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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영 시집 『시옷처럼 랄랄라』: 밀레니엄의 환상과 디스토피아의 초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4. 15. 11:41

밀레니엄의 환상과 디스토피아의 초상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 Arbeit macht Frei!-

 

윤은영 시인의 시집시옷처럼 랄랄라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 가족의 해체와 그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빈곤, 더 나아가서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의지를 억압하는 전 지구적 문명의 폐해를 돌이켜보게 한다.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실존實存을 반추하게 만든다.

 

이상향 理想鄕에 대한 질문

 

누구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근심 걱정 없는 소요유逍遙遊를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근대정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대혁명(1789)의 구호인 자유와 평등, 박애博愛는 인류가 마땅히 구현해야할 가치이지만 그런 이상은 우리가 지구에 존재하는 동안에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런 갈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향한 희망을 가짐으로써만이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십 년 전을 돌이켜 보면 새로운 천년 -밀레니엄 millennium- 의 개막에 한껏 기대를 품었었다. 20세기는 어느 시대보다 참혹했던 전 지구적인 전쟁과 기아飢餓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의 갈등으로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懷疑가 증폭된 시대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야만으로 점철된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염원했던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민족과 민족 간의, 종교와 종교 간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 아무쪼록 새로운 천 년은 과거의 천 년과는 다르기를, 조금 더 모든 이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이상향에 다다르기를!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아채고 있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생각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서 욕구를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국가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의 욕구는 충돌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수 천 년 동안 현자 賢者로 불리는 사람들은 도를 이야기하고, 천국과 극락이라는 이상세계를 세워 피세避世의 수신修身을 권유했다. 이런 세계관은 한 마디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 세상이 평안한 삶을 누리기에 마땅치 않은 나쁜 장소즉 디스토피아Dystopia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째든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불과 이십 여 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전 지구적 재앙은 쓰나미로 다가오고 있다. 사스 Sars, 메르스Mers 이어 코비드 19 Covid-19와 같은 역병疫病은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소통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통不通은 인간의 소외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의 우리의 삶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반성과 검토를 요구받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집시옷처럼 랄랄라보편적 삶의 행복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은 한갓 꿈에 불과한 것인가?’에 대한 탐문의 기록이다.

 

디스토피아의 초상

 

윤은영 시인의 첫 시집시옷처럼 랄랄라는 한 개인에게 있어서 보편적 행복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면서 우리 사회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늘을 반추하는 6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시옷처럼 랄랄라에 등장하는 화자話者 - 앞으로 이 글에서의 화자는 로 통칭하기로 한다- 는 흔히 밀레니엄세대라 일컬어지는 1980년대 태생의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경제적 풍요와 디지털 문화로 요약되는 페미니즘의 확산, 부권사회의 붕괴와 개인주의의 팽배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와류를 경험하며 어느덧 사십에 이른 캐릭터를 상징한다.

 

시인이 시집에 설정한 그의 가계家系는 일반적 가정과는 다르며, 따라서 그는 정신적 건강과는 거리가 먼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취업, 결혼 등으로부터 소외된 의식을 앞 서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로서 풍요 속에 빈곤을 겪고 있는 자들의 실현되지 못하는 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한 마디로 윤은영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이 곳은 낯 선 장소이면서, 자유와 평등과 사랑이 위장僞裝된 허위의 디스토피아이다. 물론 시집시옷처럼 랄랄라에 제시된 풍경들은 일반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풍경들을 뒤집어 놓으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소외의 그늘을 덮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눈 여겨 봐야 한다는 절박감을 각성해야하는 책무를 도외시 할 수 없다는 주장에 이끌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집시옷처럼 랄랄라는 사십에 이른 그의 성장기록으로 읽을 때 이 시대가 감춰놓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사십은 어떤 나이인가? 옛 선현의 말을 따르자면 불혹不惑, 자신이 설정한 삶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시기이며, 부모가 되어 양육에 힘쓰며 장차 다가올 노후를 준비하는 재력을 갖추어야할 시기이다.

 

하루 종일 빌딩 안에서

빌딩의 일부로 산다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고

나무의 뿌리가 바닥 어느 깊이까지

닿아있는지도 모른다

높게 쌓인 지층 사이에 끼인 화석처럼

날마다 밀봉되어 굳어가고 있었다

 

창문 열었더니 인도 한 끝에서

플라타너스의 삭발식이 벌어진다

노동운동도 불법시위도 아니다

그저 허공에서 인터넷선 전화선 전깃줄로

떠도는 중생을 구하기 위한

자비로움일 뿐이었다

 

가으내 잎 한쪽 얻어 세 들어 살던 거미 한 마리가

빌딩 벽에 달라붙어 숨을 돌리며 남은 번뇌를 삶고 있다.

 

- 나무전문

 

이 시가 꼭 그의 사십 대의 심리를 그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산을 떠나 도회지의 가로수로 이식移植되어 화석화되어 가는 자아의 풍경과 빌딩 벽에 달라붙은 거미가 되어 남은 세월의 번뇌를 삶고 있다는 자성을 엿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사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스물여덟 빈 방에 웅크려 미래를 깁는 동안 / 계좌마다 한 자리씩 숫자가 늘어 바닥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데, 좀처럼 두꺼워지지 않는 / 솜이불만 옆에서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볼 뿐(통장정리부분) 이십대와 , ‘마흔, 이제 반짝이는 건 오로지 돈’, (달을 괴느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부분) 이라는 절박한 현실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내 뜻대로 살고 싶어도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주어진 환경은 의식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시집시옷처럼 랄랄라 매슬로우Maslow의 인간욕구의 단계나 에릭슨 Erikson이 제시한 개인의 심리사회학적 발달단계를 일반화하는 일의 무용無用함을 떠올리게 한다.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 발달을 8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성취해야 할 의식을 발달과업이라 명명한다. 한 예를 들어본다면 청소년기는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통찰과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여 자아 정체성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형성되지 못하면 장차 인생관과 가치관의 확립에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런 자아 형성의 밑받침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건강한 가정이 존재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정 또는 가족의 의미가 큰 변혁을 이루게 되었다.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대가족제도는 급격한 도시화로 핵가족화 되고, 전통문화의 와해로 이혼이 급증하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일인 가구가 급증하는 세태로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말의 IMF 환란은 부권사회父權社會의 붕괴를 앞당기고 개인주의의 경향을 가속화시켰다.

 

 

가족의 의미를 묻다

 

시집시옷처럼 랄랄라에 등장하는 그의 가계는 매우 불우하다. 그의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상자 몇 개 올려놓고 떠’(성장통)나고, ‘올라가야 할 길 놔두고 그냥 바닥인 게 좋다’( 아버지는 바닥이다), ‘한 푼 내주는 일 없이 딸 하나 월세 방 전전’(성장통)하게 하는 무력한 존재로서 입주민에게 뺨을 맞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치약더미를 받아’ (횡설수설해())오는 치욕을 감수하는 사람이. 그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매일 식당에 나가’ ( 능수버들)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며 촌의 정의를 가까운 사람, 이라고 내린 날 / 엄마는 삼촌과 이불 속에서 키득키득 키드같이 웃는’ (학원별곡 -빈집 3) 정숙하지 못한 여자이다. 그리하여 그를 낳게 되었을 때 구시대의 낡은 통념에 사로잡힌 할머니로부터 부당하게 나쁜 피로 천대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나쁜 피, 나쁜 피다,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이냐

아버지가 은밀히 데려 온 여인의 귓불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배 속에서 모진 열매 하나가 꿈틀대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이내 그 자리에서 고드름처럼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 엄마가 돌아왔다부분

 

이런 그의 가계는 그의 삶에 가난과 혈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던져 주었다. ‘어려서 당신은 버려졌습니다’(소라)는 독백은 태어나보니 진작 이런 세상이던걸요’(학원별곡 -스마트폰)와 같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의 자유를 의심하게 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실존주의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바대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투企投된 존재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학교를 파하면 골목을 쓰다듬으며 빈 병을 줍는’(성장통부분) 외톨이의 가난과 싸우고 아무도 들어있지 않은 방의 문을 연다/ ... / 자정을 기다리는 뻐꾸기의 뺨을 갈기고 싶은’(23) 외로움에 떨어도 그는 이 세상이 원래 부조리하다는 전모全貌를 일찍이 알아차린 까닭에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어떤 원망도 하지 않는다. 희망에 대한 욕구를 버린 까닭에, 세상은 원래 그렇다는 생각에 그는 혈족에 대한 애틋함은 있을지언정 원망조차 갖지 않는 내성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거짓말처럼 우리가 다 놀랄만한 일이 벌어져도

이제는 희망을 믿지 않는다

거꾸로 받친 모자에 모인 동전을 앗아가는 진짜 유령이 배후인 것을 안 이상-

 

- 요술의 집4

 

 

물질적 풍요가 가져온 소외의 그늘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일찍이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낙원이 도래한 듯한 착각 속에서 물질만능의 세계는 그와 동시에 심화되는 빈부의 격차로 말미암은 계층 간의 소통의 부재와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오늘날 20대 젊은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절망은 어젯밤 장갑차를 몰고 도시를 박살내는 달콤한 꿈을’(구직난)꾸게 만든다. 다소 거친 어조이기는 하지만 신랄한 야유를 담은 시를 읽어보자.

 

백화점은 자유를 허하라!

 

1층 쇼윈도에서 샤넬과 구찌와 프라다가 눈을 부라린다

-네 얇은 지갑을 알고 있어

동시에 자동문이 멈춘다

내 가방 속을 투시 당했다고 생각하는 찰나

거부권 행사! 한껏 부푼 배짱공을 굴리며 밀고 들어간다

마리화나보다 독한 향료들이 뇌의 태엽을 감기 시작하고

차가운 심장을 가진 지갑의 혈관이 얼어붙고 있지만

나는 내 한도를 정확히 알고 있다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코 사이로 역한 발 냄새를 풍기며 전진전진전진!

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아는가

자전거의 바퀴가 바닥에서 구를 때 닿는 지면의 크기처럼

저렴을 사랑하는 저렴이 노란 땡땡이우산을 집어 든다

우산도 되고 양산도 되는 이상한 경계에 머뭇하며

태양처럼 반짝일 순간과 항시 비만 내리는 내 일기의 비율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다.

 

점원들마저 코웃음을 치는, 너덜한 자유의 깃발을 등에 꽂고서.

 

-오늘의 혁명전문

 

최근의 우리 사회는 격렬한 계층 간의 갈등을 겪고 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남성과 여성, 갑과 을로 구획되는 복잡한 이해관계는 소통과 화해를 막는 장벽을 더 높이 공고하게 쌓아가는 형국이다. 이와같이 시집시옷처럼 랄랄라는 한 젊은 여성의 가족사 家族史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통과 위선의 몸통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시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이 부조리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으로 국하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이 시집의 백미白眉2부에 배치된 연쇄시인마라고 볼 수 있다. ㄱ ㄷ ㄹ ㅅ ㅇ ㅈ ㅍ ㅎ 8 개의 한글 자음의 형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들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신산 辛酸한 젊은 그의 초상이 그림 퍼즐처럼 꿰맞춰지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윤은영 시인이 지니고 있는 익살과 풍자가 이 시편들에 농익어 있음을 즐기는 것이 시집에 펼쳐진 무거운 슬픔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처방일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시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자세히 보면 툭 부러진 목멀미

 

외로운 얼굴에 붙어있는 귀

 

빗속에 홀로 나와 꿈틀대는 지렁이

 

세상이라는 밑변을 디디고 서서 꼭지각이 같게 두 다리로 만드는 이등변삼각 형

 

급한 마음을 안고 한줄 긋기로 미음을 써 봐요 모서리를 무시하고요 /그러면 어느새 이응이 돼요

 

양장으로 된 책이었다 / 온몸에 잉크를 묻혀 써 내려간 육십 평생의 일들이 단단하게 제본된 책 / 그것을 거꾸로 뒤집자 회한만 잔뜩 쏟아졌다고 한다

 

들이 이내 뭉쳐서는 모로 누운 하나의 커다란 사다리가 되었다 / 좌절한 사다리였다

 

엄마가 자식을 버려 가둔 깊고 단단한 항아리여요. 그러므로 아픈 데 보여주기 싫어 마냥 터뜨리던 웃음 풍선이어요.

 

각 자음字音의 형상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시옷처럼 랄랄라를 관통하는 소외받은 자, 가난한 자들의 슬픔을 상기하는데 부족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시의 길

 

시집시옷처럼 랄랄라는 밀레니엄 세대가 마주치고 있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마땅히 시가 갖추어야 할 은유隱喩의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보다는 아무도 나를 따뜻하게 받아준 적 없는, 유년이 곯아버린 알’( 「ㅎ」마지막 연)로 성장하고 세울 수 있으면 세워 봐, 올라올 테면 올라와 봐 / 세상의 모든 사다리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고 있는’(「ㅍ」마지막 연) 막막한 현실과 마주한 젊은 군상들의 독백이다. 그럼에도 시옷처럼 랄랄라의 주인공이나 시인 윤은영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평등, 가없는 사랑은 개인적 욕구의 총량과 길항한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들려주고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숙명론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나쁜 피와 나쁜 장소에 살고 있는 현실을 버팀목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분노와 증오로 치환하는 것이 아닌 따뜻한 삶의 에너지로 환원하자는 권유인 것이다. 여기 그런 조그만 희망을 예리하게 드러낸 시가 있다.

 

언제인가 시험에서 쉴 휴를 한자로 쓰시오라는 문제를 맞닥뜨렸습니다. 뇌도 땀을 흘리는지 궁금했습니다. 꼼짝없이 한문부장을 빼앗기게 생겼거든요. 놓치고 싶지 않은 자부심이며 매일 듣던 칭찬들이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습니다. 시험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니 이 일어납니다. ‘에게 지쳐 있었으므로 이 주는 먹먹함을 모르고 살아왔던 거예요.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을 없애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웃옷을 벗고 양말을 벗어던져 계곡 속에 뛰어들 것처럼, 바로 앉은 자리에서 연필을 들고 나는 사람이다. 공부 그만하고 나무 밑에 들어가 쉬자라는 주술이 담긴 부적을 답안지에 갈기고 말았습니다.

 

-전문

 

‘Arbeit macht Frei’는 직역하면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뜻이다. 나찌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나 디하우와 같은 강제수용소로 들어가는 정문에 세워진 구호이다. 중국의 선사禪師 백장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말라’(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하였다. 나찌가 유태인에게 강요한 노동은 착취였을 뿐이며, 백장의 가르침은 무위도식을 경계하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와는 또 다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으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에 시달리기도 하고 인간 대신 로봇과 같은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므로서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어느 학자는 인간은 노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는 이러저러한 오늘의 삶에서 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노동의 연속성과 안락한 휴식의 관계를 되새겨보게 하는 시로서 앞으로 윤은영 시인의 시세계의 변모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사람 ()이 나무()와 더불어 함께 쉬는 휴식()이 찾아오기를 꿈꾸고 싶기도 하다.

 

나는 사람이다. 공부 그만하고 나무 밑에 들어가 쉬자

 

 

 

 

윤은영

 

 

인천 출생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0미네르바로 등단

3회 전국 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