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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건조해서 슬픈 김득구 묘비명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1. 23. 21:18

 너무나 건조해서 슬픈 김득구 묘비명

[중앙일보] 입력 2013.11.22 00:05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김득구 묘소.

지난 18일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기억하세요? 오늘이 김득구 선수가 사망한 날이에요.”

지금도 기억한다. 일요일 오전이었다. 한국인 권투선수는 정말 사력을 다해 싸웠다. 14라운드가 시작되고 19초 만에 다운됐을 때도 다시 일어설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고, 나흘 뒤인 1982년 11월1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그 일요일 오전의 권투 경기는 이상하게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흘렀고 김연수가 쓴 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날아온 젊은이가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시합이 사실은 카지노 손님의 여흥을 위한 이벤트였다는 걸 알고 말았다. 소설을 읽기 전에 라스베이거스에 갔었고 권투 시합이 열렸던 시저스펠리스 호텔에도 가봤다. 그러나 그 현기증 이는 공간이 김득구 선수가 쓰러진 현장이라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한국인의 기상을 만천하에 떨치고 숨진 영웅의 죽음은 기실 너무 초라한 것이었다. 아니, 억울한 것이었다.

이태 전 초여름 강원도 고성에 갔을 때였다. 취재에 동행한 군청 공무원이 불쑥 물었다. “김득구 선수 아세요? 우리 마을 출신이에요. 묘도 있어요.” 당장 묘소를 찾아갔다.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마을 뒤편 야트막한 구릉에 그의 묘소가 있었다. 오랫동안 찾는 이가 없었는지 잡초가 우거졌다. 겨우 풀숲을 헤치고 묘비 앞에 서니, 팔이고 다리가 온통 긁혀 있었다. 묘비 뒷면에 적힌 몇 줄의 약력을 읽어 내려갔다.

‘1956년 8월 10일 출생. 본명은 이덕구였으나 어머니가 김호열씨와 재혼. 김호열의 호적에 1967년 10월 23일 입적하면서 김득구로 개명 …. 1982년 6월 5일 이○○와 약혼하고 1983년 6월 23일 유복자 김○○ 출생…. 1982년 11월 14일 세계라이트급 도전. 11월 18일 미합중국 라스베이거스 대저투스프링 주립병원에서 사망.’

6월의 아침 햇볕이 왜 이리 뜨거웠던 것인지. 눈에 땀이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묘비에 새긴 이 멀건 문장을 읽고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리 없었으니까.
손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