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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66] 풍중낙엽 (風中落葉)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7. 12:59

[정민의 세설신어]

[166] 풍중낙엽 (風中落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2.07.10. 23:29
 
 
 
 

윤원형(尹元衡·?~1565)은 명종 때 권신이었다. 중종의 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명종 즉위 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틈타 권력을 독점했다. 서울에 큰 집만 10여 채였고,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의복과 수레는 임금의 것과 같았다. 본처를 내쫓고 첩 난정(蘭貞)을 그 자리에 앉혔다. 20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가 탄핵을 받아 실각하자 백성들이 돌멩이와 기왓장을 던지며 침을 뱉고 욕을 했다. 그는 원한을 품은 자가 쫓아와 해칠까 봐 이곳저곳 숨어다니면서 분해서 첩을 붙들고 날마다 엉엉 울었다. 난정은 전처 김씨를 독살하기까지 했다. 고발이 있은 후 금부도사가 왔다는 잘못된 전언을 듣고 난정은 놀라서 약을 먹고 자살했다. 윤원형도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명나라 서학모(徐學謨)가 말했다. "얼굴은 형세에 따라 바뀐다. 올라갔을 때와 내려갔을 때가 완전히 다르다. 기운은 때에 따라 옮겨간다. 성하고 쇠한 것이 그 즉시 드러난다(顔隨勢改, 升降頓殊. 氣逐時移, 盛衰立見)." '귀유원주담(歸有園��談)'에 나온다. 돈 좀 벌면 금세 으스대다가 망하면 주눅 들어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잘 나갈 때는 그 기고만장하는 꼴을 봐줄 수가 없더니 꺾이자 금세 치질이라도 핥을 듯이 비굴해진다.

 

청나라 노존심(盧存心)이 '납담(蠟談)'에서 말했다. "득의로움을 만나면 뒤꿈치를 높여 기운이 드높아진다. 이를 일러 물 위의 부평초라고 한다. 실의함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기운을 잃고 만다. 이를 두고 바람맞은 낙엽이라고 한다. 오직 기특한 사람이라야 능히 반대로 한다. 통달한 사람은 또한 평소와 다름이 없다(逢得意則趾高氣揚, 謂之水上浮萍. 遇失意卽垂頭喪氣, 謂之風中落葉. 惟畸人乃能相反, 在達者亦只如常)." 득의는 뿌리 없는 부평초요, 실의는 바람 앞의 낙엽이다. 딴데로 불려가고 날려가면 자취를 찾을 수조차 없다. 알량한 득의 앞에 함부로 날뛰고, 작은 실의로 낙담하는 것은 소인배의 짓이다. 기특한 사람은 득의에 두려워하고, 실의에서 기죽지 않는다. 통달한 사람은 상황 변화에 아예 흔들림이 없다.

 

얼굴은 얼골, 즉 얼의 꼴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제 얼굴에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제 살아온 성적표가 낯빛과 눈빛 속에 다 담겨 있다.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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