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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두진이 던진 화두… 아들 박영하는 그림으로 그렸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2. 2. 14:42

아버지 박두진이 던진 화두… 아들 박영하는 그림으로 그렸다

부친이 제시한 詩語 ‘내일의 너’
아들은 수십년째 추상화로 표현
‘의금상경’展 학고재서 25일까지

 

입력 2023.02.02 03:00
 
 
 
 
 
 
                                                             박영하 ‘내일의 너’(146×97㎝) 일부. /학고재

‘해야 솟아라…’로 유명한 시인 박두진(1916~1998)은 아들에게 ‘내일의 너’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화가 박영하(69)씨는 수십년간 이 주제로 추상화를 그려왔다. “구체적인 의미를 설명해주지는 않으셨다”면서도 “예술가는 일반인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내일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존재로서 회화의 본질을 고민하기 위해 이 화두를 그림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꾸준히 ‘내일의 너’를 제목으로 한 그림을 발표해오고 있다. 토담을 연상케 하는 흙빛 바탕에 이지러진 형상…. 내일을 알 수 없듯 해석은 끝내 미지(未知)로 남는다. “주장이 확실한 그림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연작에 이 제목이 들어맞는다.”

                                                      윤상렬 2022년작 ‘침묵 MA-29′(122×122㎝). /학고재

 

화가 윤형근(1928~2007)은 캔버스에 스며든 먹빛의 묵상을 선보인 단색화 거장이다. 그의 조카인 화가 윤상렬(53)씨는 필기도구 샤프펜슬로 가는 직선을 무수히 그어 화면을 어둠으로 채워내는 ‘침묵’ 연작을 2009년부터 묵묵히 진행하고 있다. 손으로 그린 선(종이)에 컴퓨터로 그은 선(투명 아크릴)을 포개 만든 입체적 평면회화다. 7개 직업을 거치며 치열하게 작가의 길을 고민했던 윤씨에게 ‘침묵’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과 같았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고도의 집중력과 노동력이 빚어낸 섬세한 선형(線形)이 한올씩 쌓아올린 시간의 축적처럼 느껴진다.

 

25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단체전 ‘의금상경’이 열린다. 전시 제목은 비단옷 위에 삼베옷을 걸쳤다는 뜻으로, 배경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대신 진중한 자세로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 15인을 소개하는 자리다. 스승 이우환의 ‘바람’ 연작을 연상케 하면서도 획의 흘러내림을 강조한 재불화가 박인혁(46)씨의 ‘회색 풍경’ 연작처럼 강렬한 작품 55점이 전시장에 걸려있다. 삼베옷 너머를 알고나면 그림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