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시인들이 말하는 시창작법

김남조·오세용·이건청·신달자… 한국 詩壇의 문제점 비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9. 8. 9. 15:36

[계간 '시인수첩' 봄호 좌담회]


김남조·오세용·이건청·신달자… 한국 詩壇의 문제점 비판



원로 시인들이 오늘의 한국시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이번 주 나올 계간 '시인수첩' 봄호는 김남조(89)·오세영(74)·이건청(74)·신달자(73) 시인을 초대한 좌담 '한국 현대시의 반성과 전망'을 통해 시단(詩壇)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좌담 사회를 맡은 감태준(69) 시인은 "한국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젊은 시인들의 난해시 유행과 시(詩) 독자의 감소"라고 꼽았다. 오세영 시인은 '시인이 넘쳐났기에 시 독자가 줄어들었다'는 역설을 제시했다. 그는 "시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독자는 시 작품의 홍수 속에 빠져 오히려 시를 외면하게 됐다"며 "수만 명의 시인이 자타가 인정하는 등단 절차를 밟아 공인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시를 싣는 월간지와 계간지가 200여종이나 되다 보니 등단이 과거에 비해 쉬워지면서 수준 이하의 시인들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시인수첩’ 좌담회에 참석한 시인들. 왼쪽부터 이건청·신달자·김남조·오세영·감태준 시인. /시인수첩 제공

 

시단(詩壇)에서도 시인 숫자를 정확히 집계하지 못해 그냥 2만여 명으로 추산한다.

 오 시인은 "시인이 많아지다 보니 시 수준이 떨어졌다"며 지하철에 게시된 시를 거론했다. 그는 "시를 선양하기는커녕 오히려 독자들에게 시에 대한 혐오감 혹은 모멸감을 확산시켜 시로부터 독자들을 추방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힐난했다.이건청 시인은 '시의 범람'을 지적했다. 그는 "문예지 편집자들이 신작 특집이다 소시집(小詩集)이다 해서 다작(多作)을 부추긴다"며 "결과적으로 이런 시의 난맥상이 시의 위의(威儀)를 무너뜨리고 시가 설 자리 자체를 축소하는 요인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시의 홍수' 사태와 관련해 김남조 시인은 박목월 시인의 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꺼냈다. "그분은 이마로 돌을 간다고 할 만큼 시를 힘겹게 쓰셨지요. 며칠쯤은 자는 일 먹는 일 잊고 가족의 접근도 제한하는 경우가 여러 번입니다"라고 회상했다는 것.원로 시인들은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젊은 시인들과 거기에 동조하는 평론가들도 성토했다.


신달자 시인은 "소통이 되지 않는 시가 독자를 밀어내고 시집 판매까지 어둔하게 한다"며 "시를 써온 전문가도 알아듣지 못하는 시가 좋은 시로 떠받들리는 일에 대해 좀 더 핵심을 파고들어 그 단위를 가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세영 시인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풍(詩風)을 너무 쉬운 '사실의 시'와 너무 어려운 '망상의 시'로 나눠 분석했다. '사실의 시'는 일상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베껴놓곤 은유도 상징도 없이 쉬운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수필의 한 토막 같기에 시의 본령에서 벗어났다는 얘기다. 오 시인은 '망상의 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시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야기되는 어떤 이질적이며 상호 단절된 의미들이나 관념을 무책임하게 그저 토설한다"는 것이다.


이건청 시인은 '시의 산문화' 현상을 비판했다. 그는 "젊은 시인들이 시를 존재 자체가 겪는 욕구불만의 배설체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시의 행수가 20~30행이 넘는 경우가 상당수인데 이는 정련되지 못한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센터의 시 창작 강좌에서 시인이 수강생의 작품을 첨삭 지도해 등단을 돕는 현상도 비판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시인들은 '시인들의 자기반성'과 '시의 창작 윤리 바로 서기'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