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나호열의 시와 토크 2014

나무에게서 사랑을 배우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 3. 23:37

 

 

 

나호열의 시와 토크 2014

나무에게서

사랑을 배우다

 

 

일시 2014년 12월 5일 15:00 -17:00

장소 도봉구민회관 소회의실(2층)

주최 도봉문화원

주관 시원문학회, 도봉시벗, 소요문학회, 한국녹색시인협회

 

본 행사는 도봉구 사회단체 보조금 지원 사업입니다.

 

차례

제 1 부

◆시와 토크 두 번째를 열면서 : 나호열

◆고정욱의 나호열 시 감상 : KBS 제3라디오 【내일도 푸른하늘】

◆시와 노래 : 「가시」 나유성 작곡 /나호열 노래

제 2 부 독자들의 시 낭송(독)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나호열 시 / 양종열 낭송

◆「낙엽에게」 나호열 시 / 문경숙 낭송

◆「참, 멀다」 나호열 시 / 윤준경 낭송(독)

◆「긴 편지」 나호열 낭독

제 3 부 시 노래 공연

◆「가을편지」 나유성 작곡/ 강선화 노래

◆「타인의 슬픔」 나유성 작곡/ 강선화 노래

◆「낙타에 관한 질문」 나유성 작곡/ 배서연 노래

◆「눈물이 시킨 일」 나유성 작곡/ 배서연 노래

◆「동해일출」 나유성 작곡/ 나유성 노래

제 4 부

짧은 토크

「나무에게서 사랑을 배우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닫는 말

 

 

【나호열의 시와 토크】 두 번째를 열면서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시의 소멸을 노래하는 시대에 여전히 문학을 꿈꾸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문학 행위가 밥이 되지 않고 술이 되고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한, 문학도, 시도 죽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 처음 시와 토크를 열 때도 그랬지만, 올 해 두 번째 <시와 토크>도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어설프게,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시를 감상하고 시를 생활 속에서 즐기며 살고픈 여러분에게 시작 詩作의 즐거움을, 그리고 ‘나도 시를 쓸 수 있다’는 희망을 작은 선물로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개인적으로 시련으로 얼룩진 가을을 보내면서 이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순耳順을 넘어서야 깨닫게 된,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소중함을 뼈져리게 느끼는 긴 가을이었다.

오늘의 행사는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격려와 후원의 힘이 컸다. 시원문학회와 도봉시벗, 소요문학회의 문우들, 시에 곁들인 사진 작업에 혼쾌히 참여해 준 시원문학회장 김경성 시인, 송정순 작가, 시노래 작업과 공연을 맡아준 나유성 시인, 정성을 다하여 서예작품을 출품하여 준 최경선 시인, 행사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강만수 시인, 전각가 김창현 선생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시 낭송에 심열을 기울여 주신 양종열, 문경숙, 윤준경 선생님의 도움 또한 큰 힘이 되었다. 오늘의 행사를 주최한 도봉구청 및 도봉문화원 원장님, 최영근 부장을 비롯한 도봉문화원 식구 여러분께도 사의를 표한다.

깊어가는 겨울,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하루를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과 깊이 음미하고 싶다.

 

갑오년 시월 古山 나호열 識

 

고정욱의 나호열 시 비평

- KBS 제3 라디오 내일도 푸른하늘 방송분

문득 길을 잃다 2 / 나호열

 

한 사람 눈이 멀고

한 사람 말문이 막혔네

흐드러진 복사꽃마다

달빛이 타오르는데

밤길은 아직 멀었다

눈이 먼 길

말문이 막힌 길

손이라도 뜨겁게 잡아

저 새벽 너머

또 무슨 생각이 미치게 하겠는가

두 나그네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시와시학사】 2007)

달팽이의 꿈 / 나호열

 

 

오늘도 느릿느릿 걸었다

느릿느릿 뛰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성급하게 인생을 내걸었던 사랑은

온몸을 부벼댈 수밖에 없었던

세월 앞에 무릎을 꺾었고

나에게는 어차피

도달해야할 집이 없다

나는 요가수행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잠을 구겨 넣는다

언제나 노숙인 채로

나는 꿈꾼다

내 집이 이인용 슬리핑백이었으면 좋겠다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 (【리토피아】 2004)

담쟁이의 꿈 / 나호열

 

눈을 떠도 눈 앞이 캄캄한 사람들은 알지

허공에 손을 내민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꼿꼿이 서는 나무의 꿈이 사라지고  

그리하여 한 뼘이라도 더,

해의 피를 따스하게 꿈꿀 수 있는 심장에

가닿고 싶은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이

 

허공에 손들이 허우적거린다

나는 새가 되고 싶지 않아

날고 싶지 읺아

그러나 어디든 끈질긴 희망의 몸에

날개가 되어주고 싶어

저 벽의 날개

너와 나를 가르는 저 벽의 날개

견고한 모든 슬픔이

새가 되어 날아갈 그 날 까지

나는 푸르게 푸르게

날개를 키울꺼야

 

눈을 떠도 눈 앞이 캄캄한 사람들의 손이

허공에 핏줄을 새긴다

깃발처럼 펄럭인다

 

 

계간 『다시올 문학』 2014년 가을호

 

 

 고목 枯木의  말씀 / 나호열

 

소리가 안들려

귀가 늙었나봐

눈도 가물가물해

나쁜 소리 안듣고

더러운 것 안 보여서 좋아

모처럼 정신이 돌아온

구순 넘은 어머니 말씀이다

 

2014년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 전시 (계간 【시에】)

 

나호열의 시 낭송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나호열 시 / 양종열 낭송

 

출렁거리는

억 만 톤의 그리움

푸른 하늘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혼자 차오르고

혼자 비워지고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그리움의 저수지

머리에 이고

물길을 찾아갈 때

먹장구름은 후두둑

길을 지워버린다

어디에서 오시는가

저 푸른 저수지

한 장의 편지지에

물총새 날아가고

노을이 지고

별이 뜨고

오늘은 조각달이 물위에 떠서

노 저어 가보는데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주소가 없다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포엠토피아 2001)

 

 

낙엽에게 나호열 시 / 문경숙 낭송

 

나무의 눈물이라고 너를 부른 적이 있다햇빛과 맑은 공기를 버무리던 손헤아릴 수 없이 벅찼던 들숨과 날숨의 부질없는 기억의쭈글거리는 허파창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더 이상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였다슬픔이 감추고 있는 바람, 상처, 꽃의 전생그 무수한 흔들림으로부터 떨어지는, 허공을 밟고 내려오는 발자국은 세상의 어느 곳에선가 발효되어 갈 것이다.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 슬픔은 없다, 오직고통과 회한으로 얼룩지는 시간이 외로울 뿐슬픔은 술이 되기 위하여 오래 직립한다 뿌리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취기가 없다면나무는 온전히 이 세상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너는 나무의 눈물이 아니다너는 우화를 꿈꾼 나무의 슬픈 날개이다 

시집 『타인의 슬픔』 (【미네르바】 2008)

 

 

참, 멀다 나호열 시/ 윤준경 낭송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둥근 몸을 가지고 있을까

한 때 바람을 가득 품어 풍선처럼 날아가려고 했을까

외로움에 지쳐 누군가가 뜨겁게 안아주기를 바랐을까

한 아름 팔을 벌리면 가슴에 차가운 금속성의 금이 그어지는 것 같다

베어지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문신

비석의 글씨처럼 풍화되는 법이 없다

 

참, 멀다

나무에게로 가는 길은 멀어서 아름답다

살을 찢어 잎을 내고 가지를 낼 때

꽃 피고 열매 맺을 때

묵언의 수행자처럼 말을 버릴 때

나무와 나 사이는 아득히 멀어진다

 

한여름이 되자 나무는 인간의 마을로 온다

자신의 몸에 깃든 생명을 거두어

해탈의 울음 우는 매미의 푸른 독경을

아득히 떨어지는 폭포로 내려 쏟을 때

가만가만 열뜬 내 이마를 쓸어내릴 때

나무는 그늘만큼 깊은 성자가 된다.

 

『눈물이 시킨 일』 (【시와 시학】 2011)

긴 편지   나호열 낭송

 

  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둥켜 않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질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씨앗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날마다 어디론가 향하는 손금 속으로 사라지는 짧은 그림자 말 이지요 너무 서두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솟아올라 고이는 샘물처럼 풍경도 슬픔을 제 안에 채워두어야겠지요 바람을 알아버린 탓 이겠지요

시집 『타인의 슬픔』 (【미네르바】 2008)

 

 

시노래 공연

가시

 

 

가을편지

타인의 슬픔

눈물이 시킨 일

낙타에 관한 질문

동해일출

 

 

나호열의 나무에 관한 시 몇 편

느티나무 / 나호열

 

다스리지 못한 마음을 생각한다

동구 밖을 생각한다

가 보지 못한 길과

마을을 생각한다

 

그곳에 마을이,

사람이

모르는 마음이 있었다

 

천 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쓰임새를 모르는

느티나무의 그늘이

한 겹 씩의 주름을 일으키는

파도가 되어 걸어온다

 

저만큼 느티나무는

베어질 그날을 기다리며

기둥이 될지

돛대가 될지

숯이 될지

의자가 될지 ……

 

어느덧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시집 『칼과 집』 (【시와 시학】 1994)

 

 

태장리 느티나무의 겨울

 

부석사 가는 길에 서 있다

 

저, 외톨이 나무

이름 부르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하였으나

가닿지 못할 곳을 꿈꾸는 자에게만 흐름을 허락하는

길의 어깨 너머로

온 몸을 휘덮는 초겨울 어둠을 손사래 치니

비로소 주어만 남은 생이 남았다

 

어두워서 춥고

추워서 더욱 어두운 마을 밖에서

칼바람을 남루로 얻어 쓰고

저, 외톨이 나무의 꿈은

꺾어져 돌아가는 길 끝까지 걸어가 보는 것

 

 

그러나 엄마가 짜준 털옷을 입고도 오돌거리는

버림 받은 새끼 고양이 수 만 마리를 가슴에 품었는지

몸만 가끔씩 틀어 움직일 뿐

 

천수관음 千手觀音!

계간 『시와 산문』 2014년 봄호 시인조명

 

 

 

어느 나무에게 / 나호열

 

 

이제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눈 감고도 먼 길을 갈 수 있는데

왠지 눈앞이 자주 흔들립니다

어느 날에는 한 페이지의 적막을 읽다 오고

또 어느 날에는 민들레처럼 주저앉아서

솜털 같은 생각들을 날려 보내기도 했었지요

한 그루 나무 앞

구름을 타고 가기도 하고

바람을 따라 터벅거리며 한없이 가벼워지기도 했었지요

늘 그는 혼자 중얼거리는거지요

어느 날은 무반주 첼로의 음표를 쏟아내고

어느 날은 낙타의 고향을 이야기 합니다

 

이제 그곳에 가지 않습니다

한 그루 나무 앞

스스로 탑이 되어가는 모습에

나는 자꾸 하늘을 우러르게 됩니다

그의 눈빛을 이제 마주 할 수 없습니다

두꺼운 책이 되어가는 침묵을

마주 할 수 없습니다

 

안녕

 

시집 『타인의 슬픔』 【미네르바】 2008

두 나무의 대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은

당신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당신 옆에 내가 서 있을 때 내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야

당신이 내게 필요한 까닭은

내가 당신 곁에 서 있을 때 당신이 아름다워지기 때문이야

미발표작

슬픔도 오래되면 울울해진다

 

견디지 못할 슬픔도 있고,

삭혀지지 않는 슬픔도 있지만

슬픔도 오래 되면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가지를 뻗는 슬픔

잎을 내는 슬픔

뿌리가 깊어지는 슬픔

 

이 모든 상형의 못난 한 그루의 나무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울진 소광리 못난 소나무

600년의 고독을 아직도 푸르게 뻗고 있다.

계간 『시와 산문』 2014년 봄호 시인조명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6 / 나호열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치솟아 오른

그런 나무보다

등허리가 구부러져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나무를 보면

따스하다

눈물 가득찬 바람 같은 것

텅 빈 허공 어디에라도

기대어 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손길을 골라

하냥 걸어 빈 몸뚱이조차 무거운

휘어지고 볼품없는 나무가

나의 친구다

죄가 되는 사랑이다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시와시학사】 2007)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4 / 나호열

 

나무들 모이면 숲이 되는데

사람의 숲에는 나무가 없다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시와시학사】 2007)

 

부록

나호열의 시와 사진 그리고 서예 작품

기억하리라 나호열 시 / 김경성 사진

 

오래 된 마을에

사람들은 가고 공덕비만 남았다

 

돌이 굳다고

그 속에 새긴 허명들이 단단하겠는가

 

남쪽

바닷가 어느 마을의 시비처럼

나도 당신의 남쪽 바다 끝머리에

서 있고 싶다.

 

해풍이 덮고

노을이 쓸어주고

새들도 여린 목청 올리는

 

나는 당신에게 건너가는 꽃다발이 되고 싶다.

 

나무의 진화론

나호열 시 / 김경성 사진

 

이것이,마지막 편지라고 쓰지 못했네

한 나무 한 켠에서목련이 피고또 목련이 지고그 나무를 지나치고 있다고

의자였던침대였던 그 자리에이

제는 홀로 서서눈물 잎을 떨구네

희고 붉은꿈의 字片이

한 나무를 환하게그만큼 또그늘지게

이것이 마지막 편지인 걸나는 모르겠네

금서 禁書를 쓰다

나호열 시 / 김경성 사진

 

 

그날 밤 나를 덮친 것은 파도였다

용궁 민박 빗장이 열리고

언덕만큼 부풀어 오른 수평선이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빨래줄에 걸린 집게처럼

수평선에 걸려 있던 알 전구가

몸의 뒷길을 비추었다

상처가 소금 꽃처럼 피어 있는 뒷길은 필요 없어

거칠지만 단호하게 일회용 밴드는 말을 막았다

두껍기는 하나 알맹이가 없는 책은

온통 상처를 감쌌던 일회용 밴드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아무도 읽기를 바라지 않는 나는 금서이다

상처를 어루만져 줄 네가 필요하다는 말은

달콤한 만큼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가득한 책

온 힘을 다해 부둥켜 안았던 파도는

날이 밝자 저만큼 물러가 있지 않은가

 

몸을 떠난 상처는 또 무엇을 그리워해야 하는 지

해는 뜨기도 전에 졌다

 

 

 

못난

      - 신성리 갈대밭에서

           나호열 시/ 송정순 사진

 

 

아들 아버지 형 아우 오라버니 지아비 할아버지 학생 스승... 이 빛나는 이름 앞에 못난을 붙여 호명하면 일제히 고개 숙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수많은 내가 흰 머리 휘날리며 바람의 매를 맞고 있다

미발표작

 

수청리 그 나무

나호열 시 / 송정순 사진

잎 내고 팔 뻗치는 일이

나무의 말씀인 줄 알았다

푸르러지고

곧아지는 것이

나무의 말씀인 줄 알았다

일렁이는 꽃물결과

열매들이

나무의 말씀인 줄 알았다

아, 그러나 가을이 가아을 하고

긴 숨 토해내며 오기 전 까지

아니, 잎 지고 꽃 지고

열매 떨어지기까지

나무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저 강물처럼 맨 몸으로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때

그때

나무는

쓸쓸 쓸쓸

한 마디 말씀을 나눠주었다

계간 『시와 정신』 2014년 겨울호

물든다는 말

나호열 시/ 송정순 사진

 

용광로 같은 가슴에서 떨어져 내린

모음이 사라진 자음처럼

잎 하나

빈 의자에 앉아 있다

 

청춘을 지나며

무엇이 부끄러웠는지

저 혼자 붉어져

가을을 지나고 있다

 

미발표작

 

 

수행 나호열 시/ 최경선 書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은 무릎 꿇는 일 이었다 수치도 괴로움도 없이 물 흐르는 소리를 오래 듣거나 달구어진 인두를 다루는 일 이었다 오늘 벗어 던진 허물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때와 얼룩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함부로 팽개치지 않는 사람은 자동세탁기를 믿지 않는다 성급하게 때와 얼룩을 지우려고 자신의 허물을 빡빡하게 문지르지 않는다 마음으로 때를 지우고 마음으로 얼룩을 지운다 물은 그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데리고 때와 얼룩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빨랫줄에 걸려 있는 어제의 깃발들을 내리고 나는 다시 무릎을 꿇는다 때와 얼룩을 지웠다고 어제의 허물이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구겨진 내 삶처럼 무늬들의 자리를 되찾기에는 또 한 번의 형벌이 남겨져 있다 쓸데없이 잡힌 시름처럼 주름은 뜨거운 다리미의 눌림 속에 펴진다 내 살갗이 데이는 것처럼 마음으로 펴지 않으면 어제의 허물은 몇 개의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놓고 만다 부비고, 주무르고, 헹구고, 펴고, 누르고, 걸고 평생을 허물을 벗기 위해 오늘도 무릎 꿇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짧은 토크 Talk

시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광릉수목원에 갔었다. 겨울이 막 삭막한 도시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어느 날 이었다.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운집한 숲은 적막하였으나 그곳 또한 생명의 싸움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메타세콰이어와 같은 활엽수들은 잎들을 떨구고 선정에 든 듯 하였으나 침엽수들을 여전히 바늘 같은 푸른 잎들을 내밀고 있었다. 나무들이, 숲들이 얼마나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는지 보려면 겨울이 되어야 한다는 숲 해설가의 설명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참나무에 자리를 빼앗긴 메타세콰이어는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었고, 어린 엄나무는 온 몸에 가시를 박아 제 몸을 추스렸다. 피톤치트를 내뿜는 전나무 숲 아래에는 풀들이 자라지 않았으니 인간들의 건강에 그리 좋다는 피톤치트는 사실 그 나무들이 해충과 풀들의 접근을 회피하려는 방어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숲에도 생노병사가 있어 이제 혈기가 돋는 젊은 숲이 있는가 하면 세월 따라 늙어 쇠퇴해가는 숲도 있으니 저마다의 본능과 재주를 다하는 뭇 생명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광릉수목원에는 나무와 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숭이와 같은 잡식성 동물이 있는가 하면 고라니 같은 초식성 동물도 있었고,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최상위 포식자 호랑이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과 강열하게 마주친 것은 늑대였다. 세간의 비아냥과는 상관없이 음흉하게 보이는 푸른 눈빛이 내게는 아름다운 보석과 같았다. 날렵하게 균형 잡힌 몸매와 우울이 배인 회색 털은 도도하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늑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습성을 가진 동물이다.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하였으나 비정해 보이지 않고, 호랑이처럼 이기적인 단독자로 살지 않는다. 언제나 가족애로 뭉쳐서 집단을 이룬다. 짝을 지으면 평생을 같이 살고 암늑대가 먼저 죽어도 숫컷은 자신의 반려를 잊지 않고 자신의 생을 마칠 때에는 암늑대가 숨을 거둔 곳에서 굶어죽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어느 가수가 새롭게 발표한 ‘늑대’ 라는 노래를 거듭 듣는다.

 

  우~우! 사람이 아름답다는 명제와 고독한 늑대의 아득한 거리야말로 내가 평생 동안 궁구했던 숙제였음을 나는 안다. 나무들 간의 치열한 자리다툼과 경쟁의 아우성은 들리지 않고, 동물과 곤충들의 먹이사슬에는 증오가 없는데 사람과 사이에 들끓는 아귀다툼과 온갖 협잡을 견디지 못해 숨어들어간 것이 ‘시’라고 하는 소도蘇塗이다. 아직도 내게 있어서의 인간은 꽃보다 아름답지 않으며 늑대의 가족애와 같은 관계의 건강성을 담보하지 못한 위험한 동물이다. 이런 생각이 인간적 성숙을 방해하고 스스로를 고독하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 나는 더욱 외롭다. 그러므로 나의 시 쓰기는 당연히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환멸과 불신으로부터 벗어나서 따뜻하고 긍정적인 세계로 귀환하려는 것임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일찍이 오규원이 그의 시 「용산에서」 읊었듯이 나의 시에는 근사한 이야기도 없고 따라서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생 生의 증언 밖에 없다.

 

  나는 가끔 ‘용산’을 생각한다. 남루하게 떠나고, 남루하게 도착한 사람들이 유령처럼 떠돌던 역사와, 과거를 알 필요도 물을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기계적 욕망에 몸을 섞는 붉은 골목길과 그 길을 지나쳐야만 도착할 수 있었던 강변의 우리 집을 떠올릴 때면 근사하지 않은 생을 뒤엎는 환상을 꿈꾸던 청춘의 시절을 떠올린다. 불현듯 펜을 잡고 밝고 아름다운 그래서 융단처럼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되는 시를 써보고 싶어진다. 시대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도 시는 여전히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소통이 이 시대의 트랜드가 되어 있어도, 소통의 전제가 되는 유통 流通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시를 잘 써야 한다든가, 좋은 시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유통 말이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문단의 은둔자가 되고 주변인이 되었다. 그 대신 나는 무아 無我와 진아 眞我 사이를 헤매는 삶의 모순을 증언함으로서 편견과 잘못된 신념으로 얼룩진 사유를 합리적 사유로 인도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었다.

 

  합리적 사유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합리적 사유를 요약한다면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시가 언어로 이루어진 구축물이고 시를 어루만지는 자를 시인이라고 할 때 그 인 人은 언어를 속이지 않고, 언어를 속이려는 욕망을 제어하고자하는 분투를 거듭하고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꾸밈이 없는 자신의 삶을 절차탁마하는 자가 시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꾸밈이 없는 자신의 삶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또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가! 수치를 무릅쓰고 초라하고 비루한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얼마나 몸서리치는 일인가!

 

  한 때 나는 시론이 없는 시인을 하찮게 생각한 적이 있다. 짧은 생을 살아가면서 이 거룩한 세계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수단으로서의 시론은 마땅히 시인이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반듯한 시론을 지니고 있지 못하면 시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싶다. 누구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듯이, 인생에는 정답이 없듯이,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명제를 체득하는 길은 무수히 많음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린 까닭이다.

 

  끝끝내 시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온글문학 인터뷰

1. 먼저 녹색 시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시를 통해서 자아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늘 낭패와 굴욕으로 끝이 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을 여행으로 유배시킨다고 하셨는데 ,축척된 경험으로의 여행인지 아니면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인지, 그리고 정체성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졌는지요.

먼저 유서 깊은 문학 모임인 “온글”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번이 두 번 째 만남이군요. 세상에는 재주가 있어 시를 쓰는 사람과 재주는 부족하지만 뭔가 창작의 욕구와 목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겠지요, 저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지요. 솔직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있고 할 말도 많지만, 그것을 시로 발언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즉, 나에게서의 시는 나에 대한 위로와 다짐 그 이상은 아닙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행위가 시를 쓰는 이유가 될 테인데 아직도 나는 시의 미궁에 빠져 있고, 삶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문제지요. 여행은 한가로운 여가활동이나 의욕 충전의 목적이 아닙니다. 어디론가 낯 선 곳에 나를 던지는 것이지요. 낯 선 장소, 낯 선 사람들과의 조우 속에서 나는 지금껏 써왔던 방법으로 그 낯 선 곳을 이해하려 하고 낯 선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하지요. 그렇지만 내가 배웠던 의사소통의 방식을 버리고 내던져졌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존재감을 회복하고 동시에 왜소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숨거나 도피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릅니다. 남들 만큼은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명확한 답변이 되었나요?

 

2. 모든 생명의 고귀함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현실이 너무 암담하다는 데는 저도 동감입니다. 물이 죽어가고, 어느 날 숲이 파헤쳐지고 인간이 저지르는 형태를 고발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일이 자연의 숨결을 노래하는 일보다 절실하다고 했는데, 작품 ‘북’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도 되는지 또 자신을 북채를 든 사람으로 형상화 시켰다고 보아도 되는지요.

엘리어트가 한 말이었나요? 시는 오독의 역사라고... 「북」이라는 시는 꽤 오래 전에 쓴 작품인데, 몇 권의 시집을 내면서도 이상하게 수록하지 못했습니다. 「북」을 말씀하신대로 해석을 해보니 그렇게도 생각이 미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저 한 말씀만 거들어 본다면 시 속의 “나”는 북채를 든 존재인 동시에 “북”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요는 “북”을 어떤 객관적 상관물로 인식 하는냐에 따라 시 감사의 편차가 있겠네요. 하여튼 이 시가 제가 좋아하는 작품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3. 작품 ‘숲에서 기적 소리를 들었다’ 삶의 이치를 숲으로 비유해 놓은 시 여러 번 읽었습니다. 살면 죽어야 한다는 약속을 쉽게 깨닫지 못한 우리들에게 강한 느낌으로 다가온 시였습니다. 숲에서 기적 소리를 들으려면 오감이 열려 있어야 하고, 생명존중이 우선 되어야 가능 하다고 보는데 그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지난 30년 동안 시를 써 오면서 소득이 있다면 날카로운 마음이 둥글어지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 확고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북미를 여행하면서 얻어들인 숲과 나무와 그 속에 깃든 여러 생명들에 대한 경외에 관한 기록입니다. 모두에도 말씀드렸지만, 낭만적이고 여가활동으로서의 여행은 저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관광의 목적이 가미된 그런 여행은 가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던져진 상태로 어슬렁거리는 것, 일정에 매이지 않고 떠돌아 다니는 것, 조금 전에 북미라고 뭉뚱거려 말씀드렸지만 더 상세히 말씀드리면 캐나다의 관활한 자연을 자주 마주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엄청나게 큰 숲들, 한나절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가운데서 받아들인 생각은 충격입니다. 광활하고, 그러면서도 춥고, 자연이 주는 위압감과 두려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화되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은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4. 선생님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힘, 선생님께서 지향하고 있는 것, 시가 해야 할 것, 시인이 해야 할 것을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떠올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선생님의 언어들이 만들어 내는 건강한 정서가 선생님의 시의 동력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는지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시를 잘 쓰는 재주가 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나의 시로 세상을 변혁하고 사람들을 계몽하고자 하는 욕심도 없을 뿐 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시인으로 이 세상을 풍미해 보겠다는 생각 또한 없습니다. 이 땅의 많은, 훌륭한 시인들이 하나의 인간으로서는 실패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슬픔을 느낍니다. 시인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에서는 마음을 비우라고 하면서 실제로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시도 어차피 살아가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너무 시로서, 시를 씀으로서 뭔가 반대급부를 기대한다면 슬픈 일이 아닐까요... 시인은 見者가 아니라 견자가 되려는 자이며, 시인은 통달한 자가 아니라 통달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존재라는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5. 좋은 시를 어떻게 가려내는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너무 혼돈스러워 합니다. 시인, 비평가 그리고 독자들의 준거가 각기 일치 하지 못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많은 말들이 난무하는 상황입니다. 선생님께서 평소에 시를 쓰시면서 생각하신 것을 알고 싶습니다.

시 쓰기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쉬운 것을 쉽게 쓴 시, 둘째, 쉬운 것을 어렵게 쓴 시, 셋째,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쓴 시, 넷째,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쓴 시가 그것이다. 첫째는 산문의 수준에 머물고 있어 아직 유치한 단계이다. 둘째는 능력 부족이거나 남을 속이려는 시인의 작품이다. 셋째는 자기도 모르는 것을 쓴 것이니 의욕은 과하나 머리가 아둔한 경우이다. 넷째, 시에 대해 나름으로 달관의 경지에 든 시인의 작품이다. 이 네 가지 유형에 우열의 순서를 매긴다면 우수한 것부터 ①넷째, ②첫째, ③둘째, ④셋째가 될 것이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는 시야말로 시의 상지에 속한다. 질문은 아마도 “쉬우면서 좋은 시”가 있을 것 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는 데 맞나요? 위의 글은 오세영 시인의 말씀이지요, 이승하 교수 같은 이는 「좋은 시의 덕목들」이라는 글에서 새로움을 주는 시, 감동을 주는 시, 깨달음을 주는 시 이렇게 세 가지를 좋은 시를가르는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지요... 저도 「쉬운 시의 어려움」이라는 소감문을 통해서 시는 쉬워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쉽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기 쉬운? 아니면 이해하기 쉬운? 이 전제는 ‘시는 노래여야 한다’ 는 시관이 성립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 전 인류적으로 보더라도- 목가적이지도 않고, 음풍농월하기에는 너무 삭막한 환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태에 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마는 생태론은 분명히 환경론과는 배치되는 생각입니다. 한 마디로 자연을 사랑하고 뭇 생명을 소중히 하려면 인간이 가진 욕심.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자만심, 더 나아가서 인간 또한 그러한 것들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결의..이런 것들이 생태론의 핵심이라고 이해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마음을 현대인들은 얼만큼 인내할 수 있을까요? 자연을 노래하는 시는 많을수록 좋겠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영탄할 수 있는 마음의 너비는 얼마나 될까요? 시의 위기, 문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도 시는 아무에게나 읽힐 수도 없고 ,대중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인류 역사의 압축이지요. 그냥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시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 난 다음에야 접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세계, 나아가서 예술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감각적이고, 난해한 시들이 많습니다. 창작 행위가 새로움을 추구한다고 할 때 감각적이고, 난해하다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가 어려워지고 길어지는 이유가 시인 자신의 威勢와 관련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너무 말이 길어졌는데요.. 저의 좋은 시의 요점을 추려보겠습니다. 시인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 표현주의의 차원에서 미적 요소를 구현하는 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발자국만 더 나간다면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목 마르고 먼 길 가는 자의 에너지가 되는 시, 저자에서 횡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목마르고 힘든 자들을 무한히 기다리는 의지가 의자가 되는 시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6. 어떤 시인에게서나 유년이란 시 공간은 특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년의 낙원적인 이미지와 같이 선생님께서 특별히 체험하신 유년의 의미를 선생님의 시와 결부시켜 묻고 싶습니다.

부끄럽게도 저의 유년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50년대 생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배고픔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고요. 저는 피난지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저의 본적지는 농촌이고요. 생애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서울에서 마쳤으니 서울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온당하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낸 유년의 장소는 서울이면서도 전통적 농촌의 풍습이 보존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뒤산에는 꿩이 날고 바로 코 앞에 북한산 맑은 물이 쉬임없이 흘러 논밭을 키웠으니 동네 어른이 돌아가시면 곳집에서 상여 나가는 전통적 두레의 마지막 풍습을 지켜본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배밭골 - 북악터널이 뚫리기 전 정능의 마지막 산자락 동네가 배밭골이다- 로 소풍가던 기억, 미아리 고개 넘어 돈암동에서 전차를 타고 한강 인도교에 가서 놀잇배를 타고 바리바리 싸간 도시락을 먹으며 밤풍경을 즐겼던 여름 밤, 짧아서 더욱 소중한 기억들은 급속한 산업화에 밀려 아득히 밀려나고,지금은 풀이름,나무 이름,꽃 이름 하나 제대로 알아 맞히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나이가 되어 버렸다. 풀을 모르면 풀의 세계를 모르고,나무와 꽃을 모르면 나무와 꽃이 싸안고 있는 공간을 이해하지 못한다.서로를 품어주고 깃들게 하는 만물일체의 크나큰 품이 없다면 생의 약동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와야 할까! 「시와 서울」이라는 글에 소회를 밝혀 놓은 바와 같이 농촌과 도시의 경계에서 유년을 보낸 것이 저에게는 축복이고 희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저의 유년은 가정이 해체되고, 어쩔 수 없이 핍박받는 생활을 하게 되어 이 사회에 대한 반감, 반항의식이 싹트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시를 씀으로서 그 모난 마음이 둥글어졌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저는 시인으로 사는 것이 기쁩니다.

7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를 보면 나무라는 자연물을 통해 기대고 싶은 현실적 존재를 표상하신 듯 합니다. 때로는 나무를 동반자로 생각 하십니까?

 

 

나무는 시인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주제이고 소재입니다. ‘나무’ 가 주는 고독감, 의지, 포용의 이미지들이 매력적이기도 하지요. 저는 박목월의 「나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존재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나무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상의 나무는 한 마디로 당산나무로 표징될 수 있는 것이지요. 나무에 인격을 부여하는 마음말이지요. 몇 년 전 여름 새벽에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만났는데, 천 년 전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오늘의 巨樹로 자랐다는 그 나무를 보는 순간, 엄청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의 축적이 이 보잘 것 없는 나라는 인간을 압도한 것이지요. 다행히 삼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축복을 받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한 편의 시를 만들고 한 권의 시집의 제목으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8. 선생님의 시“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가 떠오릅니다. 어떤 특별한 여행지나 집필 장소가 있으십니까? 혹은 집필을 하기 위해 그 장소를 다녀와서 집필을 하십니까? 무엇이 어느 순간 선생님의 시에 나타나는 그 전체적인 느낌을 가져오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입니까?

저는 15층 아파트 15층에 삽니다. 제 방의 창문을 열면 도봉산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이 아파트에 18년 째 살고 있습니다. 50년을 산을 바라보며 살아오다 보니 산이 없는 삶이 무의미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산을 자주 찾는다는 것은 아닙니다....이 노마드의 시대에 저에게는 농경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는 방에서 글을 씁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기는 하지만 특별히 사진을 많이 찍는다는가 하는 기록을 남겨두지는 않습니다. 어떤 인상이나 느낌이 찾아오는 순간이 오지 않으면 시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주마간산으로 다녀온 유럽에 대해서는 한 편도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알프스도 몇 번 가보았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산에 한 번 올랐다고 알프스를 알 수는 없는 것이지요. 수 많은 여행시들이 시로 실패하는 이유는 짧은 경이로움으로 다 알았다는 식의 감상을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시를 기다린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전까지는 시를 찾아다녔는데요..

9. 시를 쓰는 입장에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다 보면 이런 작품들은 정말 어떤 영감이 방문했구나 하는 순간의 느낌이 던져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말 무언가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실 때 간혹 꿈속에서 쓴 작품이 걸작이 되었다든지 시인에게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잖아요. 특별히 의식이 작열하는 순간이라든지 뭔가 확 터져 나오는 그런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요소에 의해 점화 되는지요? ‘

시를 기다린다’ 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 자신이 유명세를 타는 시인도 아니고 좋은 시를 많이 생산한 입장도 아니므로 조급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시를 쓰는 이유가 인간으로서의 속물성을 탈피하려는 것이라면 보다 저 자신에게 엄격해야할 필요를 느낍니다, 술을 끊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얼마든지 흥취를 느낄 수 있고, 더군다나 시를 대할 때 마음이 맑지 않으면 스스로 기분이 나빠지는 스타일입니다. 저도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휴머니즘의 세계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이 세상은 아름답기보다는 더럽고 유치합니다.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지요. 자본주의 시대의 탐욕과 물질에 찌들은 인간이 훨씬 많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을 노래하는 것은 저에게는 가짜의식입니다. 제가 시를 기다린다는 것은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자신을 낮추고 좀 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길거나 짧거나 한 편의 시를 단숨에 완성하고자 노력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됩니다. 그 직관에 의해서 파악된 것을 날것 그 자체로 옮기는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퇴고를 하다보면 날 것의 이미지가 손상되고 변형됩니다. 그래서 저는 시가 되는 작품 아니면 시가 안되는 작품, 이렇게 두 가지 부류로 저의 시를 평가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의 시가 아직은 더 성숙되어야 한다는 명령 앞에 놓여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 선생님께서 혹시 여성 시인이나 남성 시인의 차이를 느끼시는 점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여쭙고 싶습니다. 스타일이나 주제뿐 아니라 시를 쓰는 목적에 대한 생각 시적 비전을 추구하는 방식도 아울러 여쭙고 싶습니다.

이미 세상은 변했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쓸고 벌 써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남성과 여성을 우열의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저는 이 차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시단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간극을 넘어서는 시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성 시인들의 시를 더 많이 읽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름을 가리고 시를 읽어보면 이것이 남성의 시인가 여성의 시인가 확연히 구분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는 교육수준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까닭도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세상을 읽는 방식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질적 격차를 느낄 수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문제는 시를 쓰는 여성들이 난 여성이니까..지레 생각을 만들고 여성성을 정형화하는데 힘을 쏟다보면 감상적이고 지연주의적인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누차 말씀드린 것이지만 아마튜어 시인이 있고, 프로 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튜어 작품과 프로 작품만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저는 시인은 隱者의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땅의 훌륭하고 좋은 시인들이 대중 앞에 자주 나서고, 그러다가 명예와 부를 얻는 경우도 봅니다만 그것은 시인의 덕목을 끊임없이 소모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 또한 그러한 욕망 앞에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샘물이 목마른 자를 찾아다닐 수 없듯이 의자가 먼 길걸어 다리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 없는 것처럼, 시는 시인은, 나무처럼 한 자리에 오래 서서 기다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외롭기도 하겠지요, 고통스럽기도 하겠지요. 저는 시인이 그런 면에서 궁핍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궁핍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억지로 대중으로부터 숨으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안달을 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정신, 그것이 어디에 도달하는 길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시인으로서 아름다워지는 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저의 식견이 “온글”의 여러분께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어야 할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시에 관한 몇 가지 오해

 

1. 시가 어렵다

시는 어렵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자리에 함께 자리한 시인들과 청중 앞에서

"특강"이라는 타이틀은 내게는 버겁다. 특강이라는 단어 속에 묻어 나오는 딱딱한 교훈과 계몽성 그리고 『詩經』이 던져주는 엄숙한 이데올로기, 거기다가 현대시의 접점이라는 오리무중은 나를 휘발시킨다. 기실 나는 지금까지 詩를 만난 적이 없거니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화자와 청자의 구분마저 나를 위태롭게 한다. 누가 화자이고 누가 청자인가? 누가 시를 쓰고 누가 시를 읽는가? 이런 질문들이 부메랑처럼 내게로 돌아온다. 이미 정형시의 울타리 넘어 자유시의 경계를 넘어선 이상 시의 이데아는 점점 더 확고한 시의 정의로부터 멀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시가 어렵다는 것은 이렇게 시의 定型이 와해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시들만 하더라도 그 기법이나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다양한 층위를 형성하면서 저마다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평생의 업으로 『시경』의 속살을 헤집어 보리라 다짐했었다. 詩經은 무엇인가? 공자가 시경을 刪定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經의 경지를 詩로 풀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詩와 經이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아우른다는 것일까? 노래의 풍부한 정취와 비유를 따라갈 수도 없다고 생각할 때 意味의 그물에 빠져버리고, 의미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면 차가운 이성이 감성을 몰아세우고 있는 광란을 목격한다. 요는 詩 三百에 인간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으며 그 아이덴티티가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과연 현대라는 접점과 행복하게 마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무대에 혼자 올라 연기를 하는 배우를 생각한다, 대본을 암기하고 미리 계획된 動線을 따라 움직이며 주인공에 몰입한다. 가공의 주인공과 현실의 나를 합치시키기 위해서, 리얼리티의 구현을 위해서 땀을 흘린다. 그러나 어쩌랴! 객석에는 한 명의 관객도 보이지 않는다. 관객이 없는 배우, 텍스트 속의 주인공과 현실의 나 사이에서 방황하는 에로스같은 존재, 그 어느 것을 시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점이 궁금하다. 시의 이데아는 내게는 너무 멀리 있는 꿈이다. 그래서 나는 시 비슷한, 시에 근접한 시 아닌 시의 무정란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2. 繪事後素 또는 니힐nihil

 

繪事後素는 論語 八佾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주와 고주의 해석이 분분함은 익히 아는 바이다. 文質彬彬 (바탕이 순연하고 예의를 갖춤), 質勝文(바탕이 순연한데, 예의를 갖추지 못함, 文勝質(겉으로 예의는 차리는데 바탕이 순연하지 못함), 文質共薄(예의도 못차리고 바탕도 순연하지 못함)의 논의는 시(?)를 쓰는 사람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고 생각한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시인 모두가 文質彬彬의 고봉을 노래하지만 그렇지 못한 불행한 경우도 쉽게 목도할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회사후소는 인간의 본질과 겉(예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면 그것이 참된 인간이 아니라는 뜻에서 사람이 "아름다운 자질이 있은 뒤에야 文飾을 가할 수 있음과 같은 것이다" 라는 해석이 가능하고, 그림을 그릴 때 흰 물감이 제일 뒤에 온다는 해석은 그림을 그리는 데 먼저 색색의 물감으로 모든 형체를 구현하고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그 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어 광채나게 하는 것, 즉 인간의 禮라는 것은 온갖 갖가지 삶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그 인격의 완성을 마감한다는 뜻으로도 새겨볼 수 있겠다.

작가나 화가의 순연한 예술혼이 그대로 작문기법이나 회화기법으로 투영되어 드러나는 것 이 가장 좋은데, 만약 둘 중 선후 가치를 잡아야 한다면, 기법 위주 작품보다는 순연한 예술 혼이 우선 먼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자.

무릇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旨趣가 있어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시라는 것은 性情을 읊조리는 것이다. 盛唐의 여러 시인들은 오직 興趣에 주안을 두어, 영양이 뿔을 거는 것 같아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 묘한 곳은 투철하고 영롱하여 꼬집어 말할 수 없으니, 마치 공중의 소리와 형상 속의 빛깔, 물 속의 달,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言有盡而意無窮

 

나는 허무주의자이다. 자라난 환경이 그러하였기 때문인지 생성보다는 소멸의 아름다움에 더 많이 도취되어 있다. 나에게 시를 쓸 만한 천부적 재질이 있다고 믿어본 적도 없으니 현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만으로 시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궁핍으로 인한 좌절을 도전과 반항 으로 일어서는 대신 도피의 놀이로서 퇴행적 글쓰기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의 繪事後素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며, 야만으로 함몰되어 가는 순수를 지키는 행위에 다름이 아니다. 글을 씀으로써 나 자신을 위무하고 격려하는 행 위 이상의 목적을 찾아본 적이 없으므로 급격한 사회의 변동과 현상에 대한 반응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삶이라는 올가미는 결코 유쾌한 장치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나 장치는 나에게는 無로 가는 逆境처럼 보인다. 절망이 없는 희망, 고통이 없는 열락, 슬

픔이 없는 기쁨은 공허하다. 시민이 지향하는 부르조아에의 환상, 자연을 핍박하는 인간의 파괴본능도 나에게는 헛된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는 그 헛된 풍경들이, 1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수 만장의 풍경들이 퇴적되어 썩어가기도 하고 아직도 살아남아 날개를 달고 내 영혼의 꼭대기에서 푸드득거리기도 한다. 현실적인 괴로움이나 좌절, 그리고 궁핍 속을 헤매일 때 그 풍경 하나가 철창을 뚫고 창공을 향하여 날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發憤은 오래 기다려야할 미덕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으로.....

3.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그리하여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서 추위를 견디고 난 후의 송백의 의연함을 간구하고 있는 지 모른다. 글이 사람을 닮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자신의 글을 닮아가는 것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좌절과 궁핍함이 간절한 憤을 일으키고 窮의 의미를 간절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겠다. 詩窮而後工- 궁해진 뒤에 시가 좋아진다- 와 詩能窮人-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는 언명은 窮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대의에 다름이 없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다. 입신양명의 차원에서의 궁 즉,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경제적인 궁핍은 인간관계를 소원하게 하고 스스로 고독의 함정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은 절대고독, 죽음의 거대한 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절대(자) 앞에 선 자아가 당당해지기 위한 의식으로서 궁은 洗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궁해진 뒤에 시가 좋아진다는 명제는 그 궁이 현실적 어려움을 뛰어넘으려는 의지, 비움을 향해 가는 행보, 또는 정화를 기원하는 진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시의 지향점이 궁의 경지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이 구절에서 시의 이데아를 몽환처럼, 신기루처럼 느끼곤 한다.

무릇 물건은 그 平을 얻지 못하면 운다. 초목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운다. 물이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이를 움직이면 운다. 그 솟구치는 것은 혹 부딪치기 때문이요, 그 달리는 것은 혹 막기 때문이며, 그 끓는 것은 혹 불에 데우는 까닭이다. 금석이 소리가 없으나 혹 이를 치면 소리가 난다. 사람의 말도 또한 그러하다, 그만 둘 수 없음이 있은 뒤에야 말하는 것이니 그 노래함이 생각이 있고 그 울음은 풀음이 있다.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이 그 모두 불평함이 있기 때문인가?

군자의 배움은 혹은 일에 베풀어지고 혹은 문장으로 나타나니 항상 아우르기 어려움을 근심한다,대개 때를 만난 선비는 功烈을 조정에 드러내어 명예가 竹帛에 빛나는 까닭에 그 항상 문장을 보기를 말사로 하며 또 하기에 겨를하지 못하거나 능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뜻을 잃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궁벽한 곳에 숨어 마음을 괴롭게 하고 생각을 위태롭게 하여 정밀한 생각에 지극하며감격하여 분을 펴는 바가 있으므로 더불어 오직 세상에 펼 데가 없는 것을 모두 한결같이 文辭에 맡기는 까닭에 궁한 사람의 말이 공교하기 쉽다고 한다.

4. 시는 효용이 있는가?

 

이 글을 쓰면서, 이 글을 발표할 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내 앞에 포진하고 있는(을) 聽者들을 떠올려 본다. 창 없는 모나드로서 존재하고 있는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늘 이렇게 알 수 없는 공포와 마주하는 것이기에 때로는 몸서리치면서 이 일을 그만 두어야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發話는 의사소통을 넘어서 啓蒙을 암시한다. 나를 발현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독자, 또는 청자들의 의식 속에 나와 내 작품을 각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다시 존재의 불안에 휩싸이고 깊은 침묵의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계몽과 현시가 他者를 돌고 돌 아서 나에게로 귀환하는 것임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글쓰기는 사유형식의 기능을 다른 도구에 대폭적으로 이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영상과 음향,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의 쌍방향성은 시나 소설을 비롯한 문학 장르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시대에서의 문학의 몰락은 이미 선고를 받은 바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많은 시인들은 프로슈머의 난관을 헤치고 오늘도 시를 쓰고 낭송을 한다. 과거에도 시는 만인의 공유물이 아니었다. 문자를 알고 경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시를 읽고 시를 지었다. 근대의 광명이 시의 대중화를 이루고 시의 별이 만인의 머리 위에 반짝거렸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문학은 여전히 유효한 표현방식으로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통을 반성하면서 살아 왔다. 수많은 과오와 번민을 겪으면서 용케도 견뎌왔다. 그 반성과 견딤의 저 편에는 나를 각성하게 하는 힘으로 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실내에서, 불빛조차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거울 앞에 선 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歲寒 후의 松柏이 회사후소의 문질빈빈을 드러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하고, 나는 아직 더 간절해야하고 나는 아직 더 꿈을 꾸어야 한다.

시는 아직 현현하지 않았다.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나호열 羅皓烈 年譜

 

 

1953년 8월 1일(음) 충남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282 번지에서 출생

1980년 Mook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 1』(영학 출판사)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

1982년 Mook 『우리 함게 사는 사람들 2』(정신세계사)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어떤 하루」 외 2편이 당선됨

1989년 시집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도서출판 청맥) 출간

1990년 3인시집( 나호열, 이재호, 최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 찾기』(소담출판)

1991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창작 지원금 받음

1991년 사진시집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발간

1991년 시집 『망각은 하얗다』 (예진출판) 발간

1991년 계간 【시와 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1993년 시집 『칼과 집』 (시와 시학사) 발간

1997년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시와 시학사) 발간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정보화 지원 문인 선정

2001년 시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포엠토피아) 발간

2003년 독도 앤솔로지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 散骨하고』 (독도사랑협의회) 발간

2004년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 리토피아) 발간

2004년 녹색시인상 수상

2005년 독도 앤솔로지 『Dreaming of seventy million Dok- Do's』 (독도사랑협의 회) 발간

2007년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 (예총출판부) 발간

『남양주 불화』 (공저) (경인문화사) 발간

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예총 특별 공로상 수상

2008년 시집 『타인의 슬픔』 (미네르바) 발간

2011년 시집 『눈물이 시킨 일』 ( 시와 시학사) 발간

한국문인협회 서울시 문학상 수상

2014년 『석실서원』(공저) 경인문화사 발간

『인성과 현대문화』 (비움과 채움) 발간

2015년 2월 시집 『촉도 蜀道』 발간 예정

그동안 【인터넷 문학신문 imoonhak.com】 발행인(2000- 2014 현재), 독도사랑협의회 회장(2003 -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문화위원(2005 -2008), 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겸 『예술세계』 편집주간(2005 -2010)을 역임했으며, 2007년부터 2014년 현재까지 도봉문화원에서 시창작교실 지도(도봉시벗), 계간 『시와 산문』 편집위원, 한국녹색시인협회 회장, 건국문학회 회장, 한국탁본자료박물관장(남양주),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에 있음.

http://blog.daum.net/prhy0801 (세상과 세상 사이)

E-mail:prhy0801@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