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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샤의 것과 문학적인 것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21. 18:02

 

가이샤의 것과 문학적인 것

이민호 (시인, 문학평론가)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깊은 뜻을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정교분리의 메시지로 쓰곤 한다. 2015년 한국문학은 말의 올무에 걸려 허우적댔다. 예수에게 던져진 피할 수 없는 물음처럼 “표절이냐? 아니냐?” 작가들을 줄 세우게 했다. 표절이다 말하면 문학권력에 대거리하는 무리로 매장당할 것이고 표절이 아니다 말하면 문학권력에 아부하는 무리로 매도당할 처지에 놓였다. 말의 덫을 놓은 이는 작가 신경숙이다. 1999년 소설 「딸기밭」이 안승준의 유고집을 표절한 이후 2015년에 이르러 다시 표절의혹이 제기되면서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문단 전체를 옥죄는 계륵이 되었다. 그래서 2015년 한국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되묻고 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이 6월 16일 『허핑턴포스트』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란 제목으로 기고문을 싣는다. 1996년 발표한 신경숙의 단편 소설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부분 표절했다는 문제 제기였다. 2000년에도 비평계에서 설왕설래했던 표절의혹이 왜 올해 대두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순식간에 한국문학을 블랙홀로 빨아들이고 말았다.
몇 차례 공방이 오갔다. 대부분 이런 의혹 제기는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전설」을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묶어 출간했던 창비의 안일한 해명이 불을 지폈다.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의 오만한 대처는 문학권력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문학 공간의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사과도 반성도 고백도 아닌 신경숙의 답변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발언이었다. 이것으로 제도권 문학이 안간힘으로 붙잡으려 했던 신경숙은 독자들의 손에서 놓여졌다. 나아가 한국문학도 독자들의 외면에 직면한다.  

 

이후 6월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 권력의 현재’를 내걸고 토론회를 마련했다. 자연스럽게 신경숙 표절 사태가 한국문학계의 ‘문학권력’ 논란으로 옮겨가는 자리였다. 신경숙의 작품을 주로 출판했던 창비·문학동네·문지의 문학권력이 핵심 배경으로 제기되었다. 신경숙의 등장과 부각과 풍미는 그동안 한국문학의 문학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가 상업성에 매몰되는 과정에서 배태된 결과로 진단하였다. 그러므로 표절에 이를 수밖에 없는 소설 창작기계로서 신경숙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이다. 현실과 독자와 유리된 소위 ‘골방문학’의 실체라는 견해가 주목을 끌었다. 이후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주최한 2차 토론회가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7월 15일 개최되었다. 출구를 찾으려는 행보로 보였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표절의 주인공이나 배후가 누구냐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도 역시 독자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혹은 무언가 초점 잃은 언사들이 난무할 뿐이었다.

 

연이어 소설가 박민규의 표절 논란이 대두되었다. 데뷔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단편 「낮잠」이 인터넷 게시판과 일본 만화를 표절했다는 주장이었다. 『월간중앙』에 제기된 표절의혹은 신경숙 표절에 문제를 제기했던 비평가들도 가세하여 쟁점화되었다. 그러나 다분히 저널리즘의 기획이란 의혹 때문인지 아니면 신경숙 표절 사태의 파장이 너무 컸던 탓인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은 이미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여겼고 한국문학의 실체라 여기는 듯 무관심했다.
신경숙 표절 사태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거대한 태풍으로 변화된 데는 SNS의 새로운 소통체계가 일조하였다. 문학제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일들을 독자도 다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예지 공간을 넘어 작가도 비평가도 출판인도 독자도 함께하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누가 여론을 주도할 수 없이 백가쟁명식으로 말들이 쏟아졌다. 이에 다급히 문예지들은 ‘표절 이후’를 진단하는 특집을 마련하여 ‘문학권력’ 논의를 이어갔다. 대표적으로 『창작과비평』 가을호는 긴급기획물로 「표절 문제와 문화 권력」을 싣는다. 정은경, 김대성, 윤지관의 서로 다른 입장을 병행시켜 놓았을 뿐 창비의 어정쩡한 태도에 논란은 여전했다. 그것이 겨울호에 「한국의 문학, 이제 어디로」라는 보다 침울한 특집을 낳는다. 김경연, 김남일, 소영현, 윤지관, 강경석 등의 좌담과 염종선, 백지연의 표절에 대해 본격적인 언급이 이루어진다. 더불어 백낙청의 퇴진사와 같은 문학의 도와 도덕을 운위하는 글로 맺는다. 『문학동네』 가을호는 「비평 표절 권력」을 특집으로 김병익, 도정일, 최원식의 비평과 장은수의 글을 실었다. 더불어 「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작가들의 시선으로」를 주제로 문학권력에 대해 김도언, 손아람, 이기호, 장강명, 신형철의 좌담을 마련했다. 『문학과사회』 가을호에도 이런 취지에서 「표절 사태 이후의 한국 문학」이라는 특집으로 개최된 좌담을 게재했다. 김형중, 김영찬, 황호덕, 소영현, 강동호가 참여하여 신경숙 개인의 문제대응에 대해 다루었다. 『실천문학』은 가을호에 김명인, 정문순의 글을 실어 직정적인 소회를 담는다. 아울러 두 개의 좌담을 실어 표절의 확장 영역을 점검한다. 첫째는 「한국문학의 폐쇄성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박민정, 손아람, 최정화, 서효인, 이만영이 참여했고, 둘째는 「문단 외부에서 본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화 권력 논쟁」이라는 주제로 문단 밖의 시선을 담았다. 이 좌담에 문학 담당 기자들이 참여했다. 『오늘의문예비평』은 가을호에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겨울호에서는 「신경숙 논란 이후의 비평」을 특집으로 마련하여 문학제도 내에서 비평의 역할을 되짚었다. 특별히 ‘지역문학’의 주변성을 중심에 놓고 표절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일련의 반응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표절 논의의 중심을 표절한 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표절당한 자에 대해 별로 언급이 없다. 이 자체가 한국문학의 중심 사유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일을여는작가』 하반기 특집 「표절 그 이후」는 주변적 시각을 담았다. '기획1'에서 김미정, 전동진, 노혜경, 남기택, 최강민의 글을 실어 표절 사태 이후 출구전략을 모색했다. '기획2'에서는 이민호, 허경의 글을 통해 표절 당한 주체 ‘안승준’에 대해 조명했다. ‘기획3’에서는 김병호, 김준현, 나무의 글을 실어 문학과 예술현장에서 작가들이 겪는 영향의 불안을 담았다.

표절 그 이후의 결과는 문학 내부에서만 요동쳤던 것은 아니다. 문학 밖 독자들의 반응은 뜨겁게 냉담했다. 그만큼 올해 출판시장은 소설 분야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발표에 따르면 인문학 분야가 약진한 것에 비해 소설 분야는 전년 대비 16.4%포인트 감소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 내에서 소설 분야는 전년 대비 7종이 감소하여 20종에 불과했다. 맞물려 민음사가 발행하는 문학지 『세계의 문학』이 지령 158호를 끝으로, 장애인 문학을 대변하는 『솟대문학』이 100호를 끝으로 발행을 중단했다. 한국문학의 어두운 현실이기도 하며 동시에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2015년 소설은 주요 작가들이 작품집 출판을 미루는 형국으로 출간활동이 위축됐다. 김숨의 「뿌리이야기」가 독자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소설 「뿌리이야기」는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우리 사회 변두리 인생의 삶을 환상적으로 알레고리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런 와중에 김채원의 「쪽배의 노래」는 한국소설의 주류로서 흔들림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전성태의 「두번의 자화상」은 성숙한 작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정찬의 「길, 저쪽」은 인간 본질에 대해 지속적인 물음을 던졌고, 김중혁의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훨씬 냉소적인 표정을 보였으며, 김종옥의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여전히 현실에서 먼 거리를 두었다. 이외에도 권여선의 「토우의 집」, 김인숙의 「모든 빛깔들의 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강윤화의 「목숨전문점」, 김성중의 「국경시장」,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등의 소설집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황정은의 「복경」은 ‘갑질’과 ‘감정노동’ 등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세월호 등 사회적으로 삶을 압도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다시 접근하는 태도에서, 이승우의 「신의 말을 듣다」는 사회 지식층의 무기력을 죄의식의 차원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김금희의 「세실리아」는 핍진성에서 조명받았다. 무엇보다도 이인휘의 소설 복귀가 신선했다. 그에게 꼬리표처럼 달린 ‘노동’을 다시 세우고 나왔다. 「공장의 불빛」과 「시인, 강이산」에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인휘의 소설이 유효했다.

 

2015년 시는 신경숙 표절 사태와 상관없이 쓰였다. 그만큼 시는 문학권력에서 이미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본래 시의 본질적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무엇보다도 시의 힘을 보여준 시인은 백무산이다. 백무산의 「폐허를 인양하다」는 항심이 무엇인지 공유하는 시집이다. 이에 못지않게 문인수의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는 끊임없는 성찰의 경지를 내보였다. 그런 측면에서 임동확의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도 5.18 광주에서 잃었던 길을 지금도 추구하고 있다. 이런 행렬에 마종기의 「마흔두 개의 초록」, 김사인의 「어린 당나귀 곁에서」, 고형렬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거울이다」, 문태준의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송재학의 「검은 색」, 김희업의 「비의 목록」, 박후기의 「격렬비열도」등이 나란하다. 더불어 첫 시집을 낸 박소란의 「심장에 가까운 말」, 안철주의 「다음 생에 할 일들」, 박지혜의 「햇빛」, 박시우의 「국수 삶는 저녁」은 독자에게 다가가는 시선의 진중함으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등단 30여년 만에 첫 시집을 묶은 박시우의 시들이 시의 위의를 담았다. 그 외 윤의섭의 「묵시록」, 원구식의 「비」, 유형진의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 정영의 「화류」, 박장호의 「포유류의 사랑」, 이제니의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기혁의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 최정례의 「개천은 용의 홈타운」, 이선욱의 「탁, 탁, 탁」, 함기석의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이기성의 「채식주의자의 식탁」, 이하석의 「연애 間」, 황병승, 김현의 「글로리홀」, 안희연의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등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반응했던 한국문학의 참담함이 표절사태에 가려질 수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작가회의는 4월 15일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를 열었고 ‘세월호 참사 500일을 함께 하는 작가들의 행동’이라는 주제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회와 발언을 짧은 글로 적어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올려 망각의 어둠을 지우려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304낭독회’도 매월 개최되었다.

 

올해에도 문학상이 풍성했다. 기억할 만한 상을 뽑자면 우선 한국작가회의 소속 젊은 작가들의 모임인 ‘젊은작가포럼’에서 주는 제14회 아름다운작가상 수상자로 박남준 시인이 선정됐다. 그에게 주어진 상찬은 ‘욕망을 내려놓으려는 치열한 고뇌와 성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말에 담았다. 올해 신동엽문학상은 박소란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과 김금희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 선정됐다. 박소란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개성적 어법으로 끌어안았다.”는 뜻에서, 김금희는 “변두리 삶의 세목을 통해 장소성의 의미를 일깨웠다.”는 면에서 수상하였다. 제18회 동리문학상은 장편소설 「토우의 집」을 발표한 권여선이, 8회째를 맞는 목월문학상은 시집 「응」을 펴낸 문정희가 수상했다. 제8회 이상시문학상은 전기철이 「삼천포」외 4편으로 수상했다. 아울러 김숨이 소설 「뿌리 이야기」로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뿌리 뽑힌 삶에 대해 응시했던 연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김사인의 만해문학상 수상 고사는 한국문학에서 상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으로 강소천, 곽종원, 박목월, 서정주, 임순득, 임옥인, 함세덕, 황순원 등이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이들을 기념하는 ‘2015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진행했다. 더불어 타개한 문인의 소식도 들렸다. 시 「직녀에게」를 남긴 문병란 시인이다.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시인은 저항과 서정의 세계를 한국문학에 새겼다.

가이샤는 권력의 화신이다. 그동안 한국문학이 가이샤의 것을 두고 이전투구 하였다면 그것은 분명 비문학적이다. 표절은 한국근대문학의 열등감의 핵심이다. 이를 두고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그렇다면 독자들이 한국 문학장에 던지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다.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그리고 ‘오로지 문학은 문학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웹진아르코’

[기사입력 :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