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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공직의 제1 덕목은 ‘至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30. 13:59

게재 일자 : 2015년 10월 30일(金)
공직의 제1 덕목은 ‘至誠’
 
김형국 / 서울대 명예교수

신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지면은 부고(訃告) 기사.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주 한 쪽 고정란도 꾸린다. 명인의 탄생은 몰라도 남다른 행보를 보여준 이의 타계는 세상이 기억하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지난 여름에 백한 살로 타계한 프랜시스 켈시를 다룬 워싱턴 포스트 기사도 감동이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연구원 켈시는 희대의 약화(藥禍)가 되고만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판매를 저지시킨 주무였다. 임신부 입덧을 줄여준다며 1957년에 서독에서 출시된 뒤 유럽 등지에서 전대미문의 기형아가 무려 만 명 이상 태어났다. 변형 발가락은 약과. 사지가 없든지 사지가 있어도 짧거나 손·발가락이 모두 없는 불구였다. 미국 국적도 얻었던 캐나다 사람 켈시가 1960년에 FDA 일자리를 얻고 처음 맡았던 과제가 문제 약의 안전성 검사였다. 담당 부서는 일곱 명 정규직에 네 명 시간제 의사가 전부인 열악함 속에서 그 검증을 제약사에게 거듭 요구하던 사이, 1962년에 사태는 약성(藥性)이 태반 보호벽 침투에 따른 부작용임이 밝혀졌다. 언론은 그를 영웅이라 칭송했고, 의회는 안전성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영예 연방공무원으로 뽑혀 표창을 받으려고 케네디 대통령에게 다가선 정장 차림의 켈시는 사진만 봐도 우아한 기품 그 자체였다. 천형(天刑)의 출산을 막았던 지성(至誠)이었기에 은택(恩澤)은 구십 살까지 현직에 머물고도 남았다.

빼어난 공직을 만나면, 2013년 10월 말 일이지만 외교부의 독도 영상 파문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려던 홈페이지에 일본 자료를 무단 사용했고 이를 그쪽이 항의하자 황급히 삭제한 사건이었다.

그때 러·일 간 지상과 바다의 싸움은 나라 흥망을 건 대결이었다. 중국 뤼순항의 러시아 극동함대 출입을 일본이 봉쇄하자 급거 발트함대를 1904년 10월 블라디보스토크로 발진시켰다. 경로에 대해 촉각을 세운 일본은 일단 쓰시마 쪽이라고 전제하고 예상 항로를 관측하기 좋은 독도를 이듬해 2월 지방정부로 하여금 편입하게 하는 꼼수를 부렸고, 함대를 대한제국의 승인도 없이 진해만에 숨겼다. 수심도 깊고 바람도 잔잔한 이웃 마산만을 피한 것은 그곳 러시아 영사관을 통해 일본 군함이 탄로 날까 싶어서였다.

러시아의 남진이 달갑지 않던 영국은 제국의 옛 근거지를 통해 석탄 보급 거절 등의 훼방을 놓았고, 항적(航跡) 정보도 일본에 넘겼다. 대양을 지나는 뱃길을 알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 점. 타국 종군기자 등 누구도 접근이 불가능했으니, NHK 인기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에 나온 군함 영상이 일제 것이 아닌지 당연히 확인했어야 했다.

혹시나 했던 홋카이도 쪽 경유 대신, 발트함대는 1905년 5월 말 쓰시마 근해로 다가왔다. 진해만과 쓰시마 인공 운하에서 출격한 일본 함대는 반년도 넘는 항해로 지칠 대로 지친 러 함대를 독도 방향의 동해 바다를 따라가며 궤멸시켰다. 압승은 바로 1905년 말 조선 병탄의 전주곡 을사늑약으로 이어졌다.

이런 역사적 굴곡의 독도가 일본 땅이란 고집은 한국인의 속을 뒤집어놓는 짓. 오히려 주장을 강화하자 급기야 2006년, 외교부는 일본을 다룬 적 있던 고위직을 모아 대책팀도 만들었는데, 사이트 제작자는 손쉽게 일본 쪽 영상을 도용했다. 낫토를 가지고 청국장을 끓인 셈이었다. 대책팀은 외주 영상물을 점검 또 점검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지성이 모자란 인사만 모였던 격이었다. 문득 어릴 때 듣던 자조의 뜻으로 어른들이 따라 말하던, 조선 사람에게 내뱉던 일본 사람의 욕지거리 “센진(鮮人), 시요(仕樣)가나이!”가 생각났다. 팀원들이 일본 전문이라 했으니 “조선놈, 어쩔 도리가 없네!” 이 말뜻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국내 문제는 실수가 있더라도 늘 살아남을 수 있지만, 대외정책에서 실수를 범하면 죽을 수 있다.” 누구의 경구가 아니라, 지도층의 자충수로 왜란도 호란도 당했던 한민족의 뼈저린 과거였다. 외교 현안 하나인 독도 영유권을 놓고 시요가나이란 말을 듣게 된 것은 외교팀만이 아니다. 한국인이 싸잡아 다시 들은 셈이었다.

지성이 없는 공직도 있지만, 우리의 압축 성장은 전문성을 갖춘 관료의 치열한 헌신도 한몫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공해 유발 산업 대신, 환경 보존형 발전도 가능함을 보여준 순천만 모델은 담당 공직의 창의와 열정의 산물이었다.

순천만은 김승옥의 유명 소설 ‘무진기행’의 현장이다. “얕은 바다를 몇 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갯벌 천지의 안개나루터 무진(霧津)이다. 이곳이 2006년,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유엔 지정의 우리나라 1호 람사르 습지가 됐다. 이를 생태공원으로 다듬자면 산재했던 장어집도 옮겨야 했고, 겨울 철새 흑두루미를 위해 농수(農水) 공급용 전봇대도 없애야 했다. 일대 정비를 위해 주변을 수용하던 주무 공직은 기득권자와 그들이 산 주먹들에게 멱살도 잡혔다.

신고(辛苦) 끝에 드디어 순천만이 생태 명소로 번듯해지자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주말의 음식·숙박업소는 예약 없인 이용이 어렵다. 이렇게 순천시에 안겨준 부가가치는 1000억 원이 넘는다. 이웃 광양시가 포스코 공장에서 얻는 소득 효과보다 40%나 더 높다. 이어 2013년엔 국제정원박람회도 개최했고, 2015년엔 국가정원 1호로 지정받았다. 지방 개발의 세계적 모범 사례로 우뚝 솟은 것이다.

공직이 철밥통인가, 영예의 헌신인가. 백성들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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