”
-냉랭한 분위기를 어떻게 녹이나?
“내가 그 무뚝뚝한 제주 해녀 삼춘들을 20년 넘게 촬영한 사람이라 상대를 무장해제하는 데는 재주가 있다(웃음). 일단 긴장이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빵을 구우며 부모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남자애들에겐 엄마를 업어보라고도 한다. 등에 업힌 엄마는 쑥스러워하고 무표정했던 아들 얼굴엔 만감이 교차한다. 한 아빠는 아들과 티격태격하며 쿠키를 만들더니 완성된 과자에 아이가 환호하자 눈물을 흘리더라. 왜 이런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는지 가슴 아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족이 있는지.
“두 딸이 다 학교 폭력으로 소년원에 들어와 있었다. 딸들을 만난 엄마가 30분을 울기만 해서 사진 촬영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한 가정인데 아버지의 폭력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된 경우였다. 엄마는 무슨 죄가 있나 싶어 두 딸에게 엄마를 꼭 안아주게 했다. 결국 웃으면서 촬영했다.”
◇모든 걸 용서하는 바다처럼
-소년원 모든 아이들이 촬영하는 건 아니더라.
“부모님이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서 일단 희망하는 가족에 한해 찍는다. 근데 일단 촬영이 끝나면 표정들이 확 달라져 있다. 아이들은 사진보다도 엄마 아빠와 대화하며 눈길, 손길을 스친 것 자체로 행복해한다. 부모님들도 ‘먹고살기 바빠 가족사진 찍어본 적 없는데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다’고 절을 한다. 나는 가족사진을 찍은 것 자체로 용서와 화해가 시작됐다고 믿는다.”
-모든 경비를 사비로 지출하나.
“물론이다. 얼마 들지도 않는다. 사진은 3종 세트로 뽑아서 선물한다. 집에 걸 큰 사진과 소년원 관물대에 넣을 사진, 그리고 지갑에 넣고 다닐 사진으로. 사진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오고, 다시는 나쁜 짓 말아야지 다짐할 수 있게 최고의 퀄리티로 찍는다(웃음).”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까.
“그래서 법무부와 검찰청 지원을 받아 아이들을 계속해서 팔로(follow)한다. 이제 1년밖에 안 돼 유의미한 통계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재범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최소 10년은 진행할 생각이다.”
-제주소년원은 ‘손 심엉 올레(손 잡고 올레)’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더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제주지검장 하실 때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소년보호위원들과 아이들이 1대1로 손 잡고 올레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시간이다. 나도 참여해봤는데 아이들이 거침없이 속이야기를 털어놓더라(웃음).”
-소년원 안에도 올레길이 생긴다던데.
“소년원에 1만3000여 평 곶자왈숲이 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법무부와 협약해 숲의 원형을 해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마음 공부, 생태 탐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내고 있다.” 제주소년원 정윤 교장은 “1.5㎞ 길이로 1시간 내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며 “빠르면 6월 전에 개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히말라야까지
-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됐나.
“대학 시절 로버트 카파의 전쟁 사진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루이스 하인의 영향도 컸다. 공장과 광산에서 일하는 아동노동의 가혹한 현실을 사진으로 폭로해 미국의 아동노동법을 통과시킨 사람이다.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20년 전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을 찍은 사진은 유엔에서도 화제였다.
“스와질랜드(에스와티니)는 국민의 70% 이상이 에이즈 환자인데, 내가 속한 NGO로부터 현장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가 왔다. 가족은 만류했지만, 내 모토가 ‘남들이 안 찍는 걸 찍는다’여서 바로 날아갔다(웃음).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사진집을 만들어 보고서를 냈다. 유엔은 스와질랜드 지원을 중단할 계획이었는데 내 사진집에 담긴 그곳의 실상을 보고 다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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