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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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전북 고창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6. 9. 13:56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스르륵…스르륵… 땅위의 녹색바다 그곳은 ‘꿈의 세상’

문화일보입력 2015-04-29 15:44

  전북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밭. 스르륵, 스르륵… 해 질 녘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청보리들이 몸을 비비며 노래를 한다. 김선규 기자 ufokim@


전북 고창 청보리밭 & 고인돌 유적

소쩍새가 울음 한입 물면 붉은 꽃잎이 우주를 하나 연다. 구름이 머무는 산자락에 수백 기의 돌무덤이 봄볕을 안고 졸고 있다. 그 위를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아예 팔베개를 하고 누워버린다. 구불구불 흘러가던 성곽길이 소나무 사이로 꼬리를 감춘 자리, 철쭉꽃이 활활 한 시절을 태운다. 황토색 벌판마다 푸른 생명들이 우쭐우쭐 키를 잰다.

4월, 전북 고창의 풍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스케치하면 이런 모습이다. 꽃 피고 지는 봄날이 곱기로야 어딘들 빠지고 싶으랴만, 고창은 그중에서도 발군이다. 빼어난 산과 너른 들판이 사방으로 줄달음치고 풍요로운 바다가 있다. 이별이 아쉬운 동백이 땅 위에서 다시 한 번 꽃피는 선운사,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고인돌 군락지, 옛사람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있는 고창읍성과 무장현읍성, 푸른 보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학원농장… 가는 곳마다 눈과 마음이 황홀해지는 곳이 고창이다. 그뿐이랴. 판소리 이론을 정립한 동리 신재효와 미당 서정주가 여전히 살아 쉼 쉬는 고장이기도 하다. 그곳, 고창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청보리밭(학원농장) = 이른 아침 청보리밭에는 싱그러운 봄 내음이 가득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색 물결이 출렁거린다. 전체 면적이 82만5000㎡라니 가늠해보기도 쉽지 않다. 어찌 바다에만 파도가 있으랴. 가벼운 바람에도 보리밭은 진저리를 치며 몸을 뒤챈다. 황토 위를 넘실대는 거대한 바다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보리밭 자체가 시고 노래다. 그러니 이곳에 선 순간만큼은 누구나 시인이고 가수다. 구불거리며 뻗어 나간 황톳길을 걷다 말고, 정말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무심코 돌아본다. 아! 오래전에 잃어버린 풍경이 거기 있다. 보리밭 사이로 종달새를 쫓는 소년이, 밭둑에서 나물 캐는 순이가 있다. 푸르고 순수한,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나 사랑할 준비가 돼 있는 붉은 볼의 소년. 순서 없이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씩 불러본다. 종달새, 보리피리, 깜부기, 보리서리… 그리고 이름조차 희미해진 친구들.

어린 시절로 이어진 길은 기억 창고 저 안쪽까지 찾아간다. 배고프던 날들도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다. 진달래를 훑어 먹어도 찔레순을 꺾어 먹어도 허기지기만 하던 시절. 기어이 눈물 섞인 단어와 만난다. 보릿고개…. 속절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고통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세상을 걸어갈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재산이었다. 보리 또한 혹독한 겨울을 견뎌 푸르른 오늘을 얻지 않았던가.

이곳의 보리는 조금 일러서, 이삭이 모두 패었다. 10월 중순에서 말 사이에 파종해서 이듬해 6월 중순에 수확한다고 한다. 올해는 6월 10일에서 20일 사이에 수확할 예정이다. 보리를 베고 나면 그곳에 메밀을 뿌린다. 가을이 오면 소금 같은 메밀꽃이 천지간에 가득할 것이다.

보리밭 사이로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다. 하지만 아무 길이나 선택해도 상관없다. 길마다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이곳에서야말로 ‘이름’은 별 의미가 없다. 반드시 목적지에 닿아야 하는 길이 아니라, 그저 천천히 걷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유채꽃 길을 버리고 한적한 길을 택한다.

이 붉은 색깔의 흙은 어디에 푸른 물감을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토해낸 것일까. 황톳길이 부드럽게 발을 감싸 안는다. 이런 길이라면 종일 걸어도 행복할 것 같다. 악머구리 떼처럼 들끓는 생각을 버리고 가슴에 푸른색을 자꾸 퍼 담는다. 도시로 돌아가면 희망의 싹을 틔우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낮은 구릉을 넘다가 잠시 서서 귀를 기울인다. 스르륵, 스르륵… 보리들이 몸을 비비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를 장노출로 설정해놓고 셔터를 누르면 바람도 보리의 노래도 모두 찍힐 것 같다.

자그마한 저수지를 지나고 허리 굽은 소나무들과 눈도 맞추고,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 유채꽃밭을 지난다. 잉잉잉∼ 유채꽃을 탐하는 벌들의 날갯짓조차 삶의 찬가로 들린다. 이 순간을 표현할 단어를 고르라면 충만, 평화… 아! 사람이 만들어낸 언어가 얼마나 빈곤한지 이제야 알겠다.

 고인돌 유적지를 따라 산책로가 놓여져 있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촘촘이 놓인 고인돌을 따라 걷다보면 아득한 옛날을 살다 간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김선규 기자 ufokim@

#고인돌 유적 = 고창에서 걷기 좋은 길을 꼽으라면 고인돌 유적지를 빼놓을 수 없다. 유적지로 가기 전에 고인돌 박물관부터 들른다. 박물관은 선사시대 생활문화를 실감 나게 재현해놓았다. 1∼3층의 전시실과 체험 공간, 야외전시장 등을 거치면서 청동기 시대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유적지로 향한다. 기록 이전의 시대, 아득한 옛날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냇가의 유채꽃이 세상을 환하게 채색하고 그 위로 나비가 난다. 고인돌 유적지는 별도로 떨어져 있는 6코스를 제외하면 1코스부터 5코스까지 이어져 있다. 먼저 선택한 곳은 1, 2코스. 다리를 건너 관리소를 정면으로 놓고 오른쪽 길로 가면 된다.

나지막한 산자락이 온통 고인돌을 품고 있다. 그 앞을 천천히 걷는다. 이런 길에서는 모든 것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키 낮은 풀이나 여린 잎들에도 말을 걸어봐야 한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득한 옛날을 살다 간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철쭉이 만개한 고창읍성 성곽길을 따라 걷고 있다.

2코스에서 맨 먼저 만난 고인돌은, 큰 돌 밑에 낮은 굄돌들을 고인 바둑판식. 고인돌에도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참 잘생겼다. 200∼300t짜리 큰 돌도 있다는데, 어떻게 옮기고 어떻게 올려놓았을까. 수천 년 뒤 태어난 범부로서는 그저 감탄이나 하는 수밖에. 옛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곡진한 마음에 숙연해진다. 거석문화에는 소망이 들어있다. 돌에 배인 소망을 읽어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2코스의 고인돌은 대체로 우람한 데다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권력자들의 무덤이 아닐까 혼자 짐작해본다. 이 정도의 돌을 채석해서 옮기고 무덤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동원됐을까. 2코스에는 41기의 고인돌이 있다.

1코스는 2코스를 지나 언덕을 조금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는 53기의 고인돌이 있다. 대개는 땅을 파서 무덤방을 만들고 큰 돌을 올려놓은 개석식이다. 언뜻 보면 그냥 너럭바위처럼 보인다. 규모가 큰 고인돌 앞에 벤치가 놓여있다. 거기 앉아서 바라보니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하! 왜 이곳이 고인돌의 영역이 됐는지 알 것 같다. 낮은 산을 뒤로 두고 펼쳐진 큰 내와 넓은 들판.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옛날 사람들도 저 너른 들에서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언덕을 내려와 3코스로 간다. 이곳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작심하고 꾸며놓은 옛사람들의 정원처럼 보인다. 고인들의 모양도 여러 가지다. 살아생전 각자의 모습이 다르듯이, 죽은 뒤에도 서로 다른 모양의 돌 아래 묻힌 것이다, 3코스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운곡람사르습지와 동양최대 고인돌인 운곡고인돌로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4코스로, 고인돌의 재료가 되는 돌을 채취하는 채석장이 있다. 보통은 그냥 지나쳐가지만 언덕으로 올라가 3코스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이 길이 가장 아름답다.

4코스까지 둘러보고 5코스로 간다. 이곳에는 가장 많은 220기의 고인돌이 있다. 크고 작은 돌무덤들이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줄을 서 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산 전체가 사자(死者)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죽음과 죽음 사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삶과 죽음 사이도 지척임을 실감한다. 길섶에는 할미꽃 대신 흰제비꽃이 점, 점, 점 피어있다. 찾아주는 이 없어도, 바람이 흔들어도 꿋꿋하게 한 생을 견디고 있구나, 작은 꽃이여!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들여다본다. 자연에 들면 들꽃 하나도,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이곳에서는 산 자도 죽은 자도 꽃도 바람도 남남이 아니다.

#그밖에 가볼 만한 곳 = 고창에는 들러봐야 할 성이 두 곳이나 있다. 모양성으로도 불리는 고창읍성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단종 원년(1453)에 축성한 성곽으로 경관이 무척 뛰어나다. 특히 4월이 아름답다. 벚꽃이 지고 나면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철쭉을 따라 성곽 바깥 길을 걷거나 성곽 위로 한 바퀴 돌 수 있다. 성곽 안쪽을 따라 걷는 소나무숲길도 천천히 걷기에 좋다. 성 안에는 동헌과 내아, 작청 등이 있다.

무장현 관아와 읍성은 태종 17년에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하여 무장현으로 삼으면서 백성과 승려 2만여 명을 동원해서 축성했다. 객사 등이 남아 있으며 지속적으로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성 안을 걷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도닥거려준다. 선운사의 녹음도 아름답다. 4월 말까지는 동백꽃을 볼 수 있다.

 

고인돌 1550기중 447기 세계문화유산

문화일보입력 2015-04-29 15:39

 

 선운사 도솔천 수면으로 아름다운 나무 수채화가 그려지고 있다.


‘보리 천국’ 학원농장의 역사는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5공화국 때 국무총리를 지낸 진의종 씨가 고창군 서남부의 야산 10만여 평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에는 오동나무, 삼나무와 함께 뽕나무를 심어서 양잠을 했고 1970년대에는 목초를 심어 한우비육 사업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수박·땅콩 등을 심었다.

현재는 진 전 총리의 아들인 진영호 씨가 관리를 맡고 있다. 1992년 귀농해서 작물을 보리와 콩으로 전환하고 비닐하우스에서 화훼 재배를 하는 한편 관광농원 인가를 받아 농촌관광사업을 시작했다. 일손을 덜기 위해 시작한 보리농사가 자연경관과 어울려 관광객을 불러 모으자, 가을 농사도 경관이 아름다운 메밀로 바꿨다. 여기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더하면서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학원농장에서는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청보리밭 축제’를 연다. 올해는 4월 18일에 시작해서 5월 10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고창고인돌유적지는 그 자체가 고인돌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2008년 현장 조사 결과 고창 지역에 총 155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447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고창 고인돌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가지 형태의 고인돌을 함께 접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라는 것이다. 바둑판식을 중심으로 탁자식과 지상석곽식, 개석식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 그중에는 바둑판식과 개석식이 많지만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중간 형태로 석관이 땅 위에 드러난 지상석곽식 고인돌도 많다. 이 고인돌은 고창에서만 볼 수 있다.

탁자식 고인돌은 하단부에 얇고 넓은 판석을 쓰고 상석 역시 판석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시신이 매장되는 매장부를 지하가 아닌 지상에 둔 것으로 보는데 원래는 사면을 모두 막아 판석 자체가 석관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둑판식은 하단부를 판석이 아닌 굄돌을 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석실을 지하에 만들고 4∼8개 정도의 굄돌을 놓은 다음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아 바둑판 형태를 하고 있다. 지상석곽식은 하단부에 탁자형 판석보다 높이가 낮은 판석을 쓰거나 여러 개의 판석을 덧대어 지상에 석곽이나 석관을 만들었다. 개석식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고인돌로,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란 돌만 올려놓은 형태를 말한다. 덮개돌은 10∼20t 정도로 작은 것도 있지만 큰 것은 200∼300t이 넘는 것도 있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위와 경제력에 따라 고인돌의 규모도 달라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주로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됐다는 주장과 이르게 봐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 여러 견해가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초기 철기시대 움무덤이 등장하기 이전 즉,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서 발견되지만, 황해도·전라도에 가장 많이 밀집돼 있다. 경상도와 충청도 등에도 여러 곳이 있다.

 
 
 

전북 고창 청보리밭 & 고인돌 유적 가는 길·묵을 곳·먹을 것

문화일보입력 2015-04-29 15:38


청보리밭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서천공주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나들목에서 빠지면 되지만 청보리밭은 조금 더 내려가 고창 나들목에서 빠진다. 아산 방면으로 오른쪽 길을 택해 달리다 무장교차로에서 공음·무장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무장면소재지에서 796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공음·청보리밭 쪽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묵을 곳·먹을 것 = 자연경관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고창오토캠핑리조트(063-562-3318)를 이용해볼 만하다. 카라반과 펜션, 황토체험방을 갖추고 있다.

고창읍성한옥체험마을(063-563-9977)에서는 조선시대 관아와 전통 한옥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고창은 풍천장어로 유명하다. 풍천장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선운산 입구 주변 강에서 잡은 장어를 말한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선운사로에는 선운사풍천장어, 연기식당, 신덕식당, 초원풍천장어 등 풍천장어집들이 밀집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