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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神이 될 것인가, 무용지물로 멸종할 것인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4. 27. 20:52

"스스로 神이 될 것인가, 무용지물로 멸종할 것인가"

입력 : 2016.04.27 14:17

['사피엔스' 저자 하라리 교수와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대담]
 

어수웅 기자

역사학자와 진화생물학자가 만났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사피엔스'(조현욱 옮김·김영사 刊)의 저자인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유발 하라리(40) 교수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는 통섭(統攝) 학자로 이름난 최재천(62) 국립생태원장이다. '사피엔스'의 원제는 'From Animal to God'. 하이에나처럼 죽은 짐승 골수나 빼어 먹던 미미한 존재가 이제는 유전자 조작과 사이보그 기술로 설계자와 신(神)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는 도발적 역사관이다. '총, 균, 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영미권에서 130만부가,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13만부가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숫자보다 놀라운 대목은 이 소장 역사학자가 책에서 보여주는 박람강기(博覽强記)다. 주 전공인 역사는 물론 유전공학·생물학·인공지능 등 고전부터 최신 과학을 한 두름에 꿰며 최단거리로 달린다.

하라리 교수의 한국 방문은 처음. 방한 당일인 지난 25일 밤,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른 두 르네상스맨이 머리를 맞댔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왼쪽),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조선일보 DB

AI와 자연선택 中

- 유발 하라리
인공적인 산물이 더 우세할 것
우리몸도 인공적으로 바뀔 것

- 최재천
자연선택의 산물이 더 우세할 것
AI보다 AI 만드는 인간이 두려워

현생 인류 멸종: 100년 vs 20만년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지난달 초, 하라리 교수는 "21세기는 현생 인류가 살아가는 마지막 세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대담의 시작은 이 단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진화생물학자로서 100년, 200년은 너무 짧은 시간. 종(種)의 멸종은 그 종의 마지막 개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까지 20만 년은 걸릴 거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AI가 아니라 AI를 만드는 인간이다."(최)

"역사 이래 정치·기술·경제·사회 등 수많은 혁명이 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하나가 있었다. 바로 우리 자신, 인간이다. 하지만 이번 혁명은 다르다. 유전공학·나노기술·사이보그 기술 덕분에 우리 몸과 마음이 변한다. 21세기 경제의 주요 생산물은 우리 몸과 두뇌와 마음이다."(하라리)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라. 암컷만 있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공룡 벨로시랩터. 우리가 아는 생물학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학자 맬컴 박사는 대답한다. '진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게 있다면, 생명은 억제할 수 없다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사피엔스도 방법을 찾을 거다. AI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발명품일 뿐. 나는 자연선택의 산물이 더 우세할 거라고 믿는다."(최)

"미국 전기 기술자 제시 설리번은 2001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그는 생체공학적으로 설계한 기계팔을 사용한다. 버튼이 아니라 생각만으로 조작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유기체가 아닌 무기체 팔이 훨씬 더 강력하다. 2년마다 휴대폰을 갈아치우듯, 우리는 손과 심장을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지금까지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 할 수 있을까."(하라리)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변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능력을
갖춘자는 선택받고
못 갖춘자는 버림받을 것

대량 실업: 잉여 인간 vs 거품 인간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게 새로운 걱정은 아니다. 그리고 그때도 우려했던 대량 실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직업은 사라졌고, 새로운 직업들이 진화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 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가령 가상 세계 설계사 같은 사람들. 그런데 생각해보라. 무인 자동차로 자리를 빼앗긴 40세 택시기사가 가상 세계 설계사로 자신을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이들은 결국 '잉여 인간'이 될 것이다."(하라리)

"농경 시대에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누구 하나 버려져 굶지는 않았다. 또 인간 사회에서 고위 성직자, 랍비, 정치 지도자는 육체노동에서 면제되었다. 로마제국을 떠올려보자. 노예가 모든 일을 했다. 전쟁 승리로 일반인은 할 일이 없었고, 정부는 콜로세움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행복했다. 일이 없다는 게 완전히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최)

"물론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문제는 삶의 의미다. 콜로세움을 말씀하셨는데, 가상현실이나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가 현대의 콜로세움이겠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랄까.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가. 무용한, 무의미한 즐거움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라리)

"당신이 걱정하는 '잉여 인간'이 바로 내 책 '거품 예찬'에서 얘기하는 거품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거품은 현실이며, 바로 그 거품 때문에 자연선택이 가능했고, 그 덕분에 환경에 잘 적응된 종들이 탄생했다. 이것은 일종의 '자연현상'이다. 물론 인권 차원에서 인간 거품에 대한 대책을 당연히 마련해야 한다."(최)

우리는 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AI의 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을 처음 찾은 유발 하라리(오른쪽) 히브리대 교수와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25일 대담에 앞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진한 기자

 

- 유발 하라리
"유전공학 나노기술로 몸·두뇌 변해
역사 이래 처음으로 인간 바뀐다"

- 최재천
"100년, 200년은 너무 짧은 시간
사피엔스 멸종 20만 년은 걸려"

"철학·과학자는 미래 위험 강조
사람들의 현실 안주 경고해야"

2050년, 인류는 무용지물이 될까

 

"19세기 산업혁명은 도시 프롤레타리아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을 낳았다. 21세기는 AI 혁명으로 다시 새로운 계급이 탄생할지 모른다. 이들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사회 번영에 기여하지 못한다. 수십억 명의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게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가 될 거다. 지금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90%는 아무런 쓸모 없는 교육이 될 것이다."(하라리)

"현재 가르치고 있는 것이 50년쯤 뒤에는 아무 쓸모 없는 지식이 될 거라는 데 100%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과 일자리에 대해 다시 정의를 해야 한다. 엄청난 수의 일자리가 AI와 기계에 잠식당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미래를 인간 대(對) 기계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 미래의 상황을 기계와 함께하는 인간들로 만들어야 한다."(최)

 

자연선택 vs 지적 설계

 

"하라리 교수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 단어 선택에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당신은 진화의 주요 원리가 자연선택보다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로 대체됐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말을 부연 설명 없이 하면 창조론자들이 '할렐루야'를 부를 거다."(최)

"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지적 설계'가 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인간이 AI 이후 신이 될 것인지 아니면 멸종할 것인지를 묻는다. 오늘 만남은 지금까지 중국과 대만까지 포함, 수십 번 인터뷰와 대담 중 가장 지적 자극이 풍성한 최고의 인터뷰였다. 감사한다. 과학자, 철학자들은 앞장서서 닥쳐올 위험성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문제는 우리가 AI 이후의 세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진짜 열심히 찾아야 한다."(하라리)

최재천 원장에 대한 인물·인맥 검색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 제공

[하라리의 '르네상스인' 비결]

①스마트폰 끊고  ②매일 2시간씩 명상  ③나만의 질문에 집중하라

 

'사피엔스'를 읽은 독자들이 놀라는 대목이 있다. 하라리 교수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독서가이자 수많은 분야를 뛰어넘는 전방위 학자인가 하는 점이다. 역사학·고인류학·생물학·생태학·유전공학·인지과학·IT….

이 대목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집중할 수 있는가'이다."

겸연쩍어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비결을 일부 공개했다.

첫째,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그는 "이 걸어 다니는 컴퓨터는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했다.

둘째, 하루에 두 시간씩 명상을 한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달은 명상 피정을 한다. 그는 "명상 시간에는 완벽한 고립을 만든다. 이메일도,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고 선택한다. 일상의 다른 분노도 이때 다스린다. "

셋째, 이제 나만의 질문에 집중하고 글을 쓴다. "예전에는 정보 결핍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정보의 홍수가 문제다. 나만의 질문이 있다면, 자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결국 지금 시대에 중요한 것은 모든 걸 끊고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느냐다."

현자(賢者) 같은 답에 한 번 더 물었다. "유명해지면 그게 더 어렵지 않나."

그는 숨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럴수록 집중력이 더 중요하다. 제안의 홍수다. 이걸 해라, 저걸 같이 하자…. 강한 중심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