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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보수' '진보'라는 명칭, 더 이상 쓰지 말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1. 29. 22:14

'보수' '진보'라는 명칭, 더 이상 쓰지 말자

• 김동근

발행일 : 조선일보 2018.01.22 / 여론/독자 A29 면

얼마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 교수님이 군인들을 상대로 한 안보 강연에서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물었더니 아무도 없었고,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라'고 했더니 대부분 거수했다고 한다. 한 명에게 '왜 진보라고 생각하느냐' 질문했더니 "진보가 좋은 것 아닌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필자가 청년들과 공부 모임을 할 때도, 많은 젊은이는 처음에 자신은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라며 진보진영을 택하고 소속감을 느꼈다고 했다. 해당 젊은이들은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하며 좌익 이념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도저히 맞지 않는 요소들을 발견하고 인지(認知) 부조화를 겪다가 빠져나온 경우가 수없이 많다. 그들이 낭비한 몇 년의 시간은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한국 정치사의 거대 사기극 중 하나는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좌익은 인민민주주의를, 우익은 자유민주주의를 원한다. 좌익은 정부의 간섭·통제를, 우익은 개인과 기업의 선택·자유를 존중하는 경제체제를 바란다. 양쪽 모두 지키려는 것과 나아가려는 방향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우익만 보수고, 좌익만 진보라는 괴상한 프레임에 가두어져 있다.

 

세 가지 이유에서 이런 이름 붙이기를 중단해야 한다.

 

첫째, 보수란 명칭은 우익적 가치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 보수는 무언가를 지킨다는 사전(辭典)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단어 안에 우익 진영 안의 다양한 가치와 개념을 쑤셔 넣고 있으니 수십 년간 사람들은 '보수=그냥 지킨다' 또는 '발전을 거부하는 수구꼴통'이라는 뜻으로 인식하게 됐다. '보수'에 대해 부정적 의미만 떠올릴 뿐 보수와 보수주의의 차이점이나 보수는 좋은 가치를 지키자는 의미도 있다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5000만명 국민 중 1%라도 귀 기울여준다면 기적일 것이다.

 

둘째, 진보라는 이름은 더 잘못됐다. 진보의 기준인 마르크시즘 역사관은 틀렸음이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좌익은 우익보다 더 보수적이고 수구적이다. 청년 실업난이 심화하는데 기존 노동조합의 이권을 보호하고, 구시대적 계급투쟁주의와 노동가치설을 아직 신봉하고, 규제와 간섭으로 신기술 도입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도 대다수 우익의 지식인과 정치인조차 그들에게 진보라는 말을 붙여주고 있다. 우익이 패배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셋째, 한쪽이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하면, 상대방을 진보로 명명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이다. 우익의 일부 오피니언 리더는 진보를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반대하나, 보수주의는 실존하니 보수를 보수라고 부르는 건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익이 스스로를 보수라고 하는 순간, 좌익에게 진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진보적·진취적·개방적이라는 말은 십중팔구 긍정적 느낌을 준다.그 결과 우익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수세에 몰려 불필요한 오해에 대해 설명만 하느라 젊은이들을 다 놓치고 있다. 보수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우익이 추구하는 가치를 연상시키지 않으며 투표하고 싶게 만들지도 않는다. "내가 보수다!"라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말하고 싶게 만들지도 않는다.우익은 스스로를 지칭할 때 우익이든 자유시민이든 자유공화시민이든 다른 명칭을 써야 한다. 대한민국의 반국가, 반자유, 반민주 세력에게 진보라는 멋진 타이틀을 붙여주어선 안 된다. 우익이 좌익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그 이전에 살아남고 싶다면 용어 프레임을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김동근 청년대학생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