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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정·허수경·고정희… ‘죽은 시집’의 부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27. 14:17

 

진이정·허수경·고정희… ‘죽은 시집’의 부활

‘문학동네포에지’ 시리즈 인기
절판 시집 총 100권 복간 예정

입력 2023.01.27 03:00
 
 
 
 
 
 

 

작년 말 경기도 광명시의 사찰 ‘금강정사’에서 열린 고(故) 진이정(1959~1993)·허수경(1964~2018) 시인 추모 행사. 두 시인과 같은 동인에서 활동한 동명 스님(차창룡 시인)의 주재로 4년 전부터 계속된 행사이지만, 이날은 특별한 손님이 대웅전 상단에 놓였다. 바로 진 시인의 유고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와 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다.

 

두 시집은 수십년 전 나와 절판됐지만 ‘문학동네포에지’ 시리즈로 작년에 다시 태어났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절판된 시집을 다시 펴내는 기획이다. 첫 시집을 보지 못한 채 작고한 진 시인을 대신해, 시인 유하가 책의 서문을 썼다. “나는 그가 윤회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침묵의 세계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파스텔톤 표지 너머에 눈물을 머금은 시집들이 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작년까지 60권이 나왔고, 올해 40권이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원본 내용을 최대한 살렸고, 추천사·해설 등은 제외했다. 다만 표지 등 디자인을 새롭게 하고, 개정판을 내는 시인의 소회를 실었다. 독자들이 시인의 과거 목소리를 통해 저마다의 과거를 되새기라는 취지다.

 

작고한 시인의 경우, 책에 소회조차 없어 그 목소리가 더욱 온전하게 다가온다. 진 시인, 허 시인 외에 고정희(1948~1991), 신기섭(1979~2005), 문인수(1945~2021) 시인이 그렇다. 고 시인의 시집은 재작년부터 두 권이 복간됐다.

 

‘살아 있는 날의 가벼움으로/ 죽어 있는 날의 즐거움으로/ 마음을 비운 날의 무심함으로/ 우리를 지나온 생애를 덮어/ 만리에 울연한 백두 영혼,/ 사랑의 모닥불로 타오르라네’(고정희 시 ‘사랑의 광야에 내리는 눈’ 중에서)

이제는 중견·원로가 된 시인들이 자신의 젊은 날과 마주하는 순간도 엿볼 수 있다. “영영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젊은 날”(김사인 시인) “나는 어설프고 주먹엔 힘이 실리지 않았다.”(장석주 시인)와 같은 솔직한 심경을 책에 담았다. 40권까지는 김언희, 함민복 등 시인의 첫 시집을 복간했고, 그 이후로는 모든 절판된 시집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지금까지 시집 9권이 중쇄될 정도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다.

 

이 시리즈는 10권이 한꺼번에 출간된다. 총괄 기획을 맡은 김민정 시인은 “당연히 서점에 있을 것 같은 옛 시집들도 찾아보면 절판된 경우가 많다. 지금은 떨어진 꽃이지만, 꽃을 봤던 사람들의 기억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한두 권씩 내면 시집들을 다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시리즈를 ‘죽은 시집’에 비유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차이를 두지 않고, 제사상 차리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책을 또 잃어버리면 상처받을 것 같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저도 이미 죽은 책을 또 절판시켜 죽일까 봐 두렵지만,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