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시력(詩歷)과 시력(視力)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5. 10. 20:15

 

<월간문학 5월호 시평>

시력(詩歷)과 시력(視力)

나호열

 

 저  남녘 바다의 참사는 4월을 비탄의 사월(死月)로 만들어 버렸다. 비난의 원성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안타까움이 겹치면서 개인과 사회를 관계 지우는 신뢰와 협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교한 사회망으로 구축된 우리의 삶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공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공존은 법과 윤리, 그리고 개인의 도덕심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인데, 이 공존의 조화가 깨질 때 즉,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무너질 때 맞이하게 되는 공포는 개인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고독에 다름 아니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에게 고독은 반갑지도 않고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손님일 터. 그러나 이 고독이라는 괴물은 한 개인이 스스로를 되짚어보고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는 것이어서 시인에게는 창작의 열락(悅樂)을 맛보게 하기도 한다.

 

  앤서니 스토 Anthony Storr는 『고독의 위로 Solitude』에서 고독은 일생의 임무이며, 한 개인이 사회망 (社會網)에서 벗어날 때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아를 발견하고 비록 영속할 수 없으나 잠깐동안의 평화로움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창작활동은 고독을 야기하는 상실감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첨언한다. 누구나 어떤 일로 고통 받을 때 그런 정서를 표현하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시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리라. 그런 까닭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시력 視力의 확장은 시인이 구유해야 할 필수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째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부조리한 사회적 현상에서부터 추상적인 개별적인 고독에까지 시인은 도저히 표현의 욕구를 참지 못한다. 사회적 부조리와 개별적 고독이 지니는 공통분모는 타인으로부터 분리된 자아를 목격하고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추체험 또는 선체험 하므로서 자신을 정화 淨化한다는 것이다. 윤혜숙의 「사(死)」는 도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발인(發靷)해야 하는 죽음과 화장(火葬)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하는, 두레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냉정한 도시의 삶을 증언한다. 익명화된 개인의 삶은 더러운 것을 쓸어내는 일에 일생을 바친 빗자루와 같아서 "구석지고 외진 자리로 돌아간/ 줄일 때까지 줄인 몸뚱이/ 이제 남은 건 뼈다귀 대궁뿐"( 정인선, 「비스듬히」부분)으로 희화되기도 한다. 서정란의 「젖무덤」 또한 여성성을 상실한 몸을 빗대어 무상한 삶을 반추한다. 이와 같이 시인(화자)의 감정을 억제하고 현상을 사생(寫生)하는 기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환기하는 효과를 노린다. 버려지고 잊혀지는 타인의 삶을 통하여 맞이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예감하는 일은 고독의 학습에 다름이 아니다.

 

  같은 현상이나 소재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시인의 성향과 기법에 따라서 구도는 달라진다. 위에 언급한 시들과는 달리 이의웅의 「빈 집에서」는 보다 세밀한 필치로 존재의 쇠락을 노래한다. "한 세월을 풍미하고 지금은 초췌한 몰골이 된 빈 집/통증에 시달리며 뼈마디 추스르는 한 생애의 내력을 풀어보기 위해 /눈물을 참으며 쑥부쟁이 모깃불을 밤이 닳도록 피워 올렸다"는 술회는 기실 빈 집= 시인(화자)의 선상에서 읽어낼 수 있는 답안이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인(화자)의 감성을 통제하고 관찰자의 냉정한 시선을 견지하는, 대상과 화자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얼마나 시를 극화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이영춘의 「빨간 신호등 앞에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방과 거실의 공간, 거실과 식탁의 공간, 그의 우주다...중략... 빈 밥그릇 같은 저 깊은 허기/ 한 세상이 캄캄하게 접히는"(「빨간 신호등 앞에서」 마지막 연) 고독의 질감은 앞에 언급한 시들을 현미경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듯한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앤서니 스토는 '고독'을 타자와의 관계가 단절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하면서 타자와의 관계가 상실된다는 사실이 개인에게 절망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고독이 한 개인의 성숙이 경유하는 한 지점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능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보다 고차원의 '사랑'을 지향하는 고독은 영육의 싸움터이기도 한 것이다. 이선의 「서론」은 이와 같은 영(靈)과 육(肉)의 싸움을 자각하는 기록을 보여준다. 『아가서』는 바이블이지만 보기에 따라서 신과 인간의, 인간과 인간의 사랑의 노래이며 시이다. 고독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기도이기도 하다. "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 있는 /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 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서론」 2연)는 평범한 진술 같지만 사실은 본능적 성애를 갈구하는 삶(1연)과 승화된 사랑(3연) 사이에 존재하는 구도(求道)의 의식을 보여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짧은 지면에 더 이상의 첨언을 더할 수는 없지만 소홀히 넘어갈 수 없는 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와 같은 하드보일드 hard-boiled한 묘사에 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리듬이 가미될 때 시는 또 다른 국면에 도달한다. 5월호의 모두(冒頭)를 장식하고 있는 시력(詩歷)이 반세기를 넘나드는 시인들의 시력(視力)은 남다르다. 그저 직시하고 체념이 섞인 채로 대면하는 관념의 고독이 아니라 농(弄)인듯 노래로 승화시키는 힘은 시력(詩歷)의 장구함과 시력(視力)의 맑음이 비례함을 증명하는 듯하다. 소멸하여 가는 물레방아에 대한 회억(回憶)의 역동을 한껏 의성어와 의태어의 배합을 통해 그려낸 채규판의 「물레방아」, 오월의 고운 풍취를 세밀한 필치로 모성을 자극하는 김여정의 「하늘빛이 고와서」, 일장춘몽의 삶 속에 들어앉은 에로티즘을 언어의 축자적 의미를 지워내고 반복된 리듬으로 구축해낸 박해수의 「목련꽃 블라우스」는 시의 정도에 목말라하는 모든 이에게 전범(典範)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언급된 시들

 

 

물레방아/ 채규판

 

나는 잊지 않는다

물이끼 포란 나무바퀴의 삐그덕거리는 몸짓,

물방아 토드락 토드락 굴리는 맴씨를

 

탈탈탈탈

영롱한 고행을 위하여

분신하는

저 경건한 학살

 

사방으로 퍼지는 공동의 땀,

땀보다 빛나던

여치소리,

답답하게

답답하게 퍼지던

공동의 땀의 냄새를 잊지 않는다

 

서로 붙들고 아우성친대서

비가 오랴,

벼락이 치랴

 

마른 논바닥에 찔금찔금

붕어새끼 뛰다가

마침내 굴러

도르르

바퀴에 감기며 내쏘던 풀꽃처럼

따뜻한 충동의

포갬이었거니,

 

나는 잊지 못한다

겉보리 두 세 말 걸머쥐고 달려들던

시커먼

시커먼 장정의 눈썹,

눈썹을 타고 내리며 웃던

껄껄껄

대소 大笑하던 진실을.

 

하늘빛이 고와서/ 김여정

 

5월 이었습니다

 

하늘빛이 너무 고와서 가슴 속 눈물샘이 더 깊어졌다며

하염없이 옥빛 하늘에 눈길을 보내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늘빛이 고운 옥빛이어서 한 해에 단 한 번 끼어 보는 가락지도

자수정 가락지가 아닌 옥가락지를 낀다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늘빛이 하늘하늘 고운 옥색 명주비단 같다며 곱게 물들여 바느질한

옥색 명주 목도리를 어린 딸의 목에 감아주며 행복해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 권의 시집이 된 5월이 책장을 열고 있습니다

 

5월의 하늘에 옥빛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네요

5월의 하늘에 옥가락지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구르고 있네요

5월의 하늘에 옥색 명주목도리가 강이 되어 흐르고 있네요

 

5월 같은 열일곱 어린 나이에 시집 와서 5월 같은 꿈도 못 꾸어

익은 포도송이 같은 멍을 가슴에 달고 살았던 여인

나의 어머니

팔순 넘긴 딸 만날 날이 가까워서인가

지금 5월의 하늘 옥색 비단목도리로 내 목을 부드럽게 감싸 주고 있네요.

 

목련꽃 블라우스/ 박해수

 

한 이불 속에 누워

나란히 핀 목련꽃 블라우스

봄꽃, 몸 꽃, 몸 부비며

살 부비며 일어난 꽃망울

꽃, 망울 툭 터지는

봄소리 봅 햇빛에

나와 너는 손잡고 서러워

야릇한 네 마음

네 꽃향기에 옮겨 놓고

네 가슴 적시는 목련꽃 블라우스

아득한 네,거리, 아득한 거리

봄꽃 사랑으로 눈 비비고 일어난 가슴

이승, 저승을 넘나들다

부들, 부들 눈 비비고 눈 떨며

손 시린 이승의 봄날

손 시린 이승의 이른 봄날

부들, 부들 손 떨며 만지던

아직 부푼 성기 性器같은

목련꽃 블라우스 서럽고 가엾은

이승의 백년 이불, 삶의 얼룩, 얼룩,

누덕, 누덕 기워진 이승의 죄로

바짝 바짝 달라붙은 우리들 이승의

몸 가여운 발목에 떨어진 흰 목련꽃

흰 목련꽃 한 잎 두 잎 너 서럽고

몸 가려운 울적한 봄날에 피어나는

목련꽃 블라우스, 목련꽃 블라우스.

 

빨간 신호등 앞에서/ 이영춘

 

꿈틀, 한 노인이 움직이는 소리, 공기를 가른다

공기를 따라 거실로 기어간다

스위치 켜는 소리, 신문지 접히는 소리, 무언가를 쩝쩜 먹는 소리

소리의 파장이 빈 집을 깨운다

리모컨 끝에서 빨간 재킷을 입은 기상 앵커의 일기예보는

귓전에서 멀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노인에게는 꽤 의미있는 공기가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기어간다

동굴 같은 방,

오래 된 TV 자막 속에서, 목소리 속에서 함께 잠이 들고 함께 깨어난다

 

방과 거실의 공간,거실과 식탁의 공간, 그의 우주다

세상이 온통 열리고 닫히는 그만의 우주, 그만의 삶, 그리고 밥이다

한 세대가 허물어져 가는

저 둥근 원통의 나무

빈 밥그릇 같은 저 깊은 허기

한 세상이 캄캄하게 접히고 있다.

 

젖무덤/ 서정란

 

늑대들이 호시탐탐하는

 

모성 제1의 절대 성역이던

 

킬리만자로보다 더 도도한 산봉우리

 

그 관능의 봉우리가 무너져

 

허무의 상징처럼

 

왕후의 고분처럼

 

쓸쓸하다.

 

 

빈 집에서/ 이의웅

 

푸른 그늘이 질펀한 산 아래

쟁기질하다 지쳐 늘어진 황소처럼 빈 집 하나가 누워 있다

실바람에도 먼지처럼 폴 폴 외로움을 털고 있는 빈 집

창문의 갈비뼈는 으스러져 있고

올이 터진 벽체 사이로 붉은 황토흙이 쌓여 퀴퀴한 냉기를 뿜는다

 

창틈으로 스며든 달빛이 허물어진 쪽마루에 걸터앉아

그 옛날 가난이 진드기처럼 달라붙던 시절

이마를 마주하고 한 톨의 감자를 나누며 쪽잠을 자던 상처 같은 삶을

가슴 으스러지는 옛 그리움으로 반추하고 있다

 

한 세월을 풍미하고 지금은 초췌한 몰골이 된 빈 집

통증에 시달리며 뼈마다 추스르는 한 생애의 내력을 풀어보기 위해

눈물을 참으며 쑥부쟁이 모깃불을 밤 닿도록 피워 올렸다.

 

서론/ 이선

 

그 밤, 성경의 <아가서>를 읽었지

생선 비린내가 배어 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잃어버린 내 청춘, 116페이지 원고를 넘겼지

혁명을 외치는 낡고 더러운 붉은 양탄자 위로

검정 도둑 고양이가 먼저 지나갔지

앞 집 길고양이와, 내 집 길고양이가

네 팔, 네 다리 서로 껴안고, 한데 엉겨붙어

가파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지,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 있는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 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

 

냇물 속으로 뛰어든 단풍잎들은

계절을 순환하며,

흰돌을 암갈색으로 물들였지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 향기가 났지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

‘서다’라는 이미지를 잡고

치타가 긴 꼬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밤에.

 

 

비스듬히/ 정인선

 

얼마나 쓸고 또 쓸었기에

닳고 또 닳아

몽당빗자루로 앉아 있다

 

썩어 문드러진 고목의 둥지처럼

툇마루 귀퉁이에 비스듬히,

비린내 풀풀 풍겨 내는 장마

지글지글 볶아 내던 8월

폭설 쏟아붓는 단절의 밤에도

조는 듯 기둥에 기대여 고요하다

 

버릴 건 다 버렸다고

비울 건 다 비웠다고

껑충한 대궁으로 남은

몽당빗지루

 

구석지고 외진 자리로 돌아간

줄일 데 까지 줄인 몸뚱이

이제 남은 건 뼈다귀 대궁뿐

 

남아 있는 것들은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는

그렇게

혼자만의 몽당빗자루.

 

사 死/ 윤혜숙

 

세상을 등진 이들은

도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떠난다

살아왔던 모습 그대로 아무 일 없는 듯

남겨진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동이 트기 전 서둘러 떠난다

새벽에 길을 떠난 자들은

한 줌의 재가 되기 위해 줄을 선다

그들이 떠난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