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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456억·223억 들인 지자체 행사, 요금 수익은 '제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9. 25. 21:47
지방부채 100조원

456억·223억 들인 지자체 행사, 요금 수익은 '제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100조원이 넘는 실질적 부채를 지고 있지만, 이들의 행사·축제 예산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9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자체의 행사·축제 예산(추경 제외)은 1조500억원이다. 2011년도 행사·축제 예산(9544억원)과 비교하면 10% 이상 증가한

입력 : 2015.09.10 07:10 | 수정 : 2015.09.11 21:28

지자체 행사·축제 年 1만 1800건… 우후죽순 '빚잔치 행사'

지난달 25일 방문한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은 고요했다. 축구장 170개 넓이에 달하는 185만3000㎡ 규모 경기장과 1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는 모두 비어 있었다. 서킷을 둘러보니 3㎞ 구간에서 갈라져 나온 5㎞ 구간이 특히 깨끗했다. 앞선 주말에 3㎞ 구간만 이용하는 아마추어 오토바이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굳게 닫힌 차량 정비 구역에는 2013년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에 참가했던 ‘마크 웨버’ ‘세바스찬 베텔’ 등 유명 카레이서들 이름과 얼굴이 차고지 출입구에 새겨진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는 2013년 이후 F1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전남도는 2010년부터 7년간 대회를 열기 위해 F1 조직위원회 및 F1 매니지먼트(FOM) 측과 계약했지만, 경영난을 이유로 작년부터 대회 개최를 포기했다. 경기장을 건설하는 데는 4285억원이 들었다. 국비가 1285억원이고, 전남도는 3000억원을 부담했다. 당시 전남도가 발행한 지방채 1230억원에 대한 이자만 향후 15년간 363억원에 달하지만, F1 경기는 단 4차례 만에 누적적자 1902억원을 기록하며 끝나버렸다.

2013년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F1과 같은 각종 행사 및 축제가 총 1만1865건 열렸다. 지자체당 평균 49회, 모든 지자체에서 거의 매주 한 차례씩 행사·축제가 열린 셈이다. 이런 행사에 총 8326억원이 투입됐다. 지자체의 축제·행사 예산은 2년 만에 28% 늘어 올해 1조700억원에 달했다.

[일단 열고 보자]
경기장만 4285억 쓴 영암 F1
4년간 1902억 적자 내고 '끝'

[동시다발… 제 살 깎기]
도자기축제, 경기도만 3곳
국제보트쇼는 4곳에서…
행자부 "빚 행사 대책 세울것"

문제는 수많은 행사·축제가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다 보니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3년 행정자치부 통합공시 대상인 대규모 행사·축제(광역단체 5억원 이상, 기초단체 3억원 이상 투자 행사) 395건의 경우 총 4575억원의 비용을 들였지만 요금 수입 등으로 회수한 돈은 1288억원(28.2%)에 불과했다. 통합공시 대상 행사·축제를 갖고 있는 170개 자치단체 중 전국 평균 28.2%보다 높은 사업 수익을 올린 곳은 51개 자치단체(30%)밖에 되지 않았다. ‘서귀포 세계 감귤박람회’ ‘제주 들불축제’를 연 제주도, ‘세종축제’를 연 세종시는 사업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

 

투자 비용 상위 10개 행사·축제 중 요금 수익이 0인 행사·축제도 7건에 달한다. 2013년 총 원가 456억원이 들어간 ‘2013 F1 코리아 그랑프리’, 223억원이 들어간 ‘2013 오송 화장품뷰티 세계박람회’, 126억원이 들어간 ‘이스탄불-경주 세계 문화엑스포’ 등 투자 비용 상위 5개 행사 중 3개가 요금 수익 0이었다. 상위 7~10위인 ‘부산국제영화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51회 경북도민체육대회’ ‘2013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 등도 요금 수익이 전혀 없었다.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축제를 중복 개최하는 것도 문제다. ‘인삼 축제’는 경기·충북·충남·경북의 4개 기초 지자체가 개최하고 있으며, ‘도자기 축제’를 개최하는 지자체는 경기도에서만도 여주·광주·이천 등 3곳이나 된다. 부산·경기·경북·경남 등 4개 지자체는 차별성 없는 ‘국제보트쇼’를 각각 개최하고 있다. 한 지자체 내에서 유사한 축제를 여러 차례 여는 사례도 많다.

 

이처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일부 지자체는 빚까지 내면서 행사·축제를 벌이고 있다. 국제적 ‘빅 게임’은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의 예로 광주광역시는 올해 U대회를 위한 경기장 건립·보수를 위해 작년 총 1100억원의 지방채 발행 한도 초과 승인을 받았다. 이는 2013년 기준 광주광역시 자체 부채 1조2155억원의 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인프라 예산 1조3000억원을 투자했던 2012여수 엑스포는 시설관리비만 연간 100억원이 넘는 상황이지만, 여수세계박람회재단이 정부에 갚아야할 돈이 여전히 3800억원가량 남아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지자체 행사·축제는 민간 기업 행사와 달리 지자체 홍보와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줄일 수는 없다”면서도 “지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행사를 위해 빚을 지거나 경쟁적으로 비슷한 행사·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막을 계획”이라 했다.

518억 들인 원주 시민문화센터, 하루 이용객 12명

지난달 24일 오후 2시 강원 원주시 일산동 원주 시민문화센터. 1층 로비엔 20여 명의 사람이 있었지만 5층으로 올라가자 인기척이 사라졌다. 이 건물은 5층부터 7층까지 문화센터, 나머지 층은 보건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색소폰 기초반 수업이 시작된 7층 종합강의실은 100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규모지만 7명 남짓만 앉아 색소폰을 배우고 있었다. 시민을 위한 외국어·음악·요리·취미 강좌가 진행되고 있지만 강의실당 하루 2시간씩 2번의 수업이 대부분이다.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않고 세운 이런 지방 공공 시설물들이 지방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총 건립 비용이 일정 규모 이상(기초단체 100억원 이상, 광역단체 200억원 이상)인 전국 지자체 공공시설물은 515개다. 이 중 일부 시설은 원주 시민문화센터처럼 건립 비용 대비 이용 인원이 너무 적어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립박물관 중 이용률이 가장 낮은 충남 보령시 보령박물관은 602억원을 들여 지었는데 작년 연간 이용객이 4만9000명이었다. 반면 같은 시 단위인 경북 영주시 소수박물관의 건립 비용은 121억원으로 훨씬 적었지만 연간 이용객은 26만명이었다.

원주=홍준기 기자, 김효인 기자

 

高수익 '名物행사'도 있다

  • 영주 인삼축제 - 국내외 경제효과 年246억
    화천 산천어축제 - 9년 연속 방문객 100만명
    함평 나비축제 - 올 26萬, 입장료 수익 8억

전국적으로는 지역 명물로 자리 잡은 '저비용·고효율' 축제·행사도 있다.

경북 영주시 인삼축제는 '산업형 축제'의 모범이다. 작년 예산 9억여원을 들여 7일 동안 실질 방문객 30만명을 불러들였는데, 이 기간 인삼 판매액이 13억4500만원을 기록했다. 지역 특산품 인지도 제고와 해외 판로 개척에도 도움이 돼 경제적 측면까지 고려하는 '산업형 축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 경제 파급 효과 분석 지침에 따라 계산해도 직접적 경제 효과만 246억9100만원이었다. 2011~2013년 3년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문화관광 우수축제'로 선정됐다.

강원 화천군 산천어축제는 '겨울은 관광 비수기'란 고정관념을 깬 성공적 축제다. 9년 연속 방문객 100만명을 넘었고, 외지인 방문객 비율도 96% 수준으로 유지돼 실질적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축제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CNN이 '세계 겨울 7대 불가사의'라 보도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 올해 1월 축제에는 외국인이 5만명 이상 다녀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축제를 2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했다.

전남 함평군의 '나비축제' 역시 가족 단위 관광객이 찾기에 적합한 축제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올해 방문객은 26만여명, 입장료 수익으로만 8억여원을 거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