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화가 오윤(1946~86)은 그 대표 이름이다. 1980년대 불타올랐던 한국 현실주의 미술 가운데서도 그의 위치는 특별하다. 현실주의 미술의 한국적 개념인 ‘민중미술’은 오윤의 이른 죽음과 더불어 역사가 됐지만 동료와 후배는 그 역사를 지키지 못했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억압받아온 미술과 사회,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풀어낸 80년대 리얼리즘 미술 운동은 뜨겁게 타오른 10년을 뒤로 하고 자진해버렸다.
지난 16일 서울옥션이 연 제138회 경매에 오윤의 목판화 ‘칼노래’가 나왔다. 마흔 살 짧은 삶에 그가 남긴 작품은 100여 점뿐이어서 희귀성으로 이미 미술시장에서 주목 받는 중이다. 이날도 추정가 1500만 원에서 시작했지만 3배를 웃도는 4800만 원에 낙찰됐다. 내년이 30주기임을 생각해보면 과작의 오윤 유작 하나하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 예상된다.
오윤은 마흔 살에 요절함으로써 ‘미완의 작가’로 남았다. 69년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최초로 현실 비판을 시도한 ‘현실 동인’이란 기록도 남겼다. 10년 뒤 그는 그 정신을 이은 ‘현실과 발언’ 창립 작가로 돌아온다. 탈춤, 도깨비 같은 우리 전통 연희와 풍속을 작품 속에 담아내면서 풍자와 해학을 에둘러 민족성을 강조했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노동자와 농민은 강파르지 않았다. 그들의 고운 내면을 드러낸 인물상은 삶의 고통이 또한 신명과 통함을 보여준다. 오윤은 평범한 이웃이 역사와 현실에서 당한 한 맺힘을 ‘덩더꿍’ 신명으로 풀어버린다.
‘칼노래’는 김지하 시인이 85년 펴낸 산문집 『남녘땅 뱃노래』를 위한 삽화 중 한 점이었다. 수평으로 치켜든 칼, 치뜬 눈, 들어 올린 발 등 전체 구도에서 뿜어 나오는 매서운 기운이 긴장감 넘친다. 김 시인은 이를 “신기가 가득 찬 민초들의 생명력 있는 기를 반영한 것”이라 설명했다. 칼칼한 칼 맛이 만들어낸 강직하고 찰진 선의 목판화는 30년이 흘렀어도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액과 살을 단숨에 베어버릴 듯 인물의 결기가 비장하다.
2006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오윤의 20주기 회고전 제목은 ‘낮도깨비 신명마당’이었다. 스스로 80년대 한국의 ‘낮도깨비’이고자 했던 오윤은 이제 역사이면서 현실이 됐다. 그는 생전에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숙제였다”고 했다. “왜 우리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쉽게 결론을 끄집어내면서도 그것을 미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 같이 여기고 있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알량한 미술 지식일랑 다 던져버리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뜨거운 숨결만으로 즐거운 그의 ‘칼노래’ 앞에서 민중미술의 메아리를 듣는다. 미술이 이만큼 우리 마음에 가까이 온 적이 있었을까.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