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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콩쿠르는 노벨상이 아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7. 26. 13:45

[동서남북]

콩쿠르는 노벨상이 아니다

입력 2022.07.26 03:00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 60년을 맞은 이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다. (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2022.6.19/뉴스1

 

 

“조성진과 임윤찬 가운데 누가 잘 쳐요?”

지난달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우승한 직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간단한 질문 같지만 막상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한 맥락과 배경을 거두절미한 채 오로지 양자택일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콩쿠르의 역사부터 차분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콩쿠르는 철저하게 20세기의 산물이다. 이른바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쇼팽 콩쿠르(192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3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1958년)의 탄생 연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이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1962년) 역시 미소(美蘇) 냉전과 짧은 해빙(解氷)의 산물이다.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했으니 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스탈린 사후의 해빙이 없었다면 미국 피아니스트가 우승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한국 젊은 연주자들이 대회 정상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수백 년의 클래식 음악사에서 콩쿠르는 뒤늦게 생겨난 ‘최신 트렌드’에 가깝다. 쇼팽·리스트 같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들은 당연히 콩쿠르 수상 기록이 없다. 반면 ‘콩쿠르의 유엔’이라는 국제 음악 콩쿠르 연맹(WFIMC)에 등록된 대회만 현재 120여 개에 이른다.

20세기 들어서 콩쿠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이유가 있다. 음악 교육 방식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이전까지 스승 문하에서 도제식으로 공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 음악 학교를 의미하는 ‘콘서바토리(conservatoire)’가 정착하면서 악기별로 연주자들이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옥석(玉石)을 가려낼 장치가 필요해졌다. 그 검증 장치가 콩쿠르다. 콩쿠르가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登龍門)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벨상보다는 차라리 조선 시대 관료들을 선발하기 위한 과거 시험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2000년대 임동민·동혁 형제를 필두로 손열음·김선욱·선우예권·조성진·문지영·박재홍까지 한국에서도 세계적 콩쿠르를 통해서 화려하게 데뷔한 피아니스트가 크게 늘었다. 이 중에는 임윤찬처럼 해외 유학 경험 없는 연주자도 적지 않다. 한국 음악 교육 시스템의 빛나는 성과다. 다만 이들이 세계 음악계의 ‘과거 시험’을 갓 통과한 젊은 연주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오늘날에도 정약용이 위대한 학자로 존경받는 건 그가 과거 시험의 답안지를 잘 썼기 때문이 아니다. 유배 같은 고난 속에서도 ‘목민심서(牧民心書)’ 같은 저서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콩쿠르라는 비좁은 관문을 통과한 젊은 연주자들은 거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다시 세계 음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자신이 좋아하는 슈만뿐 아니라 20~21세기 현대음악에도 공들이는 것도, 김선욱이 피아노뿐 아니라 지휘에도 묵묵히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년등과(少年登科)에 정승 드물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건 실은 연주자 자신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미 세계 정상을 모두 정복한 것처럼 묘사하는 건 연주자뿐 아니라 음악계와 팬들을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반짝 열기’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응원을 보내는 풍토다. 그런 의미에선 차라리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조성진과 임윤찬 가운데 누구를 더 좋아하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