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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꽃보다 예쁜 겨울눈, 나무는 다 계획이 있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2. 22. 17:20

[김민철의 꽃이야기]

꽃보다 예쁜 겨울눈, 나무는 다 계획이 있었다

<179회>

입력 202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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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는 낙엽을 떨구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에, 이르면 늦봄부터 겨울눈을 만들어놓고 봄바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즘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겨울눈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봄꽃 선봉대인 산수유는 벌써 꽃눈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막 터지고 있는 산수유 꽃눈. 2월말 모습이다.

겨울눈은 잎 지는 나무들이 이듬해 필요한 꽃이나 잎을 겨우내 잘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조직입니다. 본격적으로 꽃이 피거나 잎이 싹트기 전인 요즘이 이 겨울눈을 관찰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먼저 겨울눈은 꽃눈과 잎눈이 있습니다. 대체로 뾰족한 것이 잎눈, 둥근 것이 꽃눈입니다. 작은 겨울눈 안에는 한 무더기의 꽃, 여러 장의 잎들이 차곡차곡 들어차 있습니다. 나무의 한해 설계도인 셈입니다. 식물 입장에서 더 귀중한 꽃을 품은 꽃눈이 잎눈보다 큰 편입니다.

                                              비목나무 겨울눈. 뾰족한 것이 잎눈, 둥근 것이 꽃눈이다.

겨울눈은 제각각 개성 있는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수들은 겨울눈을 보고 나무를 구분합니다. 겨울눈과 잎자국으로 나무를 공부하는 ‘겨울나무의 시간(목수책방)’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관심 있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겨울눈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것은 목련 종류일 것입니다. 요즘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목련은 새싹을 보호하기위해 솜털 옷을 껴입고 있습니다. 큰 것은 꽃눈이고 잎눈은 가지 옆에 조그맣게 달려 있습니다.

                                         백목련 겨울눈. 큰 것은 꽃눈이고 잎눈은 가지 옆에 조그맣게 달려 있다.

칠엽수 겨울눈은 솜털 대신 수지 성분의 끈끈한 물질을 바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겨울눈은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립니다. 겨울에 겨울눈이 얼지 않게, 해충이 파고들지 못하게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칠엽수 겨울눈. 끈끈한 수지 성분을 바르고 있다.

반면 작살나무 겨울눈은 한겨울에도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견딥니다. 이런 겨울눈을 맨눈이라고 합니다. 작살나무가 2세들을 강하게 키운다고 해야할까요, 검소하게 키운다고 해야할까요.

작살나무 겨울눈. 비늘이 없는 맨눈이다.

진달래와 철쭉, 산철쭉, 영산홍은 비슷하게 생겼고, 특히 산철쭉과 영산홍은 비슷한 꽃이 있어서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겨울눈을 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진달래는 달걀형 겨울눈이 여러 개 뭉쳐 달리고 철쭉은 큰 겨울눈이 한개 달리는데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달래(왼쪽)와 철쭉 겨울눈.

산철쭉은 겨울눈이 작은 편이고 황갈색의 누운 털과 함께 샘털도 있어서 끈적거립니다. 특히 어린 잎 같은 것이 몇 개씩 달려 겨울눈을 감싸는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영산홍은 아래 사진처럼 잎이 떨어지지 않아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잎자국(엽흔·葉痕)은 잎이 떨어진 자리에 남는 자국을 말합니다. 잎자국 안에는 관다발 자국이 보이는데, 이 개수와 모양이 달라 나무를 구분할 때 쓸 수 있습니다. 가죽나무는 큼지막한 잎자국 위에 반구형의 겨울눈을 만듭니다. 가죽나무 잎자국은 하트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그 모양이 호랑이 눈 같다고 가죽나무를 호안수(虎眼樹)라고도 부릅니다. 잘 보면 물과 양분의 이동통로인 관다발자국이 V자형으로 배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죽나무는 주변에 흔한데다 큼지막해 잎자국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나무 아닐까 싶습니다.

                                                                                  가죽나무 잎자국과 겨울눈.

가래나무 겨울눈과 잎자국 모습은 손오공 또는 낙타 얼굴을 연상시킵니다. 가래나무과 나무들은 비슷한 겨울눈과 잎자국을 가져서 민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호두나무, 산에서 볼 수 있는 굴피나무에서도 비슷한 모양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가래나무 잎자국과 겨울눈. 손오공 또는 낙타 얼굴을 연상시킨다.

 

나무들은 겨울눈을 이르면 늦봄부터 만들기 시작해 늦어도 겨울이 오기 전에 완전한 모습을 갖춘다고 합니다. 늦봄부터 다음 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나무처럼 주도면밀하게 미래를 준비하면 어떤 일을 하든 실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겨울눈을 보면서 나무에게 또 하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