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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프루스트 "내 인생은 하찮고 내 소설은 사소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3. 8. 14:16

북유럽의 프루스트 "내 인생은 하찮고 내 소설은 사소해"

입력 : 2016.03.07 03:00 | 수정 : 2016.03.07 14:41

- 소설가 크나우스고르 인터뷰
자전 소설 '나의 투쟁' 英美 문단·언론서 찬사 받아
"이념은 없어… 작은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이는 소설 쓰려 했다"

"노르웨이 소설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미국의 문학 권력을 사로잡았다."(뉴욕 타임스)

"크나우스고르의 소설 '나의 투쟁'은 무기교(無技巧)의 미학적 가치를 기리는 문학의 기념비가 됐다."(파이낸셜 타임스)

요즘 영미 문단과 언론에서 '크나우스고르' 현상이 일고 있다. 크나우스고르(48)가 자서전처럼 쓴 소설 '나의 투쟁'이 영미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3600쪽 분량의 6권짜리 자전 (自傳) 소설 '나의 투쟁' 영어 번역본을 2012년부터 한 권씩 내면서부터다.

스웨덴의 소도시 이스타드에 사는 크나우스고르.  

 

스웨덴의 소도시 이스타드에 사는 크나우스고르. 그는“네 자녀를 키운다”며“북유럽에선 교육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네 아이를 둔 아빠가 꽤 있다”고 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제공

 

크나우스고르는 회고록과 소설의 경계를 허물어 문학의 새 지평을 연 '21세기 문학의 개척자'로 꼽힌다. '나의 투쟁'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삶을 실제 일어난 대로 고백한 소설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플롯과 상징, 반전(反轉)을 갖춘 허구인 반면 '나의 투쟁'은 그런 소설적 장치를 버린 채 작가와 주변 인물을 실명으로 등장시킨다. 작가가 일상생활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해 때때로 지루하지만, 예술과 문명에 관한 에세이를 자주 등장시켜 독자를 사로잡는다.

크나우스고르는 스웨덴 작가 린다 보스트룀과 결혼해 스웨덴의 남부 도시 이스타드에서 네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다. 소설 '나의 투쟁'은 첫 권이 우리말로 번역돼 연초에 한길사에서 나왔다.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크나우스고르는 지난달 29일 이스타드 기차역 부근의 카페에서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소설 제목이 '나의 투쟁'이다.

"다 알다시피 히틀러의 자서전 제목에서 따왔다. 히틀러의 자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가 쓴 '나의 투쟁'은 거대한 이념이 아니라 매일 매일 벌어지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을 다뤘다."

―왜 일상사에 초점을 둔 소설을 썼나.

"내 인생이 하찮고 내 소설은 사소한 것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현존하는 것들에 대해 썼다."

―당신은 "어떤 소설가는 철학의 관점에서 창작을 시작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출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념과 인생론으로 소설을 쓰진 않는다. 작은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소설을 쓰고자 한다. 구약 성서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좋은 본보기다. 짧은 분량이지만 숭고하고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는가."

―비평가들은 당신 소설을 가리켜 전통적 소설의 규칙을 파괴한 '반(反)소설적 소설'이라고 한다.

"기존 소설들은 엇비슷하다. 작가는 늘 새로운 형식을 찾아 나선다. 나는 100% 실화로만 된 리얼리즘 소설을 추구했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세부 묘사만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일기처럼 매우 작은 삶의 반복이다. 나는 극화(劇化)하거나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신의 소설은 요란한 사건 대신 사색적인 에세이로 읽을 거리를 준다. 에세이와 픽션의 차이는 무엇인가.

"에세이는 매우 안정된 것이지만, 픽션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스토리가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쓸 때 에세이를 섞어 쓴다. 쇼핑을 소재로 했다가 문학과 예술에 관한 생각을 내놓기도 한다. 내 글은 고상함과 저속함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곡선을 그린다."

―지난해 독일 일간지 디 벨트가 주는 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연설이 '소설의 윤리'에 관한 것이라고 들었다. 무슨 말을 했나.

"오늘날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난민 사태를 거론했다.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난민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그 숫자 집계에만 급급했다. 그러다가 익사한 소년의 사진이 충격을 줬다. 그제서야 나를 비롯한 유럽인들이 난민을 집단이 아닌 구체적 개인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소설가의 시점은 이처럼 개인을 향해야 한다."

―당신의 소설은 과거 회상으로 전개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교된다. 유럽에서 당신을 '노르웨이의 프루스트'로 부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당혹스럽다. 프루스트는 최고 소설가다. 그와 비교하다니. 나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탐독했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정교하고 우아하고 복잡하다. 거기에 비해 내 소설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나.

"아직 가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이 생각난다. 매우 현대적인 국가라는 이미지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한국 문학 작품 중에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인이 쓴 책을 봤다. 그 시인이 지금껏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북유럽에 소개된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萬人譜)'로 추정된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Karl Ove Knausgaard·48)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베르겐대학에서 예술과 문학을 전공했다. 1998년 첫 장편소설 '세상 밖에서'로 문예비평가상을 받았다. 2009~2011년에 낸 자전 소설 '나의 투쟁'(전 6권)은 인구 500만명인 노르웨이에서 5 0만부 넘게 팔렸고, 30여개국에서 번역됐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10만부 넘게 팔렸다.

그러나 알코올중독으로 급사한 부친을 비롯, 타인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그려 논란이 일었다. 분개한 부계(父系) 친척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작가와 절연했다고 한다. 지난해 독일 벨트문학상을 받았고,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문학의 혁신가'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