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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YO? 난 너네보다 한참 위… 내게 부족한 건 오직 머니"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6. 8. 10:47
"YO? 난 너네보다 한참 위… 내게 부족한 건 오직 머니"

입력 : 2016.06.08 03:00

[힙합 경연프로 '쇼미더머니5'서 10~20대의 욕망·현실을 보다]

참가자들, 자신이 쓴 랩 가사 '니 돈 니 마음 싹 훔치지' 등으로
부·출세 욕망 가감없이 드러내 "현실서 느낀 좌절, 랩 통해 반발"

힙합 음악은 지금 시대의 로큰롤이다. 한때 청년 문화의 상징이자 10~20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담았던 로큰롤은 적어도 한국에선 힙합에 그 자리를 내주는 중이다.

힙합 유행을 불러온 주역 중 하나가 케이블 엠넷의 힙합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다. 현재 시즌5가 방영 중이다. 시청률은 2.3%(TNMS)지만, IPTV에선 MBC '무한도전'에 이어 둘째로 '다시보기'가 많은 예능(올레TV기준)이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이 프로그램 동영상 총 조회 수는 2500만회를 넘겼다. 젊은 층이 많이 본다는 얘기다.

힙합 음악의 핵심은 랩이라고 부르는 가사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율과 각운에 맞춰서 쓴 랩의 내용이 음악의 완성도를 판가름 짓는다. 다른 장르와 달리 힙합은 욕설과 비속어도 서슴지 않고, 속물 같은 욕망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특징. 이 때문에 힙합 음악을 즐기는 10~20대의 현실과 욕망을 솔직하게 반영한 음악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번 '쇼미더머니5'에서 씨잼, 비와이, 레디 등 화제가 된 출연자 래퍼 9명이 쓴 11편의 랩을 통해 힙합이 노래하는 10~20대의 욕망과 현실을 들여다봤다.

◇좌절과 자기 과시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래퍼들의 랩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코드는 좌절과 그에 대한 반발로서 자기 과시다. 방송에서 인기를 끈 출연자 중에는 "공부를 못해서 몸으로 때우는 거지 뭐" "맘고생하고 밤새 울었었던 그날을 난 기억해 압구정 지하실 골방"처럼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주위에서 무시당한 경험 등이 녹아있는 랩을 한 이들이 많았다. 힙합 음악이 미국에서 차별받는 흑인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어느 정도 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다.

10~20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힙합 경연프로그램‘쇼미더머니’에 나온 래퍼 씨잼(왼쪽)이나 슈퍼비 등 출연자는 돈과 출세 등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랩 가사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0~20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힙합 경연프로그램‘쇼미더머니’에 나온 래퍼 씨잼(왼쪽)이나 슈퍼비 등 출연자는 돈과 출세 등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랩 가사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케이블 엠넷 제공

 

또 11편의 랩 모두 두드러지게 자신을 뽐내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난 대표해 한국" "아시아의 별 내겐 내 이름이 챔피언" "점점 화려해지는 나의 이력"같이 유치하게 들리는 가사들은 '너희들은 모르지만 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제작진은 "올해 참가자 중에는 유독 '흙수저'란 단어를 랩에 쓴 사람이 많았다"며 "10~20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과 그에 대한 반발의 통로로 힙합 음악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세 수단으로서의 음악

요즘 10~20대에게 힙합 가수가 되는 것은 아이돌 가수와 함께 출세의 한 수단이다. 학벌, 집안 등 배경 없이 본인 재능만 있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자기 과시와 함께 11편의 랩 모두 어김없이 직접적으로 "내게 부족한 건 오직 머니(money)" "니 돈 니 마음 싹 훔치지"라는 등 돈을 벌고 출세하겠다고 선언한다. 1990년대 10~20대의 우상이었던 서태지나 신해철의 음악에 담겨 있던 사회 비판이나 저항 대신 세속적 욕망을 노래하는 음악이 자리를 대신한 것.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일종의 전통이었던 저항적 청년문화가 IMF를 기점으로 무너진 이후에 자라난 지금의 10~20대들이 체험한 건 극한의 생존 경쟁과 점점 재산을 기준으로 고착화되는 한국 사회"라며 "'쇼미더머니'가 보여주는 힙합은 바로 그런 지금 청춘들의 불안과 욕망을 가장 거리낌 없이 노골적으로 대변하면서 그들의 호응을 얻는다"고 말했다.

흑인음악 전문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요즘 힙합 래퍼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경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힙합 음악의 진입 장벽은 아이돌 가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힙합 음악엔 기획사에서 주도하는 강도 높은 트레이닝과 연습생 간 치열한 경쟁이 없다. 도끼나 빈지노 등 성공한 래퍼들이 1년에 수억원씩 번다는 뉴스도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강 편집장은 "힙합 래퍼 중에도 성공하는 건 극소수일 뿐"이라며 "미국 힙합에서 물질적인 부를 과시하는 가사가 나온 것은 인종차별 때문에 계층 상승의 기회가 막혔던 청년들이 음악을 통해 이를 극복한 흑인 사회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한국에선 이에 대한 이해는 거세된 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경향이 심해서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