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세 철학자 김형석 "韓 진보, 민주주의서 자라나지 않았다"
백성호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1.14 00:37 수정 2021.01.14 07:48 |
4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를 만났다. 올해 한국 나이로 102세다. 1920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정권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 몸소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왔다. 궁금했다. ‘100년의 눈, 100년의 인생’으로 바라보면 보일까.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돼버린 ‘진보와 보수의 무조건적 대립과 갈등’. 그에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물었다.
좌파냐 우파냐 흑백논리는 안돼
냉전시대식 사고가 낳은 잔유물
현실에는 100% 흑도 백도 없다
선진국가, 진보·보수 공존 경쟁
한국 사회가 너무 시끄럽다. ‘100년의 눈’으로 바라보면 근본 이유가 뭔가.
“한마디로 말하면 ‘흑백 논리’ 때문이다.”
흑백 논리, 더 구체적으로 풀어달라.
“물리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빛의 삼원색이 있다. 빨강, 녹색, 파랑이다. 삼원색이 꼭대기로 올라가면 삼각형의 정점이 된다. 그 꼭대기를 ‘백색(白色)’이라고 한다. 그런데 꼭대기의 백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그 반대도 똑같다.”
그 반대는 뭔가.
“삼원색이 아래로 좁혀지면서 쭉 내려간다. 그럼 아무 색도 없는 ‘흑(黑)’이 된다. 백(白)은 모든 게 다 있는 꼭대기이고, 흑(黑)은 아무 색도 없는 바닥의 끝이다. 그런데 백과 흑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지, 실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없는 색이다.”
그렇다면 실재하는 건 뭔가.
“회색이다. 꼭대기 백에서 출발해 바닥의 흑으로 가는 중간에는 회색만 있다. 백에 가까운 회색, 아니면 흑에 가까운 회색만 있을 뿐이다. 그럼 우리는 모두 어디에 있는가. 중간에 있다. 그런데 흑백 논리에 빠진 사람은 그걸 못 본다. 백이냐, 흑이냐. 그것만 본다.“
김 교수는 예를 하나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더라. ‘김형석 교수는 존경할 만하다. 우리가 뒤따라 갈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완전한 사람이다. 그런데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보통은 부족한 게 더 많다. 또 누가 나쁘다고 하면 100에 대한 0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 좋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고, 나쁜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다.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는 어떤가.
“여당 사람들은 우리 편이 하는 건 선(善)이고, 야당이 하는 건 악(惡)이라고 본다. 똑같은 일도 우리가 하면 선이고, 상대방이 하면 악이다. 너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가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0과 100은 존재하지 않는다. 40과 60중에 더 나은 걸 택할 뿐이다. 흑백 논리에 빠지면 이걸 못 본다.”
한국의 현대사 100년을 몸소 체험했다. 그런 흑백 논리의 뿌리가 뭔가.
“나는 해방을 맞은 1945년부터 47년까지 북한의 평양에서 살았다. 그때 2년간 공산주의 치하를 직접 경험했다. 그건 흑백 논리의 사회였다. 우리와 같으면 되고, 우리와 다르면 안 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는 큰 소리로 웃는 사람은 있어도, 미소를 짓는 사람은 없었다.”
억지웃음은 있어도 미소는 없었다. 왜 그런가.
“서로 경계하고 서로 배척하니까. 독일 통일 전이었다. 1962년에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간 적이 있다.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관광이 가능했다. 동독 사람들 얼굴에도 미소가 없더라. 흑백 논리의 사회는 분열은 있어도 화합은 없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갈등도 흑백 논리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런 흑백 논리가 “냉전 시대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냉전 시대가 뭔가. 강의 이쪽과 저쪽에서 서로 적대시하는 사회다. 하나는 남고, 나머지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 사실 그로 인해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1960년대로 넘어오면서 냉전 시대는 없어졌다. 더 이상 좌파와 우파로 나뉘지 않는다. 좌파는 이제 진보로 남고, 우파는 보수로 남게 됐다.”
‘좌파와 우파’랑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른가.
“모든 선진국가를 보라. 흑백 논리의 좌우 대립은 없어졌다. 대신 진보와 보수가 함께 살게 됐다. 더 이상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어야 하는 세상이 아니게 됐다. 같이 살면서 누가 더 앞서느냐 경쟁하는 사회가 됐다. 반면 북한은 어떤가. 좌만 남지, 우는 있을 수가 없다.”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갈렸지만 서로 적대시하지 않나. 마치 냉전 시대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의 진보 세력는 주로 운동권 출신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주사파 혹은 사회주의 혁명론에 젖줄을 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진보가 아니다. 냉전 시대 이후, 그러니까 선진국가에서 자라난 진보가 아니다. 그들의 사고는 아직도 냉전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그건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그걸 극복하는 해법은 뭔가.
“그 열쇠가 영어 문화권의 앵글로 색슨 사회에 있다. 그들은 600년 전부터 경험주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왔다. 거기에는 흑백 논리가 없다. 선해도 비교적 선하고, 악해도 비교적 악하다. 왜 그렇겠나. 경험주의는 실제 우리의 삶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백도 없고 흑도 없다. 회색만 있다. 서로 더 나은 회색이 되기 위해 경쟁할 따름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그들의 해결법은 투쟁이 아니라 대화다. 의회민주주의는 대화를 기본으로 한다.”
김 교수는 “영국 계통 사람들은 대화를 하고, 독일이나 프랑스 계통은 토론을 하고, 공산주의는 투쟁을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있을 때 영국 사람은 약을 먼저 준다. 그래도 안 되면 주사를 놓고,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한다. 이게 경험주의 사회의 정치관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은 토론을 통해 좀 더 빠른 걸 선택한다. 그래서 먼저 주사를 놓고, 그래도 안 되면 수술을 한다. 공산주의는 다르다. 그들은 처음부터 수술을 한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단어가 ‘혁명’이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 혁명’을 내세운다. 그동안 많은 정책을 내놓지 않았나. 그게 왜 현실에서 먹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수술을 자꾸 하면 어찌 되나.
“환자가 마침내 죽고 만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가 무너졌다. 남이 무너뜨린 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 무너졌다. 19세기는 좌파와 우파 중 하나만 남으라는 절대주의 사회였다. 20세기 중반에는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며 같이 가는 상대주의 사회가 됐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건가. 종교와 정치와 민족이 서로 달라도 여럿이 함께 사는 사회, 즉 다원주의 사회가 올 거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권력만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뭐든지 힘으로 된다는 생각, 버려야 한다. 그건 권력 사회다. 군사 정권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 여당도 그렇지 않나. 본질적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것보다 정권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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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는 누구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닐 때는 시인 윤동주와 같은 반 친구였다. 학창 시절 도산 안창호의 강연을 듣고서 감명을 받기도 했다.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조치 대학 재학 시절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동창이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꼽힌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했다. 1960~70년대에는 사색과 서정을 아우르는 문체로 『고독이라는 병』『영원과 사랑의 대화』등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최근에는 『백년을 살아보니』『예수』『김형석 교수의 백세건강』등을 출간했다.
[출처: 중앙일보] 102세 철학자 김형석 "韓 진보, 민주주의서 자라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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