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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유명인에 집착할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4. 6. 12:39

 

세상 주연급 삶에서 내 인생 해답 찾으려고?

김대식의 'Big Questions' <11> 우리는 왜 유명인에 집착할까

김대식 KAIST 교수 dskim@ee.kaist.ac.kr | 제333호 | 20130728 입력
고대 그리스 시대 세계 7대 불가사의. 1 이집트 피라미드, 2 바빌론의 공중정원, 3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4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5 마우솔로스의 영묘, 6 로도스의 거상, 7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위키피디아]
이집트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마우솔로스의 영묘, 로도스의 거상,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피라미드 외엔 오늘날 대부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겐 꿈에 그리는 세계 7대 불가사의들이었다. 너무도 거대해서 나약한 인간과 달리 영원히 존재할 거라 믿었던 최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빚은 것들은 인간을 닮는 것일까? 병으로 죽고 시간에 잊히는 우리의 운명과 같이 대부분 불가사의들은 지진, 해일, 전쟁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신전의 운명만 달랐다. 리디아(Lydia) 영토 에페수스에 지어진 이오니아 최대 건축물 아르테미스 신전! 길이가 130m가 넘고 18m 높이의 기둥들로 장식된 이 초대형 건축물은 그리스 신전 가운데 첫 대리석 신전이자 인간에게 고의적으로 ‘살해된’ 첫 건물이었다.

기원전 356년 7월 21일. 에페수스의 한 젊은 청년이 신전에 불을 지른다. 맹렬한 열기에 대리석은 이산화탄소를 내뿜기 시작했고, 이산화탄소 없인 건물에 붙지 않는 대리석은 메마른 각질같이 신전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갔다. 불은 밤새도록 탔고, 다음 날 아침 여신의 신전엔 잿더미만 남았다. 분노와 좌절로 거리에 주저앉은 에페수스 시민들에게 방화범은 말했다. 돈도, 권력도, 증오도 아니었다고. 단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알리고 싶었다고. 자신은 다른 인간들같이 세상의 기억에서 이름 없이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고.

왜 인간은 유명해지고 싶은 것일까? 우선 유명해짐으로써 직접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해 보인다. 모든 영장류들은 집단생활을 한다. 철갑 같은 피부나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인간은 협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에는 계급이 있고, 계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최고 권력자인 알파는 가장 좋은 것을 먹고, 원하는 모든 여성을 통해 자식을 가질 수 있다.

알파가 아닌 나머지 구성원들은 최고 권력자의 행동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가 웃으면 안심해도 되지만, 화를 내면 바로 긴장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들면 내 숨통을 끊을 수도, 나를 집단 밖으로 몰아낼 수도 있다. 안락한 동굴과 안전한 마을에서 쫓겨난 나는 며칠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은 그래서 사형보다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os), 즉 추방을 더 두려워했고, 피렌체에서 쫓겨난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라는 추상적 사랑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가? 비행기만 타면 전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오늘날 역시 고향에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다면 몇 명이나 해외로 나가려 할까?

할리우드의 벽화에 그려진 스타들.
공식 병명으로 등재된 ‘유명인 숭배증’
알파가 아닌 나에게 권력자의 미세한 표정을 구별하고 기억하는 건 생존을 위한 최고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최고 권력자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공동체 최고의 유명인이 되고, 인간 사회는 자연스럽게 유명인과 무명인으로 나뉘게 된다. 내가 관심을 보여야 하는 사람이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보다 많다면, 나는 약자이며 을이다. 나는 공동체의 배경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힘, 노력, 재능, 운 덕분에 내 행동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내가 관심 주는 사람보다 많다면, 나는 갑이며 공동체의 주인공이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유명해지고 싶다’고 대답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살아남고 싶다’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힘 혹은 권력이 있으면 유명하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힘 혹은 권력이 있는 것일까? 아르테미스 신전의 방화범은 사형당했고,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암살자로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 했던 광팬 마크 체프먼(Mark Chapman)은 여전히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힘은커녕 목숨과 자유조차도 지키지 못한다. 혜택이나 이득도 없는데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왜 우리는 유명인에게 그리도 관심이 많을까. 유명 연예인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고,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은 어떤 이들에겐 최고 관심사가 되곤 한다. 영국인 36%가 병적일 정도로 유명인들에게 집착한다고 한다. ‘유명인 숭배증(Celebrity Worship Syndrome·CWS)’이란 병명이 공식적으로 생길 정도다.

메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제임스 딘… 할리우드의 전설 같은 스타들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과 오늘날 K팝 아이돌에 대한 집착이 우리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스타는 우리들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무관심하다고 공동체에서 추방될 리 없고, 아이돌에게 집착한다고 그들의 명예와 부를 내가 얻는 것도 아니다. 스타의 지위는 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해석을 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유명인에게 집착하는 건, 그들을 통해 세상과 나의 인생이 설명되기 때문이라면? 세상은 인간에게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숲에서 튀어나온 맹수들이 가족을 잡아가고, 쏟아진 비에 세상은 물바다로 변한다. 어제까지 뛰놀던 아이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숨을 쉬지 않고, 먹을거리 풍성했던 여름이 겨울로 접어들면 세상은 꽁꽁 얼어붙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은 잔인하지만 우리는 잔인함의 이유를 모른다. 이유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를 못하면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불확실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내면의 카오스에 무기력한 현대과학
최초의 인간에게 우주는 카오스였다. 원인과 이유가 없는 ‘참을 수 없는 무질서’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석기시대 아인슈타인이라고 하자. 그의 뇌 신경회로망 사이로 유혹적인 생각 하나가 바이러스같이 퍼지기 시작했다. 만약에 나, 너, 우리 외에 다른 존재들이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로 그들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원인이라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늑대들에게 쫓겨 해가 쉬지 않고 동에서 서로 도망 다니는 것이라면? 바람은 세상 끝에 사는 거인들의 거친 숨이라면? 천둥은 아버지 같은 하늘 신의 노여움이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자연현상 하나하나에 보이지는 않지만 익숙한 존재를 연결시키는 순간 무질서의 카오스는 질서의 코스모스(cosmos)로 변한다. 천둥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버지의 노여움은 너무나 친숙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코스모스를 얻었지만 언제든 두려운 카오스로 쫓겨날 수 있다. 만물의 원인인 신들의 동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왜 하늘 신은 노여워하고 바다신은 늘 태풍을 일으키는 것일까. 해답은 하나. 신들에게 인간과 동일한 동기를 부여해 주면 된다. 제우스 신은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늙은이고, 아레스는 바람피우는 아내를 떠나지 못하는 멍청한 싸움꾼이며, 포세이돈은 큰형에게 기죽어 사는 만년 둘째다. 올림포스 신들이야말로 원조 막장드라마에 출연한 연예인들이었고, 그들에 대한 가십과 집착과 관심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만의 코스모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 최초로 단일신을 믿었던 파라오 ‘아크나톤’.
태양신을 믿은 파라오 ‘아크나톤’
하지만 신들의 유치한 막장드라마만이 만물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 필요는 없다. 고대 이집트 제18대 왕조 아크나톤은 어쩌면 인류 최고의 혁신자였는지도 모른다. 이름이 아멘호테프였던 그는 재위 5년 때 선포한다. 우주에는 단 하나의 신만 존재한다고. 뱀·늑대·사람처럼 생긴 수백, 수천의 신들은 원래 없고 오로지 태양신 ‘아톤’ 하나만 존재하며 만물의 모든 원인은 바로 그 유일신에게 있다고. 자신의 이름도 ‘아톤의 종’, 고로 ‘아크나톤’으로 바꾼 그는 하루아침에 우주의 모든 질서를 단 하나의 존재만을 통해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단 한 명의 수퍼스타를 통해 만물의 질서를 받아들이기에 인간의 두려움은 너무나 컸던 것일까? 아크나톤의 기억은 이집트 역사에서 지워졌고, 우리는 여전히 마치 올림포스 신 같은 스타들을 통해 나만의 질서를 만들려 한다. 아무리 양자우주론과 진화론이 만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인간에겐 커다란 질문 하나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질서의 코스모스는 대부분 인간들이 느끼는 내면의 카오스에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배경인물에 지나지 않는 보통 사람 ‘우리’와 달리 유명인은 사회의 갑이며 공동체의 주연급 인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불안한 내 마음의 코스모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 같아 보이는 타인의 삶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하찮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설명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방화범을 처형한 에페수스 관리들은 결정한다.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신전을 불지른 자의 이름은 인류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져야 한다고. 방화범의 이름을 언급하는 행위는 사형으로 처벌하겠다고. 하지만 역사란 아이러니의 다른 이름일 뿐일까? 그 결정을 내린 에페수스 관리 그 누구의 이름도 우리는 모르지만, 방화범의 이름은 알려져 있다. 바로 헤.로.스.트.라.투.스(Herostratus)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했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