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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코로나가 불러온 여가·일상생활의 변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 13. 14:43

[아키스브리핑 252호]

코로나가 불러온 여가·일상생활의 변화

작성자윤덕환이메일dhyoon@trendmonitor.co.kr등록일2020-12-24

 

 

본 원고에서는 코로나 이후 대중소비자들이 경험하는 여가생활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가장 큰 변화는 외부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것으로, 집과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차분한 여가생활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테리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여기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인다. 사람들은 여행자체에도 부담이 있었다. 핵심적인 변화는 인간관계의 변화에 있었는데, 사람들과의 접촉빈도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덜 느끼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인간관계의 재편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관찰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자료를 포함하여 몇 가지의 이론적 설명을 근거로 향후 한국사회 인간관계의 자발성이 대두될 것이라는 전망을 추가하였다.

 

 

▮ 2021년은, 2016년이 될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 초기, 정부는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 권고 이외에도 100년 전의 미국의 역사에서 시행한 적이 있는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찾아냈다.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다. 사람들 간 만남에 거리를 두는 것이 권장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과 비슷했던 5년 전의 그때를 떠올렸다. 메르스가 창궐했던 2015년이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을 때에도 평행이론처럼 지금의 일상과 유사한 점들이 많이 관측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대중소비자들의 일상을 분석한 결과에는 ‘당분간 집에서 모든 사회적 욕구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고, 따라서 TV등으로 대리만족하는 시대’가 될 것이고 전망했었다1). 메르스가 종료된 이듬해인 2016년, 사람들은 집콕의 답답함을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로 쏟아냈다2). 과연, 2021년 이후의 삶도 2016년의 욜로처럼 ‘V자 반등’을 할 수 있을까?

1) 최인수, 윤덕환 외 2명(2015). 『2016 대한민국 트렌드』, 한국경제신문사.
2) 최인수, 윤덕환 외 3명(2016). 『2017 대한민국 트렌드』, 한국경제신문사.

 



▮ 집에 오래 머물면, 집을 고치고 싶어 한다.

당연하게도,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2015년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예년에 비해 늘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23.8%였는데, 이것이 2020년에는 40%이상 (49.9%(4월초) → 41.6%(5월초), →48.2% (8월초))으로 크게 증가한 것이다3). 압도적인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안 곳곳을 바꿔볼까 하는 관심도 늘어났다. 그 결과 실제로 홈인테리어를 변경한 경험이 2015년 수준으로 다시 증가했다4). 이유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5). 하지만, 실제로는 뭔가 거창한 것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전에 비해 집에서 하는 활동으로 가장 크게 증가한 것은 ‘유튜브 보기(37.2%, 1순위)’였고, 다음으로 TV보기(34.3%, 2순위), 인터넷 정보검색(29.4%, 3순위), 누워있기(24.0%, 4순위), 영화보기(22.2%, 5순위) 순이었다. 집을 새로 단장하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 보다는 그냥 집에서 뒹굴(?)거렸다는 얘기다.

3)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8). 「코로나19로 인한 생활패턴 변화 관련조사」.
4), 5)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6). 「홈 루덴스족 및 홈 인테리어 관련조사」.




▮ 여가활동도 집근처에서만 한다.

이렇게 집을 중심으로 한 활동에는 여가활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여행이 꼭 필요할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80.9%), 이제 여행을 떠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게 된 것이다(73.4%). 그래서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에서 여가를 보내려는 생각이 커 보였다6). 55.9%의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 더 높은 비율(58.7%)로 ‘호텔에서 바캉스(호캉스)’를 보내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다 포기하고 가까운 맛집 탐방이나(맛캉스, 40.9%), 쇼핑 등으로(몰캉스(쇼핑몰+바캉스), 4순위) 휴가를 보내거나,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북캉스 7.5%, 5순위)도 적지 않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당분간 국내나 국외의 휴가지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계획자체를 접고 집과 가까운 곳에서 휴가 및 여가활동을 즐기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6).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의미 및 인식조사」.

 

 

▮ 당신을 만난 것은 자발적 동기였을까?

이제 모든 일과 여가, 일상생활이 집으로 수렵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서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술 마시고, 잡담을 나누던 다양한 모임을 예고도 없이 무 자르듯 탁 끊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가 갑자기 제한 받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반발이론(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의 관점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을 설명한다. 사회심리학자 잭 브램(Jack Brehm)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을 받으면 그 자유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이전 보다 그 대상을 더 가치 있게 여기거나 더 강렬하게 원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일상적인 사교모임이나 대면 접촉이 희소한 대상이 되면서 이전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갑작스러운 단절의 크기만큼이나 사회적 모임에 대한 큰 불편함과 결핍을 호소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현재, 유럽이나 미국사회에서 봉쇄(Lockdown)에 가까운 정책을 펴자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을 가지지 못하게 된 이 상황을 ‘거의’ 불편해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어져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32.1%)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68.2%), 사람들과 저녁식사나 술자리가 줄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27.2%)보다는, 저녁시간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개인시간이 늘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배 이상 많았으며(62.8%), 심지어 종교 활동이 줄어들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16.6%)보다는, 의무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는 사람들이 3배 이상 많았다(54.2%)7).

심리적 반발이론의 설명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발이론의 전제를 그대로 인용하면 이 역설적이고 흥미로운 조사결과는, 코로나19 이전 한국사회의 ‘끈끈한 인간관계’의 실체를 잘 설명한다. 대면 모임이나 대면 소통을 전제로 한, 끈끈한 인간관계는 사실 자유로운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모임과 대면상황에서의 소통은, 역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하는, 상당히 억압적인 형태일 수 도 있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우리가 맺었던 인간관계나 모임, 대면소통은 그만큼 피곤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오프라인에서의 모임과 대면상황의 소통에 이런 억압적 전제가 깔려있던 것이었다면, 코로나19는 만나고 싶지 않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피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7)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8). 「코로나19로 인한 생활패턴 변화 관련조사」.




▮ 시사점 및 전망

코로나19는 생활의 중심을 집으로 만들었다. 집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일과 여가생활의 플랫폼이 되었다. 여기에는 뻔해 보이면서도 중요한 시사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동네의 재발견이다. 집이 플랫폼이 되고, 여행이나 휴가가 크게 위축되면서 방역이 담보되어 있는 안전한 공간에 대한 선호는 크게 증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운 동네에서 가볍게 하는 산책이 일상에서 중요하게 다가왔다. 현재 코로나19 관련한 재난문자도 지역과 동네를 중심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지역사회와 동네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것은 지역의 정치적, 정책적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사점은 2016년의 욜로(YOLO)와 같은 대중소비자들의 감정적 반등이 과연 2021년 이후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2015년 12월23일,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정부는 메르스(MERS)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고, 이듬해 소비자들은 7개월의 지긋지긋한 불확실성을 참아낸 것에 보상으로 산으로 들로 지금 당장의 행복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코로나19의 전망은 암울하다. 코로나는 계속적인 변종을 만들어내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고, 전문가들은 2차, 3차의 또 다른 전염병을 예고하고, 만약 대한민국이 성공적으로 코로나19 청정국이 된다고 하더라도 해외의 상황이 정리될 때 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해외여행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람들은 집에 머물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다. 수면시간과 휴식시간이 늘어나고 있고, 뇌를 쉬게 하는 경험이 증가한다. 종합해 보면, 2021년 이후에도 2016년과 같은 외부활동의 V자 반등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를 고민해야할 시기다.

마지막 세 번째 시사점은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19는 단순히 경제적 침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관계를 코로나19를 명분삼아 재정리하고 있다. 굉장히 가깝게 느꼈던 직장동료, 선후배, 학교친구들의 관계가 문득 멀어졌다고 느낀다면, 그 관계가 ‘과연 자발적인 것 이었나’를 자문해야 할 시기다. 그리고 이 질문은 스스로에게도 필요하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모임에 ‘앞으로도 다시 나가고 싶은가’라고. 이제 ‘재미나 의미’에 기반하지 않은, 자발적 동기가 없는 모임과 인간관계라면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당연한’ 인간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6).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의미 및 인식조사」. 마크로밀 엠브레인.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6). 「홈 루덴스족 및 홈 인테리어 관련조사」. 마크로밀 엠브레인.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2020.08). 「코로나19로 인한 생활패턴 변화 관련조사」. 마크로밀 엠브레인.

최인수, 윤덕환 외 2명(2015). 『2016 대한민국 트렌드』, 한국경제신문사.

최인수, 윤덕환 외 3명(2016). 『2017 대한민국 트렌드』, 한국경제신문사.

로버트 치알디니(2013). 『설득의 심리학』, 황혜숙 역, 21세기북스.

존 S 앨런(2019).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 이계순 역, 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