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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발간된 1호부터 6호까지 악스트 표지를 장식한 작가들. 천명관ㆍ박민규ㆍ공지영 등 문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알만한 유명한 작가들은 물론 SF 작가 겸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듀나,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프랑스 국민작가 파스칼 키냐르, 시와 소설을 오가며 활동하는 이장욱 작가 등으로 외연을 넓혀왔다. 편집위원인 소설가가 소설가를 인터뷰하고, 백다흠 편집장이 직접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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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를 꾸려나가고 있는 편집장과 편집위원들. 왼쪽부터 백가흠 작가, 배수아 작가, 노승영 번역가, 백다흠 편집장, 정용준 작가.

 

지난해 7월 문학계에 하나의 변종 같은 문학잡지가 등장했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악스트’다.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Axt)’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에서 따온 제호는 이들을 규정하는 메타포가 됐다.

악스트는 우선 기존 문학잡지의 구성 양식을 깨버렸다. 문학동네ㆍ은행나무 등에서 경력을 쌓아온 편집자 백다흠(37)이 편집장을 맡고, 친형인 소설가 백가흠(42)과 정용준(35), 거기에 직접 소설을 쓰면서 번역을 하고 있는 배수아(51)가 진영을 꾸렸다. 평론가 일변도의 세상에 소설가들이 직접 나서 소설을 위한, 소설 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잡지를 천명한 셈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놀라운 일은 더 많다. ‘Art & Text’를 추구하는 신간뿐만 아니라 구간 리뷰가 넘쳐난다. 연재 소설은 물론 김민정 시인이 읽고 국내외 화가들이 그리는, 책읽기의 다른 방법이 제시된다. 이우성 시인이 아이돌 그룹 포미닛의 현아 솔로 앨범을 리뷰한다거나 대림미술관이 뜨는 이유를 고찰하기도 한다. 편집자 시절부터 문인을 위해 사진을 찍어온 백다흠 편집장의 사진도 곳곳에 등장한다. 그야말로 보고 듣고 읽는 삼박자가 맞는 문예지가 탄생한 것이다.

 

이 고품격 저가격(2900원) 잡지에 독자들은 당연히 반응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자기 글쓰기도 바쁜 작가들이 2000부도 힘든 문예지 시장에서 1만 부 이상 팔려나가고 있는 이 잡지를 대체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있을까. 7호 마감이 한창인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그들을 만났다. 1주년을 맞아 새롭게 편집위원으로 합류한 번역가 노승영(43)까지 다섯 명의 문인들은 답변을 하다가도 회의를 하고, 사진을 찍다가도 일 얘기로 돌아갈 정도로 열의에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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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형 편집자 동생 문인들이 함께 모여

악스트는 은행나무 주연선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시ㆍ소설ㆍ평론을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를 만들자는 것. 일본 겐토샤에서 발행하는 ‘폰툰(Pontoon)’이라는 구체적 모델도 있었다. 하지만 백다흠의 생각은 달랐다. 기존 문예지들이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문예지를 얹기보다는 좀 더 젊은 독자들과 소설가들이 모여 소설 중심의 잡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처음에 편집위원은 어떻게 꾸리게 됐나요.

“사실 저희가 기존의 틀을 막 깨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문학잡지는 많이 있으니까 소설 잡지를 만들면 좋겠다 싶었고, 그렇다면 조금 더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소설가들이 하면 편하겠다고 생각했죠. 동생이랑 평소에 워낙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고요. 배수아 선배님은 소설가이기도 하시고 외국문학에 워낙 능통하시죠. 용준씨는 요즘 가장 젊고 핫한 작가고. 저는 둘을 연계하는 거간꾼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백가흠, 이하 가)

역할 구분은 어떻게 나뉘어져 있나요.
“기획회의를 통해 모든 것들이 결정되는데 저는 주로 대중의 시각, 독자의 시각, 시장의 시각, 편집자의 시각에 맞춰져 있어요. 그 부분의 경계와 기준을 편집위원들에게 말하고 기획안을 조율하죠. 디자인과 교정 교열 등 전반적인 일에 관여하기도 하고요.”(백다흠, 이하 다)

사진도 직접 찍으시잖아요.

“외주로 하고 싶은데 돈이 많이 없어요. 나중에 청구해서 받을 건데(웃음).”(다)
“아무래도 잡지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게 좋죠.”(배수아, 이하 배)

 

문인 전문 사진가로 유명한데 비결이 있나요.
“사실 악스트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일은 다른 일보다 힘들고 때론 고통스러워요. ‘내가 왜 이 짓을 한다고 했지?’ 싶기도 하고. 문인이라고 별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사진 프레임에서 보여질 때 책과는 다른 문학적인 발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욕심이겠지만.”(다)

 

형제가 함께 일해서 불편한 점은.
“저는 별로 개의치 않는데.”(다)

“저도 별로 감흥이 없어요. 학교도 같이 다녀서 후배이기도 하고. 동생이 짜증나겠죠.”(가)

“SNS에 보니 백다흠을 실컷 욕해놓고 알고 보니 그건 백가흠이었다며 스스로 사과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노승영, 이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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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터뷰어 당혹스럽게 만든 것 반성”

사실 악스트는 의도치 않게 이슈를 몰고 다녔다. 1호 커버였던 천명관 작가 인터뷰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와 맞물려 문학권력 논쟁 이슈를 확대시켰다. 4호 커버였던 듀나 인터뷰는 작가나 작품이 아닌 개인 신상 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소설가들이 직접 인터뷰어로 나서기 때문에 보다 깊숙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되려 소설 외적인 이야기로 자꾸 튀어나간달까.

 

커버 인물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생각보다 선정 시간이 오래 걸려요. 누가 이 사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아젠다에 간섭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단지 문학인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커버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이상하게 문학잡지만 커버스토리가 없기에 대중잡지 호흡에 길든 독자들을 위해서 마련한 건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서평은 부가적인 부분으로 존재하고 커버가 잡지 전체를 덮는 역할을 하더라고요.”(다)

 

늘 인터뷰를 당하다가
직접 인터뷰를 해 보니 어떤가요.

“사실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소설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려면 다른 작가,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제 소설 독자와 잡지 독자가 다른 것처럼 글쓰기 방식도 다르고요. 저는 반성을 좀 했어요. 그동안 인터뷰를 할 때 인터뷰어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답변을 하고 스스로 만족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별로 멋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배)

“글 쓰는 사람이 이런 걸 잘 못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어찌 보면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하기도 한데. 저도 소설가니까 외부적 시선이나 객관적인 부분은 모르는 게 많아서 따로 공부도 해야 하고. 그동안 나온 작품과 인터뷰들을 다 찾아서 읽다 보니 제가 그분들을 스토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평소 만나고 싶었던 작가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재밌는 것 같아요. 보람도 있고.”(정용준, 이하 정)

 

리뷰 작품은 선정 기준이 있나요.
신간보다 구간 비율이 높은데.

 

“한국문학 작품은 저희가 먼저 부탁하기도 하는데, 필자가 선정하는 것과 반반인 것 같아요. 외국문학은 필자가 선정하는 게 더 많고.”(다)

“저도 잘 몰랐던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아무래도 80년대 생이다 보니 예전 분들은 잘 모르거든요. 김채원 작가나 새롭게 발견한 분들이 많은데 독자들한테도 비슷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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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단장한 악스트 7호.

 

이미지와 텍스트 결합 성공…해외문학 집중은 숙제

그럼 이들 스스로 평가하는 악스트의 좌표는 어디쯤일까. “제가 생각하는 악스트는 비평을 거치지 않고 독자와 책을 연결해주는 읽을거리로서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잡지예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해 줘서 같이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사실 외국문학은 대부분 번역을 통해서 접하게 되잖아요. 작가와 독자 사이에 번역가가 굉장히 많이 개입을 하는 건데 번역가가 개인의 독서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뤄보고 싶기도 했고요.”(노)

“그동안 소설가 두 분 사이에서 혼자 버거웠는데 노 선생님이 합류해 균형을 갖추게 돼서 반가웠어요. 저는 번역을 사랑하거든요.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고 자랐기 때문에 번역문학 역시 한국문학의 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원래 번역을 하던 분들도 작가로 성공하면 번역을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번역문학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서평도 테마를 정해서 간다든가 번역가들이 쓰는 에세이를 시리즈로 해 본다든가 하는.”(배)

 

이같은 노력은 7일 발간된 7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존 여섯 권이 블랙 앤 화이트 톤을 유지한 것과 달리 화사한 핑크톤을 사용해 정유정 작가를 더 돋보이게 했다. 배수아ㆍ백가흠ㆍ정용준 세 편집위원 모두 초단편소설을 쓰고 황현산 문학평론가ㆍ이응준 소설가ㆍ이명현 천문학자의 소설인 듯 에세이 같은 하이퍼에세이가 등장한다. 여기에 “작가-번역가 커플이 자식을 셋 이상 낳았고 작가의 전체 자식 중에서 이 커플이 낳은 자식이 70% 이상인 경우 이를 공식 커플이라고 하자”며 이공계와 인문계가 묘하게 뒤섞인 문체를 구사하는 노승영 위원의 글 또한 흥미를 더한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표지 색깔이고요(웃음). 저희가 1년에 6권씩 나오니까 한 해는 핑크 등 레드톤 6권, 그 다음 해는 초록과 파랑 6권 이런 식으로 꽂아놓으면 구분이 더 잘 되겠지 하는 바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라는 장르가 내연이든 외연이든 문학장르 안에서 확장의 기능이 있기에 그 의미를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 편집위원분들의 최소 분량 단편은 제가 은연중에 툭 던져본 의견이었어요. 세 분은 작품을 써야 하는 입장이니 탐탁지 않겠지만 저는 안 써도 되니 해 보자고 주장했죠.”(다)

“한국식 단편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방식이에요. 문예지를 위해 규격화되어 있죠. 한국문학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도 장르나 분량 문제거든요. 100매 안팎이 어떻게 단편이에요. 그렇다면 10~30매 분량으로 확 줄여서 보편적 의미의 단편소설을 활성화시키고 싶은 의도가 있었어요.”(가)

 

백다흠 편집장은 “악스트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 1년간 이미지와 텍스트, 장르와 타 장르의 결합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 앞으로의 1년은 해외문학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이건 제 욕심인데 상업잡지의 길을 가고 싶어요. 문학잡지라는 게 아주 작은 규모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고 있잖아요. 다른 잡지처럼 총판을 하고 외형적인 유통망을 구축할 수 있는데 말이죠.” 1년에 꼭 여섯 걸음씩 진보할 수 있다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그들의 바람은 그만큼 현실이 되어있지 않을까. 아니, 그럴 수 있기를 응원한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ㆍ악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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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이야기에 천착하는 기자. 사람과 세상을 잇는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 중앙SUNDAY 문화부에서 영화와 문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