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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역사 영화 - 여러 겹의 감동 '강원 영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5. 24. 17:06
자연 역사 영화 - 여러 겹의 감동 '강원 영월'

세월이 빚은 곡선바위에 취하고 ...느리게 흐르는 삶의 풍경에 젖고
천연기념물인 강원 영월 무릉리의 요선암 돌개구멍. 주천강의 물길이 흰 바위를 숟가락으로 떠내듯 깎아놓은 곳이다. 요선암을 끼고 있는 벼랑 위에는 요선정과 마애불이 있다. ‘요선(邀仙)’이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강원 영월은 ‘여러 겹’의 공간을 가진 여행지입니다. 자연과 역사, 옛것과 새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관심 있는 범용성 넓은 명소가 있는가 하면, 취향에 따라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법한 여행지도 곳곳에 있습니다. 영월을 다양한 연령대와 다채로운 취향을 가진 가족의 여행지로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산에서 강으로, 바위에서 별로, 자연에서 사람으로, 역사에서 영화로 바삐 건너다니며 여행할 수 있는 곳, 여기는 영월입니다.


# 단종과 명승…영월이 가진 자산

강원 영월에서 가장 범용성이 넓은 여행지라면 단연 단종의 자취가 새겨진 곳이다. ‘영월’ 하면 ‘단종’이다. ‘단종 없는 영월’은 있을 수 없다. 영월에서 어찌 단종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사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고 열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하기까지 단종이 영월에 머문 시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영월에 오래도록 차곡차곡 접혀 있는 것이다.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와 사약을 받았던 관풍헌, 죽어서 묻힌 장릉. 영월에서 단종과 관련된 장소로 이 세 곳이 꼽히지만, 천만의 말씀. 영월에 새겨진 단종의 자취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단종의 초상을 모신 영모전, 단종이 오르내렸다는 누각 자규루, 단종이 꿈속에 보았다는 암자 금몽암,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궁녀와 관비의 넋을 모신 사당 민충사, 단종을 모시던 궁녀들이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과 거기 세운 금강정, 사육신과 생육신을 모신 창절서원,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를 기리는 충의공기념관…. 여기다가 땅 이름으로 영월에 새겨진 단종의 자취까지 헤아린다면 끝도 없다.

한 인물을 두고 한 지역에 이렇듯 많은 ‘기념의 공간’이 들어선 예가 또 있을까. 이런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은 입체적이다. 영월의 빼어난 자연과 비운으로 가득한 어린 왕의 죽음, 그 죽음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비정한 역사가 어우러져 그렇다.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영웅담에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향기와 느낌이 깃들어 있다. 애잔하고 먹먹하다. 청령포의 소나무 숲에서도, 동강의 푸른 물을 바라보는 금강정에서도, 습지의 청량한 숲을 두르고 있는 충의공기념관에서도 그 여운은 길게 남는다.

이번에는 범용성 넓은 경관 이야기. 영월에는 내로라하는 경관 명소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비쭉 솟은 바위가 기이한 지형을 이룬 선돌, 그리고 동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한반도지형이다. 영월의 동강 상류에 있는 빼어난 경치의 어라연은 접근이 쉽지 않아 인기도에서는 밀리지만, 경관만으로 겨룬다면 오히려 다른 곳을 능가하는 명소다. 선돌과 한반도지형, 어라연에다가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더한 네 곳이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이다. 주천강 변에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듯한 바위로 가득한 요선암의 돌개구멍은 청령포의 관음송과 함께 천연기념물이다. 요선암 위쪽으로는 강을 등진 채 바위 속에서 어깨를 뒤틀며 빠져나오는 듯한 마애불과 그 곁을 지키는 정자 요선정이 있는데, 이곳의 경관도 빼놓을 수 없다.



바위 벼랑 위에 공깃돌처럼 얹힌 집채만 한 바위에 새겨진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고려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 ‘라디오 스타’, 끝나지 않은 영화



영화는 그야말로 뻔하다. 영화 ‘라디오 스타’는 퇴락한 록스타와 그를 한결같이 지켜줬던 매니저의 우정 얘기다. 잊혀 가던 왕년의 스타가 지방 소도시 라디오 음악방송 진행자로 밀려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기를 얻어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중앙 무대로의 화려한 복귀를 제안받지만, 오래 함께해 온 매니저를 택한다는 줄거리. 골백번도 더 본 익숙한 플롯.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영화는 제법 울림이 있다.


‘라디오 스타’의 주 무대는 영월. 영화 속에서 왕년의 스타가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지방 소도시가 영월이다. 기록적인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라도 영화 촬영지는 영화보다 더 빨리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그마치 15년 전에 개봉된, 그해 흥행 순위 20위권 밖의 영화가 아직도 영월을 상징하고 대표한다. 영월에서 영화 ‘라디오 스타’는 잊히기는커녕 점점 더 또렷해진다는 느낌이다. 이름난 영화 세트장이 두어 해만 지나면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는 것을 생각하면 유별난 일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영월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소도시의 공간이다. 영월에는 빼어난 풍경의 명소가 여러 곳 있지만 영화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영월의 공간은 모두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곳들이다. 다방과 세탁소, 중국집, 꽃집, 여관방…. 이런 소도시의 일상 공간은 상투적이면서도 따스한 영화의 내용과 그야말로 짝 달라붙는다.

영화 ‘라디오 스타’는 영월의 관광 명소를 단 한 곳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영월을 널리 알렸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다. 이전에는 영화를 보고 영월을 찾아간 이가 많았지만, 이제는 영월에 가서 15년 전의 영화 ‘라디오 스타’를 알게 되는 이가 더 많다. 처음에는 영화가 공간을 기억하게 했지만, 이제는 공간이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셈이다. 그야말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 영화가 도시에, 그리고 도시가 영화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월에는 ‘라디오 스타 박물관’도 있다. 영화 속의 주 무대였던 KBS 영월방송국이 문을 닫자 영월군이 사들여 개관한 박물관이다. 지방 소도시에 영화 한 편을 테마로 박물관이 들어선 것도 이채로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뜻밖인 건 영화를 개봉한 지 9년 뒤인 2015년에 박물관이 개관했다는 점이다. 영화 개봉 9년째면 열었던 박물관도 닫아야 할 판이 아닌가. 영화를 통해 영월이, 영월을 통해 영화가 그만큼 오래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다. 박물관에는 라디오 발달사부터 영화 장면 속 뒷얘기 등을 전시해 뒀는데, 관람객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듯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 특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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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는 영월 서부시장의 주상복합 건물에 그려진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연배우인 안성기, 박중훈의 얼굴. 사진 아래는 북면 옛 탄광마을의 풍경을 재현한 강원도탄광문화촌의 탄광촌생활관’.



# 메밀전병과 부꾸미… 흥겨운 장 구경


영월이 아직도 ‘라디오 스타’를 추억하게 하는 건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라서 더 그렇다. 지방 소도시의 속도는 느리고, 사람들은 수십 년을 묵묵히 같은 일을 하면서 산다. 라디오 방송에서 마이크를 잡은 다방 종업원이 일하던 ‘청록다방’도, 다방 외상값이 밀린 ‘김 사장님’의 ‘곰 세탁소’도, 영화감독이 주방장으로 등장한 중국집 ‘영빈관’도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굳이 찾아다닐 것도 없다. 손바닥만 한 영월읍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다 만나게 된다.

영월읍은 걸어서 돌아보기에 딱 좋은 정도 크기다. 도심을 걸어서 돌아보겠다면 영월 서부시장을 기점으로 삼는 게 좋겠다. 시장이니 볼거리가 많기도 하고, 한복판에 주상복합 건물이 우뚝 서 있어 어디서든 찾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영월에는 상설시장인 서부시장과 중앙시장, 그리고 오일장인 덕포장이 있다. 어느 도시나 가장 큰 시장은 ‘중앙시장’이지만, 영월은 서부시장이 훨씬 더 크다. 그 이유인즉 이렇다. 본래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월 상권의 중심이었던 중앙시장은 1990년대 들어 여러 차례 홍수로 침수돼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결국 시장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다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어 아래층에 시장을 들이기로 했는데, 이 계획이 10년 이상 지체되면서 그 사이에 서부시장이 대표 시장이 됐고, 중앙시장은 메밀전병이나 수수부꾸미, 칼국수 등 지역 향토음식을 파는 작은 상가가 돼버리고 만 것이다.

서부시장은 시장 건물 옥상 외벽에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연배우 안성기, 박중훈 그림을 그려놓아 찾기 쉽다. 서부시장은 이것저것 다 파는 상설 종합시장인데, 관광객들은 닭강정이나 닭발, 메밀전병, 수수부꾸미 등을 즉석에서 조리해 파는 음식점 좌판을 주로 찾는다. 영월 시장의 메밀전병 가격은 지난해 9월 한꺼번에 50%나 올랐지만, 15년 만의 가격 인상이었던데다 그래 봐야 1개에 1500원이니 뭐 큰 부담은 없다.

서부시장 주변에는 ‘요리 골목’이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석탄산업이 호황이었던 시절 영월의 탄광 노동자들이 드나들었다는 음식점 골목이다. 옛 모습은 남아 있는 게 없지만, 군데군데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벽화와 시, 소설 등을 적어놓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형상의 영월 출신 영화배우 유오성 동상도 있다. 요리 골목은 한쪽 끝을 영월초등학교 정문에 대고 있어 찾기 쉽다. 마침 영월을 찾은 날이 장날이라면 덕포장을 추천한다. 덕포장은 4, 9일에 서는 오일장인데, 장날이면 영월역 부근의 동강 천변에 시장 좌판의 천막이 길게 늘어서 제법 장 구경이 재미있다.




동강의 물길이 온통 초록의 협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습. 산정에 구름이 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아래쪽이 문산리 뼝창마을이다. 뼝창마을 상류 쪽 강변은 전인미답의 지역이다.



# 탄광 마을에서 만나는 옛 추억


탄광이 모두 폐광된 영월에서 탄광촌의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북면 ‘마차리’다. ‘馬車(마차)’가 아니라, ‘갈 마(磨)’ 자에 ‘갈 차(磋)’ 자를 쓴다. ‘갈고, 또 간다’는 뜻이다. 마차리는 뒷산에서 내려다보면 맷돌 모양의 지형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마차리의 영월광업소는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에 영월화력발전소 연료 공급을 위해 개발됐다. 여기서 캐낸 석탄은 곧바로 케이블카(삭도)에 실려 12㎞ 떨어진 화력발전소로 옮겨졌다. 석탄은 전기가 됐다. 1972년 사업성 부족으로 한 번 폐광됐다가 석유파동으로 다시 살아났으나 1990년에 영원히 문을 닫았다. 영월이 탄광지대로 이름을 날리면서 마차리는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이로 늘 북적였다. 폐광으로 모두 다 사라져버린 지금은 믿기지 않지만, 전성기 영월은 강원도에서 삼척 다음으로 광업이 성한 지역이었다. 1967년 영월에는 13개 광구의 탄광이 있었고 거기서 4228명이 일했다.

옛 영월광업소 지리에 ‘강원도탄광문화촌’이 있다. 탄광문화촌에는 탄광촌생활관과 갱도체험관, 가상현실체험관이 있다. 탄광촌생활관은 탄광 마을의 누추한 마을 풍경을 영화 세트장처럼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탄광문화촌 안에는 대포집 ‘마차집’과 허름한 ‘노동이발소’, 담배를 파는 ‘마치 상회’ 등의 상점이 있고, 작은 나무책상의 골방이며 탄광촌 관리급 사원들의 사택도 있다. 공동 펌프가 있는 빨래터도 있고,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공중변소도 있다. 영월과 정선을 오가던 버스도 재현해 놓았다. 굳이 가난했던 시절의 어려웠던 삶을 재현한 건, 그때가 비록 없이 살았어도 정겨웠기 때문이리라. 꼭 탄광 마을 출신이 아니더라도 도시 변두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중년 이상의 나이라면 여기서는 누구나 공감하며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갱도체험관은 실제 탄광 갱도에다 마네킹 등을 설치해 채탄작업이 벌어지는 장면을 전시해 놓은 공간. 갱도가 무너지는 체험을 하는 곳도 있다. 가상현실체험관은 가상현실(VR) 영상으로 갱도 열차 탑승 체험을 하는 곳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기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 명품 나한상이 나온 곳…창령사터

영월의 탄광에서는 석탄을 캤지만, 땅에서 석불을 캐낸 곳도 있다. 화강암으로 깎은 나한상이 발굴된 영월의 절집 창령사터다. 이곳은 ‘선택적’으로 추천하는 장소다.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나한상을 모른다면, 그 빼어난 미감을 모른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니 여기는 모른 척 건너뛰어도 좋다는 얘기다.

지난 2001년 남면 창원리의 창령사터에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쯤 만들어진 나한상이 나왔다. 그냥 불상이 아니다. 돌을 깎아 만든 나한상은 마치 먹을 찍어 그린 한국화 같은 느낌이다. 차가운 돌덩이에서 붓의 선과 농담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나같이 때 묻지 않은 얼굴. 나한상에는 규칙이나 기법을 뛰어넘는, 마음을 흔드는 미감이 있다. 전국을 돌며 순회 전시를 했던 나한상은 지금 춘천국립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있으니 영월 여행 앞뒤로 다녀오길 권한다.

나한상이 나온 창령사터에는 자그마한 법당이 세워졌고, 법당 앞에는 처음 나한상을 발견했다는 김병호(73) 씨가 기거하는 가건물이 있다. 옛 절터에서 며칠이고 기도를 다녀오는 아내를 위해 비라도 피할 거처를 만들어주다가 배수로에서 나한상을 찾은 그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일대 땅을 사들였다고 했다. 그 땅에서 그는 밭을 만들고 염소를 기른다. 문화재 도록을 펼쳐놓고 나한상 발견 당시 얘기를 하던 그가 감정이 북받쳐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이유를 자신도 설명하지 못했지만, 분명한 건 그에게 나한상은 ‘유물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법당에는 문화재청이 만들어 가져다줬다는 17기의 나한상 복제본이 있다. 크기며 형태를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박물관에서 만나는 진품의 감동에는 어림도 없다. 법당의 주불 앞에는 수석처럼 생긴 돌이 하나 놓여 있다. 두드리면 목탁 소리가 나는 돌이란다. 김 씨가 진짜 목탁 소리와 돌 두드리는 소리를 번갈아 들려줬다. 어떻게 된 게 진짜 목탁보다 돌을 두드리는 게 더 목탁 소리 같았다. 돌 목탁을 치던 김 씨가 복제본 나한상을 향해 깊게, 그리고 오래 절을 했다.



■ 영월의 땅이름


영월에는 ‘무릉도원면’이 있다. 지난 2014년 ‘수주면’이던 행정구역 명칭이 주민들의 청원으로 바뀐 것. 주민들은 수려한 자연경관에다 면내의 ‘무릉리’와 ‘도원리’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며 개명을 이뤄냈다. 영월군은 앞서 2009년에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서면을 ‘한반도면’으로 이름을 바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개명에 따른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땅이름의 역사성 훼손이란 지적도 있다.


영월 글. 사진 : 박경일 전임기자
게제일자 : 2021년 5월 20일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