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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과학

우주엔 우리만 존재하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4. 6. 12:49

 “세상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신은 우주 최고의 해커”

<23> 우주엔 우리만 존재하나

김대식 KAIST 교수 dskim@ee.kaist.ac.kr | 제369호 | 20140406 입력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이 한정됐으니 말이다. 무슨 수요였냐고?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싶다는 하찮아 보이는 희망의 수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조금만 편해도 까맣게 잊고 살다가 갑자기 모두 그리고 동시에 자비와 구원을 울부짖으니…. 서(西)로마가 멸망한 후 홀로 남게 된 동(東)로마 시민들은 애타게 기도한다. 우리만은 살려달라고. 내 귀여운 딸만은 강간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내 목만은 잘리고 싶지 않다고.

모두가 같은 신에게 기도한다면? 신은 누구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까? 6세기 동로마에선 새로운 이론이 등장한다. 인간은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없다고. 서울에서 보낸 소포가 단번에 로마로 배달될 수 없듯이. 이데아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어떻게 ‘벌레’ 같은 인간의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신의 아들 예수는 인간이기도 하다. ‘테오토코스(theotokos)’, 즉 신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계시니 말이다. 성모 마리아는 자비스러우시기에 순교한 성자들 부탁에 귀를 기울인다.

1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Christ Pantocrator)의 이콘(성상)은 그림일까? 신(神)일까? 2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원본일까? 아니면 시뮬레이션(복제)일까? 3 노년에 장님이 된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se Luis Borges, 1899∼1986년) 4 신이야말로 우주 최고의 ‘해커’ 아닐까?
그렇다. 평범한 신자는 성자에게, 성자는 성모 마리아에게, 성모 마리아는 아들인 예수에게, 그리고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해 소원은 성취될 수 있다. 그런데 성자들은 이미 다 죽지 않았던가?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부탁한단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그들의 남은 흔적에 기도하면 된다. 성 토마스의 손가락 뼈, 성 안토니의 혀, 성 야누아리우스의 메마른 피, 세례 요한의 두개골에게. 하지만 아무리 작게 쪼개고 나눈다 해도 성자의 유골은 한정돼 있다. 한정된 물건을 모두가 원하면 가격이 하늘을 치솟고 위조가 등장한다. 집과 땅을 팔아 구매한 성자의 새끼손가락 뼈가 사실 길바닥에서 죽은 노숙인의 뼈라면?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대책이 필요했다. 구원에 굶주린 신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한 복제가 가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복제된 성상은 신과 소통하는 수단
답은 간단했다. 완벽하게 복사만 한다면, 천 번, 만 번 복제된 그리스도의 얼굴(성상, 이콘)은 더 이상 단순한 그림이 아닌, 하나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성부·성자·성령. 예수는 동일한 본질(hypostasis)의 삼위일체를 가진 신이며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려진 예수가 ‘사람’ 또는 ‘신’이라면 그리스도가 신과 인간으로 완벽히 분리된다는 네스토리우스(Nestorianus)의 이단적 믿음과 동일하다.

거꾸로 이콘의 예수가 동시에 신이며 인간이라면, 역시 이단인 단성론자(單性論者)가 돼 버린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콘을 숭배하는 순간 우리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탈 이단자가 되는 것이다. 결국 730년 동로마제국의 레오 3세 황제는 명령한다. 제국의 모든 이콘을 없애라고. 얼마 전까지 신으로 숭배하던 이콘들을 불태워 버리라고. 이콘을 없애려는 자와, 성스러운 이콘을 지키려는 자의 수백 년간의 내란인 ‘성상파괴운동(iconoclasm)’은 비잔틴제국을 멸망의 길로 가게 했다. 또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를 분열시킨다.

플라톤은 2가지 복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아이코네스’와 사물을 왜곡하는 ‘시뮬라크룸’이다. 현실은 이데아 세상의 불완전한 복사품이다. 시뮬라크룸은 어차피 왜곡된 현실을 또 한번 왜곡하기에, 우리를 이데아 세상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하지만 왜곡 없는 복제란 과연 가능할까? 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세상은 인간의 뇌라는 프레임을 통해 해석되고 분석된다.

현실은 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는 순간 매번 새로운 시뮬라크룸이 탄생된다는 말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그렇기에 “시뮬라크룸은 현실의 왜곡된 복제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고로 성상파괴주의자(iconoclast)들이야말로 이미지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콘의 무서운 힘을 가장 제대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성상이 단순히 ‘신’이라는 이데아 존재의 왜곡된 복제라면 그리 두려울 이유가 없다. 아니, 이콘이란 시뮬라크룸이 진정으로 두려운 이유는 어쩌면 그 시뮬라크룸 뒤에 아무 이데아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신 자체가 시뮬라크룸이란 두려움에 그들은 떨었던 것이다.

원본 우주는 하나, 시뮬레이션은 무한
신, 이콘, 로마 황제. 만약 우주 그 자체가 시뮬라크룸이라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가 복제라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많은 시뮬라크라(시뮬라크룸의 복수형)들을 만들고 있다. 마네킹, 인조 나무, 인간을 닮은 로봇, 도시 전체가 시뮬라크라인 라스베이거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Hallstatt)’ 마을을 통째로 복제한 중국의 ‘할슈타트’. 그리고 우리에겐 ‘컴퓨터’라는 시뮬라크라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도구가 있다. 컴퓨터가 발명된 지 100년도 안 된 오늘.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고, 대도시를 시뮬레이션하며, 생명체들의 진화 과정을 재생한다.

그렇다면 천년만년 뒤 우리의 후손들은 어쩌면 우주 전체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닉 보스트룸(Nick Bostrum) 교수는 주장한다. 언젠가 인류는 세상을 완벽히 시뮬레이션 할 능력을 갖게 될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인류의 역사와 생명의 기원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하듯, 우리의 먼 후손들도 자신의 과거를 시뮬레이션 할 거라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우리 후손들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너. 우리 모두 시뮬라크라들이라고.

원본은 단 하나지만 복제는 무한이다. 거리를 산책하다 우연히 ‘모나리자’를 발견했다 가정해 보자. 복제품일까, 원본일까?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을 단 하나의 원본을 내가 발견했을 확률은 0에 가깝다. 우주도 비슷하다. 원본 우주는 단 하나지만 시뮬레이션 우주는 무한이다. 우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원본이기보다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더 높다는 결론이다.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존재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된다. 1000억 개의 별들로 구성된 1000억 개의 은하들. 이 무한의 우주에 왜 우리만 존재하는가? 현재 우주는 인류만 존재하는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란 것이 답이다. 우주의 원리는 신기할 정도로 정확히 수학적이다. 수학이 단순히 인간의 발명품이라면, 어떻게 ‘뇌’라는 1.5㎏짜리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낸 규칙을 통해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우주의 법칙을 표현할 수 있을까? 우주 그 자체가 수학을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란 것이 그 답이다.

그렇기에 미국 MIT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 교수는 “우주와 수학은 사실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역시 MIT의 세스 로이드(Seth Lloyd) 교수는 “우주는 거대한 컴퓨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컴퓨터여야 할까?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과학의 정밀성이란 단편에서 완벽히 정확한 지도는 결국 실물과 동일한 크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MIT 로이드 교수에 따르면 빅뱅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우주의 모든 계산들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선 우주 전체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된다. 우주를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선 우주보다 더 큰 컴퓨터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연법칙은 시뮬레이션의 기본 변수”
그렇다면 만물의 법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자연의 법칙’은 사실 현재 진행 중인 시뮬레이션의 기본 변수(parameter)들일 뿐이다. 우주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를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 거대한 컴퓨터일 수 있다. 물론 그들 역시 더 발달된 존재들의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뮬라크라의 시뮬라크라의 시뮬라크라의… 시뮬라크라일 수도 있겠다.

이 모든 주장은 물론 가설들일 뿐이다. 아니, 새로운 사이비 종교가 되기 딱 적절한 발언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과 사이비 사이엔 증명이란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란 가설을 증명할 수 있을까? 물리학자 빈(Silias R. Bean)·다부디(Zohreh Davoudi)·새비지(Martin J. Savage)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우주 시뮬레이션들은 공간적 단위로 나눠진 격자(lattice) 모양의 배경을 지닌다. 격자들의 간격이 좁을수록 시뮬레이션 된 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 레벨이 높아진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움직이는 입자들의 최고 에너지가 정해져 있을 것이다. 먼 우주에서 발생된 것으로 알려진 ‘초고에너지 우주선(ultra-high energy cosmic ray)’들은 1020eV(전자볼트)를 넘지 못한다. 마치 한정된 격자를 통해 만들어진 듯하다.

만약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모든 시뮬레이션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 답이다. 그것이 언제일까? 힌두교는 존재란 아픔은 끝없이 반복되며, 현실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야 무한의 반복에서 해방된다고 가르친다.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이 시뮬레이션이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神)은 무엇일까? 우리를 시뮬레이션 하는 우주 최고의 ‘해커’일지도 모른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