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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지이불언(知而不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1. 3. 13:23

[265] 지이불언(知而不言)

입력 2014.06.04 0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고려 때 유원적(兪元勣)이 권신 김인준(金仁俊)을 제거하려다 모의가 탄로 나서 잡혔다. 김인준이 그의 형 유천우(兪千遇)를 불러 "공의 아우가 나를 죽이려 했소. 이 사실을 알았는가?" "알았소."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으니(知而不言) 그대도 한패구려." "그가 그 말을 하기에 꾸짖고 매질을 해서 쫓아 보냈소. 실패할 줄 알았지만 내가 고변한다면 이 때문에 연로하신 어머님 마음이 상하실 테고, 사람들은 제 동생을 고발해서 제 죽음을 면했다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오. 그래서 알릴 수 없었소."

김인준이 말했다. "만약 공이 몰랐다고 했다면 더욱 의심을 샀을 터이나, 이제 사실대로 말하니 문책하지 않겠소. 지난번 내 동생 집에서 잔치할 때 홍시 맛이 좋다고 다들 칭찬했는데 그대만 먹지 않기에 내가 까닭을 묻자 그대는 가져가 어머니께 드리겠다고 대답했소.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웠다고 한 말을 내가 믿으리다." 유천우는 파직만 되고 유원적은 처형되었다. '고려사' 열전과 '역옹패설'에 나온다.

정약종이 천주교 신자로 붙들려 갔다. 그의 동생 정약용이 연좌되어 의금부의 취조를 받았다. 그는 진술을 거부하며 말했다. "임금을 속일 수 있습니까? 임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형 일을 증언할 수 있습니까? 형 일은 증언할 수가 없습니다." 임금을 속여 거짓말할 수도 없고, 형을 고발해 죄 입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알고도 그렇게 했다. 당시에 명언으로 회자되었다. '매천야록'에 나온다.

형제의 잘못을 알지만 혈육 간 일이라 고발할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 천륜을 해칠 수 없다고 여겨 두 사람은 그렇게 했다. 유천우는 능란한 처세로 좋은 평을 못 받았던 인물인데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로 제 목숨을 지켰다. 다산은 이 일로 혹독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은 바야흐로 자식이 아비를 고발해 악담하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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