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시의 공간 : 의정부
전쟁의 수레바퀴가 끌고 가는 3번 국도의 시
나호열
3번 국도
3번 국도는 태평양의 푸른 파도가 옷섶을 적시는 섬 남해에서 출발하여 국토의 중앙을 용트림하듯 거슬러 올라 압록강변 초산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올라타고 때로는 어깨동무하며 거슬러 올라오던 이 길은 한강 유역에 이르면 침략과 정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이 스러지고 평화의 염원이 솟구쳐 올랐던 울음의 길이 되고 만다. 천 오백 년 전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군마가 뒤엉키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전쟁의 통로가 되었던 길. 1953년 7월 3년간의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이 길은 강원도 철원 대마리에서 끊기고 말아 기약 없이 이어질 날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외세에 의해 강토가 분단되고 난 후 이 길을 따라 들어선 군막軍幕은 60년이 넘도록 위압적인 자세를 버릴 줄 모르고 있는데 이러한 형국은 서울을 벗어나의정부, 양주, 동두천을 지나 한탄강을 건너 연천에 이르기까지 남북대치의 첨예한 긴장의 시위를 놓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시공간적 두께는 도시화의 또 다른 그늘에 덮혀 삶의 현장감을 왜곡시키고 과거와 현재의 고리를 약화시키는 무력감으로 희석되어 버린다. 거기에 덧붙여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보 통신의 네트워크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화의 물결은 각 지역이 지니고 있던 문화적 특성을 평준화하고 표준화하므로서 오히려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예전의 ‘남남북녀’ 라든지 ‘남에는 미당, 북에는 백석’이라는 광역의 변별성마저도 헤아려낼 수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특정한 한 지역의 시(문학 전반)나 시인을 조망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가 거주의 이동이 빈번한 노마드의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에 대한 박탈된 의식은 문학 행위의 무조건적인 과거로의 퇴행이나 산천을 찬미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 속에 고향이라는 막연한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 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장에 대응하여야만 하는 것이 오늘날의 시인에게는 천형으로 다가온다. 그런 까닭에 시간적 현실에의 순응이나 지리적 특질에 근거한 영탄이 아니라 삶의 성숙을 이룩한 근거로서의 향토의식을 지닌 시인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향토시인을 찾아 그 의미를 묻는 일조차 불필요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시인에게 있어서의 거주의 공간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탐색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는 대중과 호흡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을 창달하는 기회의 현장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증언과 비판을 넘어서고 난 후에 삶과 이웃을 긍정하는 전도자의 역할이 지금 이 땅의 시인들에게 시급한 일이 되지 않을까.
의정부 議政府 에 이름을 묻은 시인 천상병
행정기관의 명칭이 한 도시의 이름이 된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조선 건국 이후 1400년에 설치된 의정부는 행정의 최고의결기관이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이방원과의 불화로 도성으로의 환궁을 하지 않는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의정부 호원동에서 상왕의 예를 갖추어 모시게 되니 국사 國事의 의결 승인을 하는 곳이라 하여 의정부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두천과 의정부는 본래 양주 楊州의 권역이었으니 오늘날의 의정부시의 변모는 획기적이라 볼 수 있다. 80㎢ 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 40만이 넘는 인구가 밀집한 의정부는 6.25 전쟁 이후 미군의 전방 전초기지로서 동두천과 더불어 군사도시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단계적으로 이전하면서 의정부는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또 한 번 탈바꿈하게 되었다. 1호선 전철이 동두천을 지나 연천까지 연결이 되는 사통팔달의 도시가 되면서 의정부는 새로운 서울의 배후도시로서 성장하고 있다.
의정부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천상병 千祥炳이다. - 엄밀히 말하면 천상병 시인은 10여년 간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자락에 거주하였고, 그 이후 작고하기 10여 전부터 의정부시 장암동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 1930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난 천상병은 1952년 【문예】에 시 「강물」, 「갈매기」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심한 고문과 옥고로 말미암아 영육이 피폐해지고, 그로 인해 빚어진 가난과 음주는 기인 奇人으로서의 많은 일화를 남겼다. 파란만장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그의 삶은 세인에 알려진 바 그대로이다.
터무니없이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것이나, 1971년 행려병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가까운 친구들이 그가 죽은 줄 알고 유고시집 『새』를 발간한 일들은 평범한 삶이라고 볼 수 없는 풍경인 것이다. 그러나 천상병은 동심에 기반을 둔 맑은 서정으로 가난과 고독을 아우르며 절실한 시들을 뽑아내었다. 『주막에서』(1979),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귀천』(1989),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1991),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등의 시집은 물론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를 펴내는 등 병고와 가난에 힘겨운 삶을 영위하면서도 문학에의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허무에 굴하지 않은 그의 문학사랑은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내었고, 천상병 문학이 던지는 삶에 대한 낭만적 서정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핍진한 삶의 위안처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사후 유고집으로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1993)와 수필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1994), 평론집 『천상병 평론』(2007), 『천상병 전집』(2007)이 간행되기도 한 사실에서 천상병 문학의 친근성과 진정성이 증명되거니와 문학인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그가 던진 염결하고 자족하는 삶의 태도는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천상병 시인의 사후의 명암은 엇갈린다.
1993년 그가 타계한 이후 그가 살았던 의정부시는 변두리로 몰려가는 서민의 피폐한 삶을 위로하고 희망을 북돋는 ‘천상병 예술제’를 2004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11번 째 개최하므로서 지역문화 예술의 활착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명明이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을 소재로 한 연극과 음악, 문학이 대중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 예술제는 의정부의 문화적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새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2010년에 완공되리라던 문학관이 건립이 실현되지 못하고 그의 많은 유품이 의정부 극단 창고에 묻힌 채 훼손되고 있는 현실은 암暗의 측면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의정부 장암동 옛집은 흔적도 없이 도시개발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 문화에 대한 의식결여가 만연한 세태에 우려를 금치 못한다. 다행하게도 그 시인의 누옥이 뜻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 복원되어 있다. - 안면도에 가실 일이 있으면 안면읍 국도변에 앉아 있는 집을 찾아 보시기를 권한다.- 죽어서도 가난을 벗지 못한 시인이라고 그를 기억할 때 오히려 우리를 꾸짖는 시를 기억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다.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미지를 해체하는 시: 최호일
의정부에 근거를 두고 중앙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시인으로 최호일, 김상숙, 전장석 시인을 꼽을 수 있겠다. 문재 文才가 뛰어 났으나 뒤늦게 등단한(2009년, 【현대시학】) 최호일은 세계의 안쪽에 관심을 표명하는 시인이다. 세계의 표면은 혼돈, 그 자체이다. 생성과 소멸, 진보와 보수, 남과 여와 같은 이분법의 유혹 너머이거나 그 관념들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본질을 향해 시선을 던지게 되면 그의 시는 현실(현상)을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무한히 구부러진 무의식(그늘)으로 진입하게 된다. 시인은 애당초 세계는 구획되지 않은 것임을 증언한다. 사물과 현상을 의도적으로 해체하지 않아도 이 세계가 자유로 가득 차 있다는 그의 시편들은 상상과 이미지의의 결합이 아니라 역으로 그 상상과 이미지를 해체할 때 선명해지는 전위의 시이다. (그의 첫 번째 『시집 바나나의 웃음』, 문예중앙 2014 참조). 익히 상식으로 익혀온 시의 문법으로 그의 시는 읽을 수 없다. 학습으로 고형화된 인식을 해체하고 의식을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그의 시는 감상의 문을 열지 않는다. 시집 해설을 쓴 이재복은 이렇게 말한다.“ 그(최호일)가 시를 ‘은폐된 세계의 탈은폐’라는 현상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의 등단작 중에서 한 편인 「저 곳 참치」 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에일리언과 같은 시와 조우하는 당혹감과 상상력의 빈곤과 마주치게 되지는 않을까.
참치를 보면 다른 별에 가서 넘어지고 싶어진다
동그란 참치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녔는지 깡통 속에서 살이 통통하게 쪘는지
지느러미와 내장이 없다
참치는 좀 더 외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온 듯하다 먼 훗날
비행접시를 타고 바닷가에 내린 어느 외계인처럼
사람들은 내용물을 버리고 깡통을 구워 먹을지 모른다
다 먹고 버린 참치를 차고 노는 아이들
참치를 숭배하는 자세로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오다가
덜커덩 자전거가 어느 돌에 걸려 넘어졌다
저곳으로 넘어지는 참치
저들은 어느 별에서 날아왔을까 돌은
그곳에서 가시를 발라낸 비교적 딱딱한 참치일 수도 있고
저녁 어스름의 근원적인 고독일 수도 있다
아가미가 없는 참치
- 시 「저 곳 참치」 전문
형식주의적 관점을 옹호하는 생명 탐구: 김상숙
이와는 달리 유동하는 삶 속에서 생명의 의미를 궁구하는 시인으로 김상숙을 들 수 있다. 【다층】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강물 속에 그늘이 있다』 (2003년, 포엠토피아), 『물렁물렁한 벽』( 2007년, 시평사)등의 시집을 낸 바 있는 김상숙의 시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활달한 상상력이나 재치 있는 필치 筆致보다는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 얼개와 꼼꼼한 비유를 통하여 끈질긴 화두 하나를 붙잡고 있는 느낌을 준다. 시인이 시 속에 무채색으로 감추어둔 것은 ‘죽음’이라는 사소하면서 거대한 주제이다. 경전을 읽는 것도 아니고 수행을 감행하는 것도 아닌 채로 시인은 담담히 죽음의 현장을 기록하고 심장 속에 집어넣는다. 말하자면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죽음, 죽음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핏줄을 증언하는 것이 그의 임무인 것처럼 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모순판단을 단호히 거부하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 「생명의 외연 外延을 찾아가는 탐색의 기록」( 다층 동인지 64호』 2014년 상반기)부분
거대한 짐승이다
묵직한 몸을 들어 올리며 기어가는
바람의 은신처다
깡마른 들판에 옷자락 찢기고 손등을 할퀸다
방향을 잃고 머리를 처박는다
은빛 비늘에 두껍고 단단한 가죽을 두르고
거만한 짐승 한 마리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꼬리인지 머리인지 만져본 적 없지만
아무도 저 짐승의 길을 막지 못한다
수억만 평의 대지를
일필휘지(一筆揮之)하고 있는
하늘 위, 날개 달린 짐승도
거대한 무게를 감당 못할 때
빛의 이마를 가르고
빗살무늬 가죽을 두르고 내려온다
- 시 「강」 전문
고대의 자연철학자 탈레스가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생명의 본질을 ‘물’로 갈파한 이래 인류의 모든 문명이 강가에서 시작하고 번성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지만, 물의 집적체인 강의 속성을 제대로 궁구하는 일에는 소홀히 해 왔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수와 가뭄이라는 재앙과 풍요와 수확의 기쁨이 교차하는 강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경전이다. 그 강을 인위적으로 함부로 대했을 때 어떤 참담함이 오는지 우리는 4대강의 역사(?) 役事를 통해서 알게 되었거니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자연의 위대함을 생명의 외연으로 환치하는 눈은 전통적 시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되살려주는 전범 典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향토 시인의 등장과 리얼리즘의 과제: 전장석
최호일의 시가 post -post modern의 극점에 서 있다면 리얼리즘 문학의 극단에 서 있는 시인이 전장석 시인이다. 2011년 계간 『시에』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의정부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까닭에 적어도 현대사에서 의정부라는 공간이 차지하는 의미를 제대로 공유하고 있는 시인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얼리즘 문학의 현장 참여의식과 전투성을 드러내는 송경동과 같은 시인과는 달리 전장석은 자신의 향토인 의정부의 속살을 증언하고 기록하는 일에 조금 더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의정부라는 도시가 켜켜이 쌓아놓은 역사가 더 이상 왜곡되지 않고 평화의 땅, 풍요의 이상향이 되기를 바라는 애향정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의정부」 연작시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시편들이 의정부의 역사와 풍물의 문학적 해석이며 증언일 뿐만 아니라 도래할 미래가 장밋빛 환상이 아닌 불안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장소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텅 빈 공간이 아니다. 장소는 인간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은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한 사물과 사건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실천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바 사물(건)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일은 권력관계 즉 기억의 정치·재현의 정치의 일부가 되는 실천이다. 전장석의 시는 국가중심적인 동일성의 시선이 아닌 로컬리티에 입각한 차이의 시선으로 의정부의 장소성을 구성하고 있다.
- 김익균, 『시에티카』 (2013년 · 상반기 제8호)
문명의 흐름을 볼 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과제이다. 시내를 점령하고 있던 미군 기지가 이전하고 난 후의 의정부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탱크와 무장병력이 유령처럼 버티고 있던 그 빈 터에 무엇이 들어설 것인가? 농업이 국가경제의 부분으로 쇠락하고 난 후에 농경지는 광대한 택지로, 공장부지로 탈바꿈했다. 논이 있던 자리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산등성이는 포크레인에 찍히고 할퀴어진 후에 고층 아파트로 변했다. 논두렁은 매몰되고 고속도로가 느림의 가슴을 찢고 지나갈 때 우리는 이 맞설 수 없는 괴물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탐욕에 물든 천박한 자본의 혓바닥이 우리의 뇌수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몸서리치며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전장석은 장소의 항존성을 믿지는 않지만 김익균이 지적한 의저우라는 로컬리티가 던져주는 심각성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홀링워터
홀링워터*는 한겨울에도 물방울을 분사한다
버터에 얇게 튀겨진 포테이토처럼
심한 울렁증에 쪼그라든 의정부 사람들
폭포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쳤지 날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검고 둔중했던 서울행 기차
삶이 아니라 생존의 그늘 저쪽
스스로의 감시와 막막함을 피한, 푸득거림
구름다리의 얼굴을 증기가 뒤덮었다
낮게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를 때마다
정적을 깨는 무서움, 부대의 총열에 침을 삼키고
밤새 캠프를 잠복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오면
하굣길 우리는 레드클라우드** 뒷산에 올라
골프공을 주워 팔거나 미군전용 클럽
모퉁이 튀김집에서 누군가가
쭉 찢어온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고
미국말은 왜 낄낄거려야 소통이 더 잘
되는지 그럴수록 미래는 왜 불통인지
구름다리를 타고 서울로 매일 등교하던
큰형님이 아예 돌아오지 않던 어느 해
홀링워터가 마침내 길을 내주고 구름다리도
철거되었다
캠프내 피엑스 군무원이던 옆집 아저씨가
평생직장에서 쫓겨난 것도 그 무렵
중앙시장에서 달러를 사고팔던 아주머니들
은근히 다가와 옅은 귀로 속삭이던 오 대단한 나라 유에스에이
품질 우월주의 미제 땅콩버터에도 감격했었지
그해 겨울 눈이 도시를 버릴 듯 내렸다
홀링워터도 진고개 식당 너머 상가도
한 사나흘 막막함 속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미군부대 헬리콥터 소리에도 탱크 행렬에도
사람들은 흑백티브이에만 시선을 고정시킬 뿐
봄이 오자 미군부대 철조망 너머
장미넝쿨은 짙은 화장을 지우고
메이비였던 아이들도 하나 둘씩
제 부모를 찾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 의정부 시내 한복판에 있는 미군캠프
** 의정부시 외곽에 있는 미군캠프
전장석의 의정부 시편은 하나의 완결이 또 한 문제의 시작이라는 전 인류적인 삶의 고투를 증언한다. 미군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실직하거나 가게 문을 닫아야 하고 다시 생계의 어두운 미래를 향하여 눈길을 돌려야 한다. 리얼리즘 문학이 지니고 있는 계몽과 전투성은 문학이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문학적 장치를 수반하지 못할 때 한낱 구호로 떨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전장석의 의정부 연작시를 중심으로 한 시 작업을 주시하는 이유는 노마드가 아닌 토착민의 시각으로 의정부의 미래를 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진정한 향토시인의 등장은 의정부의 문학을 한 단계 높이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사족
의정부에도 적지 않은 시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문학적 성과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우리 시의 정통성과 창조성을 펼칠 수 있는 몇몇 시인을 조망하고자 하는 필자의 의도에서 집필된 글임을 밝힌다.
*
이 글은 계간 『시와 산문』 2014년 가을호 기획 특집으로 게제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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