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 할 시간인데, 계속 속이 쓰리다. 독한 약을 3주째 먹었더니 이렇게 속이 자주 쓰린다. 생각해보니 저녁도 일찍 먹었다. 난데없이 피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거리가 떠오르니 금세 군침이 돈다. 아프다고 투정이나 할 겸, 도반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자가 먹고 싶다는 둥, 진짜 오랫동안 피자를 못 먹어본 것 같다는 둥 하면서.

잘 밤에 난데없는 내 투정을 도반스님은 잘도 받아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본인 신세 타령을 시작했다. 절에 일하시던 공양주보살님이 그만두고 나갔단다. 그 바람에 당장 내일 아침부터 새벽에 도량석(도량을 돌며 염불하는 의식)하고 예불하고 밥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울만 되면 갈라지고 터지는 주부습진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열 손가락이 다 터지고 피가 난다며 약 바르고 장갑까지 끼고 나서야 잠자리에 든단다. 듣고 보니 딱한 일이다. 에고고, 도리어 내가 도반스님을 위로해야 할 판이다.

“어떻게 하지? 스님, 힘들겠네. 그래도 힘내라. 아무리 주부습진이 아프고 짜증나도 어디 대상포진만 하겠어? 난 방송·강의만 아니면 입원해야 될 지경이야. 그러니까 아플 때마다 내 생각 하고 기운 내셔. 난 지금 3주째 대상포진이잖아. 내가 웃으니까 그렇지 정말 아프다니까. 자, 이제 선택해 봐. 나처럼 대상포진 앓을래? 아님 그냥 밥하고 주부습진 앓을래?”

도반스님은 그야말로 빵 터졌는지, 깔깔 대며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투정 안 할게. 난 그냥 주부습진 할래.”

위로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아픈 사람보다 더한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만나야 사람들은 다시 일어날 힘을 얻으니까.

인간은 누구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저마다 독특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헛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상대방의 고통 속에서 희한하게도 잃어버렸던 자신의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 부족함 없이 편안하게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전전긍긍하며 애태우고 있을 때, 나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다며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치민다. 실제로 우리 사회가 그런 관계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 싶다. 너나 할 것 없이 화가 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아프다.

간혹 어르신들이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하는 말씀이 요즘은 부쩍 이해가 간다.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구나. 예전엔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이젠 지금의 나보다 아픈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들’이다.

서로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인내하는 걸 보면, 이것이 바로 인연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교경전 속에 있는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삶 속의 인연법 말이다. 나는 상대의 원인과 조건이 되고, 상대는 나의 원인과 조건이 되어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잘 사는 사람끼리만 살 순 없다. 못 사는 사람끼리만 사는 것도 힘들다. 이제 연말이 다가온다. 우리 서로에게서 존재 이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그럼 어려운 이들의 고통에 그렇게 무덤덤하진 않을 테니.

 

원영 스님
metta4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