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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스님 미황사 떠나기, 아름다운 실랑이 열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2. 16. 13:17

[김한수의 오마이갓]

금강스님 미황사 떠나기, 아름다운 실랑이 열흘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0.12.16 07:00

 

 

 

 

 

달마산이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미황사 전경. 미황사 홈페이지엔 '세속과 멀리 떨어진 땅끝마을, 모든 고통으로 멀어지는 자유로운 발걸음의 시작'이라고 적혀 있다. /미황사

미황사에서 바라본 남해안 낙조. /미황사

눈과 빨간 동백이 어우러진 미황사의 겨울 풍경. /미황사

◇“금강 스님 떠나지 마세요” 순식간에 3000명 서명 호소문

“달마산에 미황사가 있어 산이 아름답듯이 미황사는 금강 스님이 계셔야 아름다운 절입니다.”

최근 전남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내년 2월 미황사를 떠난다는 소식(조선일보12월 4일자 A22면 보도)이 알려지자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앞에 적은 이야기는 지역 ‘해남신문’에 실린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호소문 중 일부입니다. 지난 열흘 정도 해남 땅끝마을은 들썩들썩했습니다. 떠나려는 금강 스님을 잡기 위해서 말이죠. 결론은 금강 스님이 예정대로 떠나기로 정리됐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열흘 정도 미황사와 금강 스님 그리고 해남 주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20년간 주지를 지내고 내년 2월초 미황사를 떠나는 금강 스님. 외모처럼 둥글둥글하게 미황사를 찾는 이들을 가슴 따뜻이 맞아주며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를 가꿨다. /김한수 기자

시작은 지난주 주민들의 호소문이었습니다. 해남 주민들이 일어난 것이지요. 미황사 신도회와 해남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이 결성됐고, 이들은 지난 10일 지역 해남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광고 제목은 ‘금강 스님, 당신이 있어 미황사는 아름답습니다.’ 그 아래 작은 제목은 ‘금강스님, 미황사를 떠나지 마세요’ ‘미황사의 번창은 대흥사(미황사가 속한 교구본사)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미황사는 대한민국의 보물이며 해남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입니다’라는 등등입니다. 금강 스님의 사진과 함께 전체 참가자 명단을 실었습니다.

지난 10일자 해남신문에 실린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광고. 3000명이 서명해 금강 스님에게 미황사를 떠나지 말라고 호소했다. /독자 제공

이 날짜 해남신문엔 최재천 변호사(전 국회의원)의 특별 기고도 실렸지요. ‘미황사 금강스님을 찾는 까닭은’이란 제목의 기고에서 최 변호사는 유럽 국가 출신의 가톨릭 수사(修士), 재벌가 인사들이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의 미황사를 찾는 이유에 대해 “거기엔 금강 스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날짜 해남신문엔 ‘해남중·고 회 동창회’ ‘수필가 ’와 서울 광주 창원의 개인이 이름을 함께 적은 광고도 실렸습니다. 10여년 간 종교를 담당해온 저로서는 처음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금강 스님, 4년 임기 주지 5차례 연임하며 ‘아름다운 절' 가꿔

조계종은 기본적으로 교구 본사(本寺)와 말사(末寺)의 주지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가톨릭 성당의 주임신부 임기는 대개 5년입니다. 대흥사의 말사인 미황사도 마찬가지이지요. 금강 스님은 미황사 주지를 총 다섯번 지냈습니다. ‘웬만한’ 사찰이라면 한 곳에서 20년 주지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웬만하면’이라는 전제를 단 것은 금강 스님이 부임할 당시 미황사가 ‘웬만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음 금강 스님과 ‘절집 형님’인 현공 스님이 미황사에 왔을 때는 잡초 우거진 폐사와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폐사와 다름 없던 절을 오늘날 전국과 전세계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든 것이 금강 스님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금강 스님은 ‘(주지로서)잘 살았습니다’. 또한 금강 스님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얻었죠.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듯 ‘둥글둥글한 얼굴처럼’ 말이죠.

미황사에서 열린 수련회 모습. 미황사는 서울에서 5~6시간이 걸리는 땅끝마을에 있지만 연간 4000명씩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명소다. /미황사

◇주민들 “고향에 부모님 안 계시면 어떻겠나? 우리가 딱 그 기분”

어찌보면 문제는 ‘너무 잘 산 것’이겠지요. 유명식 미황사 신도회장은 저와 통화에서 “미황사는 금강 스님 덕분에 거의 문화유산이 됐다”며 “스님이 떠나신다니 너무도 허전하게 여기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고 했습니다. 유 회장은 “객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명절 때 고향올 때 부모님이 안 계시면 그 상실감, 허전함이 어떻겠나?”며 “미황사 주변 주민들의 마음이 지금 딱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해남신문 민인기 대표도 “호소문이 나오고 서명운동이 시작되자 바로 30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였다”며 “그만큼 미황사와 금강 스님이 군민(郡民)들 사이에 고맙게 자리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초 최재천 변호사가 보내온 기고문은 200자 원고지 30장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분량이 너무 길어 도저히 다 게재할 수가 없어서 절반 정도로 줄여서 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열변을 토한 것이지요.

 

제가 통화한 분들은 공통적으로 조계종의 사찰 주지 임면에 관한 권한을 침해할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사찰은 비단 조계종 혹은 교구 본사만의 것이 아니다. 신도, 나아가 주민과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지방의 작은 사찰 주지 자리 하나를 놓고 이렇게 지역민들이 똘똘 뭉쳐 애정을 호소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2년 전 입적한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설악 무산 스님은 생전에 “동네 사람들 잘 모셔야 한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하촌(寺下村)과 사찰은 사이가 좋지 않기 쉽습니다. 가족들도 가까울수록 많이 싸우게 되듯 사소한 일로 사이가 벌어지기 쉽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생전의 무산 스님은 사하촌 주민들을 무척 배려했습니다. 일례로, 백담사 입구에서 백담사까지 왕복하는 셔틀버스 운행권을 사하촌인 용대리 주민들에게 넘겼고, 인제군 노인회장님을 항상 사찰 행사의 제일 높은 자리에 모셨지요.

다시 미황사 이야기로 돌아오면, 금강 스님 역시 항상 “미황사는 주민들의 사찰이다”고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군민들의 주인의식이 너무 강해져서 금강 스님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인지도 모릅니다.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 관계자는 “금강 스님은 스님으로서 입장이 있겠지만, 신도와 주민들도 우리 나름의 입장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금강 스님 직접 주민 설득 “감사로 마무리”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가장 난처해진 주인공은 바로 금강 스님이었습니다. 주지 자리를 떠나겠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1주일여 절을 떠나 전국을 순례하던 금강 스님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난감해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그렇다면 제가 주지로서 잘못 살았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제가 20년 미황사 살면서 그나마 잘 한 일이 있다면 주민들과 사찰, 불교와 친근한 관계가 되도록 한 것”이라며 “만약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 내용으로는 ‘미황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저는 정말로 잘못 살았던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금강 스님은 14일 저녁 미황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15일 오후 저와 통화한 스님은 “잘 마무리 됐다. 결론은 ‘감사’”라고 했습니다. 예정대로 스님이 떠나는 것에 주민들도 양해를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어찌보면 저 멀리 전남 해남 땅끝마을 작은 절에서 벌어진 열흘 남짓한 해프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 사람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생각했습니다. 금강 스님이 계속 미황사 주지를 맡아야 할지, 아니면 20년 주지를 했으니 이젠 떠나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어쩌면 양쪽 주장이 다 맞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미황사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모든 과정이 ‘불교적’으로 정리됐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의견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선의(善意)를 확인한 후, 마지막 순간에 서로 알맞게 물러났다는 것이지요.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마무리입니다. 미황사의 별칭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처럼 말입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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