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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삼도천 꽃밭 마음껏 걸어가세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5. 10. 16:24

선생님, 삼도천 꽃밭 마음껏 걸어가세요

김지하 시인을 추모하며

 

홍용희 문학평론가
입력 2022.05.10 03:00
 
 
 
 
 
홍용희 문학평론가

선생님, 삼도천의 꽃밭을 마음껏 걸으며 가세요.

선생님, 창밖 신록의 가로수 사이로 붉은 연등이 고즈넉하게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엄혹한 시절, 서대문 형무소 높은 담벼락 안에서 인왕산을 밝히는 연등을 보며 이렇게 노래하셨다지요.

‘꽃 같네요./꽃밭 같네요/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갈 수 있을까요/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황천길에만은 꽃구경할 수 있을까요/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시 ‘초파일 밤’) 저는 이토록 아름다운 꽃밭을 노래한 시는 세상에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의 세월 속 갈망하던 자유이고 평화이고 생명이었습니다.

바로 그날의 꽃밭이 다시 지상을 밝히는 초파일, 저는 선생님께서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황망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영면하실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침, 코로나 방역 규제도 풀리고 있어 오랜만에 찾아뵙고 팬데믹, 기후 위기, 문명적 균열 같은 지구적 대변동기의 현상에 대한 예찰을 마음껏 들어보고 싶다는 기대에 들떠 있던 중이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선생님의 수묵 화첩을 가만히 펼쳐봅니다. 지본수묵 ‘매화’ 연작입니다. 그 첫 번째 작품에서부터 새삼 숨결이 멈추어집니다. 기굴창연(奇崛蒼然)이라 했던가요. ‘기이하게 검고 구불구불한 가지 위에 은은하게 피어난 고요한 꽃’. 마침, 선생님은 매화 옆에 ‘늙은 등걸 하얀 꽃’이라고 적어 놓고 있습니다. ‘늙은 등걸 하얀 꽃’을 한참 응시하고 있자니, 어느새 선생님의 모습이 어둑어둑 겹쳐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이 땅의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돌파하면서 누구보다 오랜 수난과 고통을 전면에서 감내해왔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적 삶은 전반기에는 불온한 지배 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에서 점차 불온한 세력까지 순치시켜 포괄하는 살림의 문화, 생명의 문명을 재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변절이 아니라 변화이고 발전이었습니다.

 

저는 함께 『김지하평론선집』(2015)을 편찬하며 누구보다 선생님을 자주 뵈면서 많은 대담의 기회도 갖고 훈육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개인적으로 소중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자주 찾아 뵙기 시작한 것은 선생님 문학 세계를 다룬 첫 박사 논문을 썼던 것도 한 계기가 되었지만, 그보다 선생님을 뵈면 항상 또렷하게 깨어날 수 있었고, 세상의 크고 작은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양과 서양, 논리와 초논리, 직관과 영감, 과학과 종교, 경제학과 미학 등에 걸친 가없는 식견 속에서 굽이치는 선생님의 논리와 어법은 깊은 동굴 속에서 나오는 울림처럼 웅장하고 유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은 세상에 없습니다. 어느 겨울날 선생님의 전화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여기 치악산 중턱의 꽃밭머리 찻집인데, 눈 내리는 풍경이 참 좋아! 이런 날 홍 형과 통화할 수 있어 나는 참 좋아.” 그때 제가 가서 뵙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후회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선생님, 지금 어디쯤 가시고 계세요. 황천길과 삼도천의 꽃밭을 마음껏 걸으면서 가세요. 언제나 시대의 전위에서 숨 막히게 걸어왔던 이승의 시간들은 모두 잊으시고 부디 자유와 평화와 생명의 환희만을 영원히 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