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꿈꾸던 필즈상 허준이 “먼 길 돌아왔다, 너무 조급해 말라"
입력 2022.07.05 18:26
업데이트 2022.07.05 19:33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는 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의 필즈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호명된 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역대 수상자 명단을 보면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필즈상 명단에서 1980∼1990년 사이 현대 수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큰 흐름을 볼 수 있다”며 “특히나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저에겐 영웅 같은 분들도 이름이 줄줄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수학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 교수는 여러 면에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교육받았지만, 미국에서 출생한 미국 국적자다. 필즈상을 받았지만 고교 시절 시인이 되고 싶다며 자퇴한 문학청년이었다. 필즈상을 받은 세계 최고의 수준의 수학자지만 물리학을 공부하던 대학 3학년 1학기에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모든 과목에서 낙제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는 수상 직전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는 “저는 먼 길을 돌아서 제 일과 적성을 찾았지만, 돌아보니 그 길이 제게 가장 알맞은 길이었다”며 “목표를 미리 정해두고 생각대로 삶이 풀리지 않더라도, 너무 조급하거나 집착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조금씩 돕는 게 최선”이라며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자신을 친절하게 돌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는 “물리학을 공부하던 시절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좋아하는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정해진 방향 없이 설렁설렁 공부하다 보니 어려운 대학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결국 3학년 1학기에 우울증에 걸리며 모든 과목에서 낙제해버렸다. 자연스레 대부분 수업에 출석하지 않게 됐는데, 당시 특별히 존경하던 고(故) 홍승수 교수님(천문학자)께는 꼭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제 말을 잘 들어주신 후 잘 쉬고 돌아오라고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준 것이 큰 위안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가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허 교수는 “마침 서울대를 방문한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1970년 필즈상 수상)에게 대수기하학을 배우며 수학에 완전히 빠졌다”며 “20대 중반에 헤이스케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실시간으로 수학을 하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악보만 읽던 사람이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 것 같았다. 그 이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먼 과거의 누군가가 쓴 정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수학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연합뉴스
그는 박사과정 1년 차에 수학의 난제 중 하나인 리드 추측을 증명했다. 그가 회상하는 깨달음의 순간은 수학자라기보다는 시인의 말처럼 들린다. 그는 “발상이 어디에서 오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은 개인적이고 신비로운 경험이다. ‘그렇구나!’ 하고 깨달은 극적인 순간을 특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금의 저는 3년 전의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몇 가지 수학적 사실을 이해하지만, 3년 사이 언제 이해하게 됐는지는 모른다. 기억하는 순간은 이미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있다고 깨달은 날이다. 우리 마음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일단 발상이 의식 속으로 뚜렷하게 들어오면 문제 풀이는 보통 큰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그는 “뛰어난 지능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진화시켜 온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와 전혀 다른 직관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직관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필즈상 수상 소감에 대해 그는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조용한 삶이 흔들릴까 걱정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학계 동료들이 제 기여를 알아주는 일은 언제나 큰 격려가 되지만, 수상하더라도 저의 삶과 공부는 이전과 아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수학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최저 등급에서 최고로 승격한 유례가 없는 나라라고 칭찬했다. IMU의 구분에서 한국과 독일, 러시아, 미국, 영국, 이스라엘, 일본, 중국, 프랑스 등 12개국과 더불어 최고 그룹인 5그룹에 속해있다. 1981년 1그룹으로 가입한 이래 가장 최단시간에 최고 그룹으로 승격한 나라다.
그는 젊은 학자들을 향해 “스스로에게 친절했으면 한다. 어려운 주제에 접근하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다. 오랜 시간이 드는 힘든 일을 마음 맞지 않는 동료와 하고 싶지는 않지 않나. 자기 자신과도 마찬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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