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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중유시 畵中有詩의 시를 찾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7. 30. 00:15

화중유시 畵中有詩의 시를 찾다

나호열

1.

 

『산림문학』은 여러 면에서 일반 문학지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산림山林’이 의미하는 바대로 무위자연 無爲自然의 섭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계몽의 문학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그에 따라 열악한 출판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방적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두 번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는 산림문학회 회원으로 등록된 문인들에게는 가급적 우선적으로 작품수록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 여타의 문학지와 변별되는 『산림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산림문학』의 이러한 특징은 다양한 층위로 전개되고 있는 문학의 난삽함을 지양하고 보다 대중친화大衆親和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평詩評 또한 작품(시)과 독자 사이에서 함께 시 읽는 즐거움을 나누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다할 따름이지 작품의 우열을 따지고 경향성을 주지시키는 일이 아님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2.

 

『산림문학』2017년 겨울호에 실린 35편의 시편들은 앞서 언급한 『산림문학』이 지향하고 있는 자연의 완상 玩賞과 소회 所懷를 그려내는데 충분히 그 격을 높이고 있다. 지나치게 난삽한 전위 前衛의 시들이 일반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생활 속에서 길어올린 심상心象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휴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시인들이 제시하고 있는 풍경이나 사건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상식적인 결말이나 감정의 토로에 그치고 만다면 시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주제나 소재의 새로움이 있던 없던 간에 시의 발언은 언어의 연금鍊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시는 진술 陳述이 아니라 표현 表現의 축을 지니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서 언어가 지닌 애매성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축構築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시인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상매체의 강력한 대두로 말미암아 언어 표현의 위력이 감소되는 그 지점에 화중유시畵中有詩 의 애매성과 여백이 드러난다는 점을 ‘쉬운 시’의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될까? 화중유시畵中有詩, 풍경이나 전개된 사건 속에 감춰진 진실이나 아름다움이 독자들의 향수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관념과 향기로 전파된다는 것이야말로 ‘쉬운 시’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김영자 시인의 「퇴계 선생 종택 宗宅에 붉은 별 떴네」, 박수화 시인의 「겨울 인제를 지나며」, 유수진 시인의 「꽃밭」은 형식의 새로움을 모색하고 언어의 축자적 逐字的 기능을 조심스럽게 감소시키면서 은유의 깊이를 모색하는 실험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소개할 만하다.

 

마당 옆구리에 선 키 큰 산수유 한 그루가 겨울 하늘 속 붉은 별을 물고 있네 서원書院에 다녀온 사람들이 머플러를 두르는 동안 몸속에서 싹이 난 별들은 껍질을 벗고 껍질은 벗은 껍질들끼리 모여 살 오른 별이 되었네 봄도 오기 전 노란 살덩이 무더기무더기 쏟아내며 붉은 갈증 느낄 무렵 퇴계선생 발자국은 꽃으로 피어 붉은 산수유알 속에서 실개천으로 흘렀네 살얼음 낀 태실 胎室을 지나 성림문 聖臨門을 나와 물을 뜯네 물에 젖네 새봄의 발자국 소리

 

- 「퇴계 선생 종택 宗宅에 붉은 별 떴네」전문

종택은 한 마디로 누대 累代의 삶이 깃든 뼈대 있는 집안의 가옥을 말한다. 그곳에는 흘러간 시간의 때가 묻어 있고 그 풍경 속에 살아있는 나무와 흘러가는 시냇물이 있다. 우리는 “시간/공간, 삶/ 죽음” 과 같은 이분법의 사유로 번뇌를 일으키지만 사실 그러한 이분법적 사유는 허상에 불과하다. 물을 ‘뜯는’ 행위와, 물에 ‘젖는’ 행위가 봄이 오는 발자국 소리로 공명되는 순간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심상을 다르게 말하는 시의 여백이 담백한 서술에 압축되어 있지 않은가!

 

이와는 달리「겨울 인제를 지나며」는 3연 14행으로 이루어진 1부와 2연 11행의 2부로 구성된 시이다.

 

산안개 스르르 팔을 풀면

산봉우리 수묵화 속으로 붉은

해 무리 떠오르고

하루가 빗장을 푼다

 

- 1 부 2연

 

화자 話者는 새벽 동트는 인제를 지나며 그 풍경을 통해 생명의 약동을 위와 같이 묘사한다. 그러나 2부에서는 1부의 원경 遠景에서 마을의 깊숙한 곳으로 시선을 옮겨 생명의 원형을 다음과 같이 그려낸다.

 

동네를 누비던 떠돌이 개 베리

수 십 마리 새끼 치다가 야위고 새끼

치다가 늙어만 간다

빈혈로 쓰러져서는 링거를 꽂고

몸 추스르고 일어나자 겨울바람의 음막에서

또 몇 마리 새끼를 친다

얼마나 더 새끼를 밸 것인가

 

살아서 번성하고 꿋꿋하고

살아서 새끼치는 아침 창을 열면

살아서 향기로운 나도 겨울 하늘 속으로

마음 깃털이 되어 날아오른다

 

-「겨울 인제를 지나며」2부

 

정치 精緻한 비유의 맛을 버리고 강건한 문체를 통해 생명 그 자체의 원시성을 떠돌이 개를 통해 발언하는 것은 짐짓 깨달음의 경지를 면벽의 수행을 통해 얻은 듯한 잠언류의 시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호쾌함이 있다. 1부와 2부의 병치 竝置가 시의 완성에 얼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형식의 새로움을 모색하는 시인의 마음이 정성스럽다.

 

신예 新銳라 할 수 있는 유수진 시인의「꽃밭」은 18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이나 연은 다섯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극의 서막과 같은 ‘마당엔 소나기 같은 짠내’로 첫 연을 열고 ‘계셔요’를 한 행으로 세 번이나 반복하는 구어체의 문장, 아무도 찾지 않는 노파의 마당 꽃밭과 얼굴에 가득한 검버섯을 동일한 표상으로 제시하는 알맞은 거리 조정은 아래와 같은 여백으로 증명된다,

 

하늘 군데군데 피어 있던 꽃구름

하나 둘 떼다가 곰방대에 쑤셔 넣고 불을 붙인다

깊게 몇 번을 들이마셔 빨아야 빠작빠작 타오르던 불꽃

구겨지고 펴기를 반복하느라

상추 한 포기 심을 자리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꽉꽉 들어찬 검버섯

누구도 들어서지 않던 그 꽃밭

 

- 「꽃밭」마지막 연

 

언어의 정제미나 압축의 묘미가 충분히 살아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 상투적 형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구도로 만들어가는 실험은 시의 성패 여부에 상관없이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3.

 

영상매체에 의한 사물과 세계의 정밀하고도 환상적인 투사 投射를 언어의 묘사로 이겨낼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은 언어가 지닌 상징성과 애매성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관념을 유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진이 보여주는, 즉각적 자극을 일으키는 일차적 관념을 다시 번역하는 일을 수행하는 일이 시가 하는 일이라면 화중유시畵中有詩 의 변법 變法은 얼마든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들미골 계곡에 ‘들미골 칡소’ 라는 작은 소 沼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줄 것이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폭포를 이루고 그 아래에 맑은 소沼 가 어른거릴 것이다. 그 풍경을 시인은 어떻게 인식하며 번역하는 것일까?

 

선녀들이 오르내렸다

 

맞은 편 언덕에서 바라보니

비스듬히 쏟아지는 폭포의 물보라는

선녀의 속치마 실루엣 같았다

 

- 이인평, 「들미골 칡소」 1연과 2연

 

화중유시畵中有詩의 기법을 터득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폭포의 떨어짐을 선녀의 오르내림으로, 물보라를 선녀의 속치마 실루엣으로 치환할 수 있음은 무엇보다도 심미안 審美眼을 지니려는 시인의 노력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

 

* 계간 『산림문학』2018년 봄호 계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