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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지역문화기관들의 역할 차이와 상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1. 30. 10:47

(월간 춤, 2015년 11월호)

지역문화기관들의 역할 차이와 상생

상언 ·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장

 

 

많은 지방문화원들이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문화원의 할 일을 문화재단에 빼앗길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는 각 지역 예총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회원의 회비로 운영함이 원칙인 사단법인 예총과 독립 법률에 근거하여 정부 지원이 제도화해 있는 특수법인 문화원은 법인격부터 다르다는 점, 따라서 회원의 친목과 이익이 목적인 민간단체로서의 예총과, 지역문화의 창달과 활성화가 목적인 공공단체로서의 문화원의 역할 또한 다르다는 점은 이 둘의 문화재단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차이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예총과 문화재단 간 예술 지원 정책을 둘러싼 이야깃거리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역할 차이와 함께 그 상생을 위한 기본을 살펴보기로 한다.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문화관·문화원·공보원 같은 이름의 자생적인 민간 문화기관들이 미국 공보원의 기자재 지원을 받아 국가 시책을 홍보하면서 각 지역의 향토문화운동을 전개한다. 이들 78개 지방문화원들은 1962년 1월 (사)한국문화원연합회를 결성하여 정부 공인기관으로 활동하고, 이어 1965년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이 시행되면서 그 각각이 특수사단법인으로 등록된다. 이때부터 보조금과 시설의 무상대여 등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은 1994년 지방문화원진흥법으로 대체되는데, 이 법에 따르면 지방문화원의 주요 사업은 ‘지역문화의 계발·보존 및 활용, 지역문화(향토자료 포함)의 발굴·수집·조사·연구 및 활용, 지역문화의 국내외 교류, 지역문화행사의 개최 등 지역문화 창달을 위한 사업,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컨설팅 지원 사업,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2조제1호에 따른 문화예술교육 사업 지원, 다문화가족지원법 제2조에 따른 다문화가족에 대한 문화활동 지원’ 등이다.

 

한편 1990년대 전반기에 민선자치단체 체제가 확립되자, 1997년 지역문화재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경기문화재단이 탄생을 알린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와 함께 지역문화재단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광역 단위에서는 13개, 기초 단위에서는 49개의 문화재단이 설립·운영되고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이 각 지자체의 조례로 명문화할 것을 규정한 지역문화재단의 사업 범위는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사업의 개발·추진·지원, 지역문화 관련 정책 개발 지원과 자문, 지역문화전문인력의 양성 및 지원, 지역문화예술단체 지원 및 활성화 사업 추진, 지역문화 협력 및 연계·교류에 관한 업무’ 등이다. 그리고 광역재단은 ‘문화예술의 창작지원과 보급 활동,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 개발 및 자문, 시(도)민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 사업,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기금조성 및 운용, 문화예술분야의 국제교류사업,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 사업, 문화예술교육사업, 문화예술 정보의 축적 및 서비스 제공 사업’ 등을, 대부분의 기초재단들은 문예회관 등 시설 운영을 주요 사업으로 정하고 있다.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탄생 경위와 사업을 비교해 보면 지역문화진흥법에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을 별도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확인된다.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중추기관으로서의 문화재단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이 뚜렷하다는 뜻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방문화’ 또는 ‘지역문화’를 앞세우며 문화원들이 활동해 왔지만 그 역할의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의 대부분은 ‘문화예술’의 개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문화예술진흥법이 규정하는 ‘문화예술’과 관련한 직접적인 기능이 문화원에는 주어지지 않았고, 이에 그 기능을 수행할 역량과 기회 또한 확보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예진흥법 제2조는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 포함),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광역문화재단의 설립 근거는 2014년 7월 29일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이 문예진흥법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재단의 설립 근거가 문예진흥법에서 지역문화진흥법으로 바뀌면서 문화재단의 역할 또한 일부 변화하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전까지 문예진흥법의 ‘문화예술’의 개념을 중심에 두고 ‘지방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해 온 문화재단이 2014년부터는 지역문화진흥법의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이라고 정의되는 ‘지역문화’의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이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지원하고 그 사업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이 문화재단의 기능을 새로이 규정하고 확대한 점은 시대적인 한 소명으로서 의의가 작지 않으나, 지역문화진흥법의 규정으로만 볼 때는 ‘문화예술’에 대한 문화재단의 상대적인 소홀함과, 변화한 문화재단의 역할이 문화원의 역할과 조금 더 중첩돼 보인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지역문화진흥법은 문화재단의 핵심 사업인 ‘문화예술’의 지원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그 역할을 재확인하고, 나아가 문화원과의 역할 차이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1990년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독립 신설된 이후 ‘지역’ 자(字)가 들어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정책 주무 과(課)는 2002년 김대중 정부의 ‘전통지역문화과’가 최초이며, 이후 ‘지역문화과’, ‘지역민족문화과’ 등을 거쳐 현재는 ‘지역전통문화과’라는 이름으로 설치돼 있다. 이렇게 ‘지역’이 한 과의 명칭에 포함되기 이전, 그리고 이후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될 때까지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지역문화정책’은 지역문예회관 건립, 지역축제 지원정책 등을 빼고는 상당부분이 ‘지방문화원정책’이었다. 이에 1997년 이후 문화재단이 꾸준히 설립되면서 위기감을 느꼈을 문화원으로서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시행과 함께 ‘지역문화정책’의 중심이 문화재단으로 완전히 이동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의 당연한 흐름과 요구로서 ‘지역문화정책’의 중심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아니 오히려 분산되어야만 한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상생을 위한 출발점이 있다.

 

먼저 문화원은 문화원 자체의 역량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열악한 처우로 인한 고급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 기관의 지속가능성보다는 불안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나마 안주하려는 분위기, 그리고 정치적으로 취약한 리더십은 정말 어찌 풀어가야 할지 모를 난제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리고 적어도 1994년 이후 20년 이상 어떤 특정 기관을 진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선언한 지방문화원진흥법이라는 독립 법률의 보호 아래 있었던 문화원이지만 모든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구각(舊殼)을 벗고 한 걸음 진보해야 한다. 문화재단 역시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리더십의 제고 등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팔 길이 원리(Arm's Length Principle)'에 입각한 ‘팔 길이 기관(Arm's Length Organization)'으로서의 자율성과 이에 따른 책임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행정문화 전체가 비약적으로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각급 자치단체가 문화재단을 마치 계선 조직상의 한 과(課)나 계(係)로 간주하다시피 하는 현실에서 창의적인 문화행정이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건강한 상생을 위하여 문화원은 광역 단위든 기초 단위든 문화재단과는 경쟁관계를 설정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역할 차이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중간 또는 공통 지대에 설정되어 있는 과제들, 예를 들어 지역문화진흥법 제2장 ‘지역의 생활문화진흥’과 제3장 ‘지역의 문화진흥기반 구축’을 위한 방안들에 대하여는,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상호 격의 없는 소통과 교류로써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지방문화원은 ‘향토문화’에 보다 가까운 지역문화를, 지역문화재단은 ‘예술문화’에 보다 가까운 지역문화를 진흥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생활문화’ 부분도 아마추어예술이라면 문화원이, 전문창작예술이라면 문화재단이 맡아야 한다. (이 경우 애매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만약 그 방침이나 방향마저 처음부터 무시된다면 지역의 예술은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할 우려가 높다.) ‘지역의 문화진흥기반 구축’ 중 ‘전문인력양성 부분’도 ‘생활문화’에 대한 역할 분담의 방침과 방향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필자가 3년 반 가까이 일을 했던 대전문화재단은 2013년부터 아마추어 예술 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 속 예술 활동 지원’ 사업을 예산 전액과 함께 5개 구 문화원에 위탁하여 문화원으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고 있다. 지원 신청도 구 문화원으로, 지원금 집행도 구 문화원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며, 문화원과 문화재단의 모범적인 상생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대전문화재단은 ‘문화공동체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수 년 전부터 문화원이 해온 ‘생활문화공동체사업’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따라서 대전문화재단은 예술과 예술가를 이 프로젝트의 한가운데 두고 ‘예술문화공동체사업’으로 운영하면서 문화원의 일상문화 중심 공동체사업과 차별화하였다. 이 밖에 대전문화재단은 지금도 문화원과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원의 ‘문화’와 문화재단의 ‘문화’는 정책 현실적으로 엄연히 다르다. 거듭 말하지만 문화원의 ‘문화’는 ‘향토문화’에, 문화재단의 ‘문화’는 ‘예술문화’에 보다 가깝다. 물론 감자나 고구마처럼 뚜렷하게 잘리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그 방침과 방향만큼은 확고해야 한다. 그리고 중간이나 공통으로 존재하는 ‘생활문화’도 아마추어예술가의 ‘일상예술’을 중심으로 하면 ‘문화원’이, 예술 창작을 업으로 하는 전문예술가의 ‘예술문화’를 중심으로 하면 ‘문화재단’이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문화진흥법 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문화재단들이 정책 오판을 하고 있다. 이른바 착한 가치인 생활문화, 그리고 정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민문화를 무턱대고 앞세우다 보니 문화재단의 첫 번째 미션인 예술과 예술가 지원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거나 문화원과의 역할 혼선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원과 문화재단 간 역할의 차이를 확실히 인식하는 속에서 상생의 기본전략이 나오며, 아울러 두 영역 간 끊임없는 소통과 교류 또한 전제되어야 지역문화정책의 시너지 효과가 창출됨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