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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번뇌를 벗어라, 이 門을 넘기 위해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5. 16. 15:05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번뇌를 벗어라, 이 門을 넘기 위해선…

 

문화일보입력 2015-01-07 16:30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입구에서 바라 본 무량사 경내. 소나무와 석등, 오층석탑, 극락전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한눈에 들어오는 일체감이 조화롭다. 석등과 오층석탑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임정현 기자 theos@munhwa.com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금강 하구의 신성리 갈대밭은 갈대들이 하얗게 탈색된 겨울에 찾아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휴일을 맞아 연인, 가족 단위의 낭만객들이 제법 많다. 임정현 기자 theos@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과정은 산을 넘는 것만큼이나 험난하다. 이리저리 휩쓸려 정신없이 지나다 보면 어딘가에는 생채기가 남아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연초는 치유가 필요한 시간이다. 치료는 병을 낫게 하는 ‘행위’를 전제로 하지만, 치유는 쉬는 것만으로도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치유를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은 여행이다. 다만 장소를 잘 골라야 한다. 일출이 장엄한 바다나 산도 좋지만 그런 곳은 대개 사람들로 붐비기 마련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곳을 원하지 않는다면 복잡한 곳은 피하는 게 좋다. 지난 한 해는 제대로 걸어왔는지 새로 받아든 한 해는 어떻게 써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싶다면 가능하면 ‘조용한 곳’을 찾는 것이 좋다. 그런 기대를 충족해줄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충남 부여의 만수산(萬壽山) 무량사(無量寺)와 인근 서천군에 있는 신성리 갈대밭이다. 나에게 누가 감춰두고 혼자만 찾아다니는 절이 있느냐고 물으면 첫 번째로 꼽는 절이 무량사다. 곶감 빼먹듯 자꾸 빼먹어도 질리지 않는 곳,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내려놓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무량사 = 흰 눈과 적요를 함께 이고 있는 일주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맞배지붕 하나를 우주인 양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 일주문은 원래 그렇게 잠깐 멈췄다 들어가는 문이다. 부처의 영토로 들어서기 전에 마음을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을 품고 있다.

 
무량사 일주문은 손질을 최대한 자제하고 나무의 울퉁불퉁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놓아서 어느 절의 일주문보다 친근한 느낌이 든다. 절로 오르는 길에는, 가으내 온통 붉은 등을 내걸었던 감나무들이 까치밥까지 모두 내주고 앙상한 몸으로 서 있다. 저만치 만수산이 너른 품을 펼쳐 안을 듯 반긴다.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계단에서는 걸음을 다시 한 번 멈추고 문 안을 찬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처마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 아래로 석등(보물 제233호), 오층석탑(보물 제185호)이 일직선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끝에 극락전이 있다. 누군가 치밀한 계산으로 위치를 정한 듯, 그림처럼 조화롭다. 절은 산속에 있되 그 산이 너른 자락을 내준 덕분에 앉은 터가 옹색하지 않다. 극락전까지 걸어가는 동안 경건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고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진다. 무량사의 주불(主佛)은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이다.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한 수명을 가졌다 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한다. 절 이름도 거기에서 나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명은 대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껏 수십 년을 받아 태어난 범인이야, 무량이라는 말만 들어도 억겁의 죄가 사라진다는 말을 되새기며 고개나 주억거릴 뿐이다.

곱게 늙은 노인의 모습이 이럴까? 극락전은 고졸(古拙)하되 우아한 모습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지붕을 잇는 선은 만수산 능선을 닮아 있어 날렵하되 날카롭지 않다. 극락전 앞에 서서 합장으로 예를 치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영산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꽃도 잎도 털어버린 늙은 배롱나무가 가지를 흔들어 객을 맞는다. 원통전을 스쳐 지나 영정각 앞에 선다. 어쩌면 오늘 이곳에 서기 위해 먼 길을 왔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어놓은 영정각에는 초상이 하나 걸려있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의 중년 남자. 물속을 들여다보듯 내면이 보인다.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이다. 이 절에서는 설잠(雪岑) 스님이라고 부른다. 어릴 적부터 천재로 이름을 떨쳤지만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걸 버리고 떠돈 남자. 그리하여 후대에 생육신이라 불린 남자. 시대와 불화하여 숱한 기행을 남겼지만, 누가 뭐래도 당대의 문장가이자 시인이고 학자였다.

그는 이 절에서 굴곡 많았던 생애를 마쳤다. 왜 말년에 이 궁벽한 절까지 왔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게 없다. 죽음을 예감하고 파도처럼 거칠었던 생애를 재우러 왔을까? 갈등과 번뇌의 불을 끄고 관조와 깨달음의 등을 걸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을까. 그의 초상으로 오후의 창백한 햇살이 비껴 내린다. 빛을 받은 눈에서 반역의 시간을 온몸으로 감내했던 한 사내의 고통을 엿본다. 이제야 무겁다고 투덜거리며 지고 온 고통이 얼마나 사사로운지 깨닫는다. 타인의 삶의 무게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는 건 비겁한 짓이 아니다.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좋은 처방전이다.

매월당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서 극락전 뒤뜰을 천천히 걷는다. 지금은 쓸쓸하지만 가을에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단풍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곳이다.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 보지만 사람의 흔적은 없고 산신각 뒤의 조릿대만 으쓱으쓱 서걱거린다. 다시 극락전 앞 너른 마당으로 나와 느티나무 아래 돌의자에 앉는다. 요사채 처마 끝의 풍경이 마침 불어온 바람에 뎅그렁뎅그렁 울린다. 그 소리가 남아있는 번뇌를 하나씩 지워준다. 저자에서 지고 온 상처와 갈등도 한 겹씩 떨어져 나간다. 오후 한나절의 시간을 봄 병아리처럼 노랗게 내리는 햇살에 기댄다.

#신성리 갈대밭 = 겨울의 신성리 갈대밭은 가능하면 오후에 찾아가는 게 좋다. 아침의 바람이 다르고 정오의 바람이 다르고 해가 설핏 기우는 시간의 바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람에 따라 갈대들의 노래도 달라진다. 다만 겨울 해가 짧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여 무량사에서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까지는 차로 한 시간 이내에 닿는 멀지 않은 거리다.

신성리 갈대밭은 금강하구에 펼쳐진 갈대 군락지다. 너비 200m, 길이 1.5㎞ 정도로 범위가 무척 크며, 제방에 올라서면 드넓은 갈대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성리 갈대밭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0년에 제작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히트하면서부터였다. 남북한 병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이곳 갈대밭에서 촬영했다.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힌다.

갈대밭은 경계를 허무는 곳이다. 갈대밭으로 숨어들면 세상과 나의 구분조차 모호해진다. 그 누구의 눈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익명성이 주어진다. 그곳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길이란 길을 다 지우고 나면 모두가 길이 되기 마련이다. 중간중간 갈대문학 길, 영화테마 길, 솟대소망 길 등의 안내판을 세워놨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도 갈대들과 만나는 건 마찬가지다.

갈대는 저희끼리 몸을 비비며 시간을 지워 나간다. 갈대들의 노래에 그 속에 숨은 새들이 화답을 한다. 엄청난 숫자의 새다. 사람이 지나가도 새들은 달아나지 않는다. 결국 이곳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갈대와 새들의 영역이다. 강변의 흙을 그러쥐고 한 생을 버티는 갈대는 고스란히 서서 가을을 나고 겨울을 견딘다. 바람이 불면 허리를 굽히고 바람이 지나면 그 끝자락을 붙잡고 다시 일어선다. 후손을 위해 영역을 지키는 일은 봄이 올 때까지 계속된다. 새싹들이 파랗게 올라오는 봄날 멀쩡해 보이는 갈댓잎에 손을 대면 하얗게 부스러져 바람에 날린다. 사람 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 몇 마리가 노을 속으로 빠르게 몸을 던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들은 더 이상의 디테일을 포기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비로소 어둠이라는 매개를 통해 동질화된다. 갈대밭에 고단한 삶 한 자락 내려놓고 어둠이 주는 안온 속에서 위안을 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