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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싫은 사람 詩 쓸 땐 힘들었어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5. 13:17

"사실 싫은 사람 詩 쓸 땐 힘들었어요"

입력 : 2015.12.02 03:00

동료 130명 관찰해 한 편씩 써 시집 낸 서울 노원구청 홍만희

"당신은 한 송이 꽃입니다."

작년 이맘때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전한(27)씨는 이렇게 시작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전씨에게 영감을 얻어 시(詩)를 썼는데 실명(實名)을 사용해 시집을 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하는 편지였다. 보낸 사람은 '홍만희'.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전씨는 "저를 어떻게 아시느냐"고 물었고, "1년 전 구청 워크숍에서 대각선 쪽에 앉아 밥을 먹은 사람"이라는 답이 왔다.

서울 노원구청 홍만희(앞줄 오른쪽서 둘째)씨가 자신이 낸 시집에 등장한 동료들과 책을 펴보이고 있다. 

 

서울 노원구청 홍만희(앞줄 오른쪽서 둘째)씨가 자신이 낸 시집에 등장한 동료들과 책을 펴보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전씨는 "당시 80명 넘게 참석한 데다 홍씨와 말 한마디 못 해봤는데 나를 보고 시를 썼다니 어리둥절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홍씨는 전씨에게 "잔뜩 움츠리고 눈치 보던 신입 공무원 모습이 '꽃샘추위 속 울음보 터뜨린 꽃망울' 같아 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홍씨에게 이런 메일을 받은 노원구 공무원은 130여 명이 더 있다. 이들이 홍씨가 지난 20일 낸 시집 '책 한 권'에 수록된 시들의 주인공이다. 2009년 '서정문학'을 통해 등단한 노원구청 민원여권과 홍만희(58) 팀장이 4년간 동료를 관찰해 쓴 시들이다. 홍씨는 구의회에서 근무하는 서예가 권순호씨에게 부탁해 시를 일일이 붓글씨로 써서 주인공들에게 건넸다. "시를 본 첫 반응은 비슷해요.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어?'. 자신도 몰랐던 자기 모습에 다들 놀랍니다."

28년간 노원구에서 일해 온 홍씨가 동료를 소재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2010년이다. 야근하다가 우연히 본 옆 부서 여직원의 모습 때문이었다. 저녁에 혼자 사무실에서 책을 보던 그가 책장 넘기는 소리는 파도 소리처럼, 빠른 손놀림은 뛰어노는 돌고래처럼 보였다고 한다. 평소 내성적인 그가 그때만은 활동적으로 보였다. 홍씨는 "바쁘다고 주변에 무관심한 게 우리 아니냐"며 "관심 갖고 동료들을 보니 의외의 모습들이 보였다"고 했다.

이후 홍씨의 눈에는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 화단의 잡초를 말없이 뽑는 사람 등이 들어왔다. 눈인사만 하던 이에 게 일부러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는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시를 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나쁘다고 쓰면 시가 아니잖아요. 일부러 좋은 면을 보려고 애쓰는데 갑자기 그 사람 뒷모습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구청의 한 직원은 "평생 시는 거들떠보지 않던 내가 이 시집은 끝까지 다 읽었다"며 "모두가 내 주변 사람 얘기여선지 그냥 다 읽히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