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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7. 2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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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교수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인터뷰 의뢰를 받고 인터넷에서 가장 먼저 세 글자 ‘권영민’을 검색해 보았다. 예술가의집이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협력하여 권영민의 문학 콘서트를 방송 제작하고 있고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프로그램 담당자로 권 교수와 만나고 있다. 7월은 한국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을 또 8월은 시를 다루는 총 8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문학과 한국 작가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는 권영민 교수,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제대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온화하면서도 강건함이 느껴지는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고뇌하며 글 쓰는 젊은 청년 예술가였다.

 

 
이연경
(아르코미술관)

Q. 선생님께서는 서울대학교에서 3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신 교수이자 학자이기 전에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오노마토포이아의 문학적 한계성>으로 문단에 데뷔한 아티스트이셨더군요. 
글 쓰는 청년 권영민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오노마토포이아의 문학적 한계성>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국문과에 입학했어요. 작가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부족한 감성을 짜내기에 골몰하며 대학을 다니는 동안 교수님들로부터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내가 한국문학 연구에 대해 막연하긴 하지만 어떤 목표를 갖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였어요. 그때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하였습니다. 엉뚱한 객기로 만들어 낸 글인데, 김유정 소설을 문체론적으로 분석한 것이죠. 이것이 평론 부문 당선작이 되었지만 나는 문학의 문 앞에서 서성대는 엉터리 국문과 학생에 불과했어요. 몸과 마음이 모두 가난에 떨고 있었던 그때, 나는 상금을 타서 트렌치코트를 사 입고 문리대 교정 마로니에 아래를 걸어보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당시 신춘문예 당선의 소식을 안고 학과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칭찬은커녕 저를 크게 호통치셨어요. 나의 부족한 식견도 문제였지만 건방진 태도와 편향된 시각과 왜곡된 현실 인식이 교수님을 불안하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교수님 앞에서 절대로 평론가라는 명패를 함부로 내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연구실을 벗어날 수 있었고 오랜 시간을 터무니없는 문학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문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참으로 속수무책이었어요. 예술적 창조성의 가치에 비한다면, 문학 연구라는 것이 얼마나 실속이 없는 것인가에 대해 나는 끝없는 회의에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서도 나는 학문의 길에 대한 신념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남들이 2년이면 끝내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4년 넘게 머뭇거렸습니다. 문학 창작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꿈과 욕망은 그 시절 어두운 동숭동 문리대 연구실에서 서서히 무너져 버렸다고 할 수 있어요.  

Q. 젊은 청년 권영민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많은 고민과 함께 한국문학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서울대학교에 재직하시게 됩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학에 초빙 교수로 가시게 되셨지요? 1980년대 중반이면 서울올림픽 전이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세계의 인식이 당연히 없었을 시절이어서 한국문학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 상황일 것 같습니다만 당시 한국문학에 관한 강의를 하시면서 에피소드가 있었을까요?

- 서울대와 하버드대의 교류는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대학이 최초로 교류한 것은 하버드-옌칭 프로그램을 통해서인데요.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을 선발해 하버드에서 연구할 기회를 주고 연구비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 분야는 한국학으로, 하버드 동아시아어문화연구소에 한국학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버드대학 엔칭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던 1985년 당시는 한국문학 강좌가 없었습니다.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던 마샬 필 박사와 함께 하버드대학에서의 한국문학 강좌 개설을 준비하여 1986년 봄 학기에 처음으로 ‘한국문학’이라는 강좌를 동아시아어문화과에서 열었습니다. 그런데 개강을 하고 보니 정식 수강생이 오직 한 사람뿐이어서 절망감에 빠졌어요.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던 한 친구와 낭만적인 캠퍼스 로맨스를 꿈꾸고 실천하던 또 다른 학생을 포함한 3명의 학생들과 강좌를 계속하였고 한국문학에 관한 여러 문제들을 서로 깊이 있게 토론하였지요. 그리고 내가 펴낸 <해방 40년의 문학-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하여 <유형의 땅(Land of Exile)>이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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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97년 이상 사후 60년 학술대회가 열린 이듬해 <이상문학연구 60년> 발표, 2010년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총 5권의 이상 전집을 펴내셨는데요. 1권은 시, 2권은 단편소설, 3권은 장편소설, 4권은 수필, 원문 등, 5권은 이상 작품 연구로 구성하셨습니다. 오랜 시간 정성과 공이 들어간 소중한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2010년 아르코미술관의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木3氏의 出發>에서도 ‘이상 텍스트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지요? 선생님의 ‘이상’ 연구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또 선생님 자신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입니까?

- 나는 참으로 오랜 기간을 두고 이상 문학과 씨름을 해왔어요. 이상의 창조적 상상력을 일반 독자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정본화된 텍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상 전집을 다시 엮었고 이상의 개인적 삶만이 아니라 그의 문학과 예술 속에 숨겨진 ‘비밀’을 더 깊이 파헤쳐 그 문학적 위상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 이상 연구를 지속해 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문학 가운데 인간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하여 이상처럼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던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어요. 이상은 사물의 현상과 본질의 대립에 대해 가장 깊이 있게 고뇌하였으며 개인과 사회의 부조화를 끈질기게 문제 삼았던 모더니스트였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찾아낸 해답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차단해 버렸습니다. 그는 동경에서 쓴 소설 <실화>의 첫머리에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자기 삶과 문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구절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가 유별나지요. 그가 숨기고자 했던 비밀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설명하기 위해 텍스트의 치밀한 분석을 소개했던 것이 바로 그 강연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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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창작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주로 문학 작품을 통해서 얻게 된다는 말을 합니다. 문학은 미술, 건축, 디자인,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와 교류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문학과 예술의 경계 넘어서기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다시 이상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이상은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둘러싼 문화적 조건에 일찍 눈을 떴던 천재이지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꾸면서 현대미술의 변화와 그 미학적 변주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는 동안 현대 기술 문명을 주도해 온 물리학과 기하학 등에 관한 수준 높은 지식을 터득했답니다. 새로운 예술 형태로 주목되기 시작한 영화에도 유별난 취미를 키웠던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 결과 이상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바로 그것이 그의 문학과 예술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읽고 공부할수록 좋을 만큼 문학은 다양한 예술 분야와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인연이 깊은데요.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예술가의집 ‘권영민의 문학 콘서트’ 프로그램에서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강연을 하십니다. 요즘 문학 작품이 너무 읽히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안타까운 상황인데요. 한국문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증가 내지는 대중과의 소통 증대라는 취지에서 시작하신 것으로 짐작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권영민의 문학 콘서트’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제가 지난해에 서울대학교를 퇴임한 후 새롭게 시도해 보고 있는 것이 ‘권영민의 문학콘서트’입니다. 우리 사회의 공적 담론들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문학자로서의 불만 때문에 이런 대중적인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평생을 연구실에서 살아온 제가 직접 대중 독자와 함께 문학적 대화와 토론을 펼쳐 보임으로써 사회 문화적 담론의 공간에 문학의 창조적 상상력과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어 보자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7월 4일 ‘한국문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라는 주제로 신경숙 작가를 초대하여 첫 번째 시간을 열었습니다. 말씀처럼 7월은 11일, 18일, 25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각각 이광수의 <무정>-근대 소설의 출발, 염상섭의 <만세전>-식민지 현실의 인식,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모던 도시 경성의 공간 구성으로 꾸몄고 8월은 1일, 8일, 22일, 29일 각각 김소월의 <진달래꽃>-노래로서의 시, 이상의 <오감도>-보는 것으로서의 시, 이병기의 시조 <난초>-감각성의 발견, 2013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인 유홍준 작가와 함께 ‘현대시, 그 서정의 폭과 깊이’라는 주제의 문학 강연을 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문학 강연과 함께 시와, 요술당나귀, 김간지x하헌진, 한국인, 솔솔부는봄바람, 씨없는수박김대중, 정가악회, 김일두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으니 보러 오시고요. 

Q. 지난 6월 제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작품과 작가(유홍준 시인)가 발표되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문학사상사의 편집 주간으로 계시면서 문학상 수상 작품을 심사하는 일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 서양의 한 문학이론가가 주장하고 있는 비평의 역할을 소개하고 싶네요. 비평은 예술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텍스트가 감추고 있는 것 등을 독서를 통해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기 전에 그것이 지니고 있는 미적 특질을 해석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지요. 가치에 대한 판정은 실체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전제할 경우에만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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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랜 기간 한국문학과 작가를 연구하셨는데 혹시 선생님께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저는 누구보다도 이상 문학을 깊이 다루었는데 실제로 좋아하는 시인은 한용운과 정지용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문학적 출발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기만의 시적 형태와 시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느끼는 시적 긴장이 바로 이 두 분의 시를 읽는 즐거움입니다.  

Q. 선생님의 한용운에 대한 애정은 지난 2007년부터 한용운의 모든 작품의 원고를 조사하기 시작하여 2011년 한용운 전집을 펴내신 것으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화제를 확장하여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해서 여쭈어 보겠습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오랜 세월 선생님께서 고민하고 계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한글 교육 국가 브랜드 육성을 목표로 전 세계 총 44개국 90개소에 세종학당을 설립하고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집중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나 운영에 있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한국문학이 이질적인 외국문학 속에 들어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화해의 만남을 이루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문학적인 기법과 주제에 대한 독자들의 고급한 취향의 문제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어요.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서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문학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공감이 없이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가능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문학이 세계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한국문학 전문가를 제대로 키워야 합니다.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고 한국문학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전문연구가를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Q.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정서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문학이라는 말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언어와 문학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와 사람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타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이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 경우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학에 녹아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부각시키고 한국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 신진 작가들이나 후학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문학이 다른 분야보다 점차 그 영향력이 좁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문학의 힘은 여전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대에도 문학은 늘 힘없는 사람들 편이었고 어두운 구석에서 출발했어요. 작가라면 자기 작업에 대한 믿음과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멋지게 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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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權寧珉)

1948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1984)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1981~2012)하면서 미국 하버드대 한국문학 초빙교수, 버클리대 한국문학 초빙교수, 일본 동경대 한국문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 현대문학사>(전2권), <한국민족문학론연구>, <우리문장강의>, <서사 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문학의 이해>, <한국 현대소설의 이해>, <한국현대문학의 이해>, <이상텍스트연구> 등이 있다. 문학평론집 <소설과 운명의 언어>, <문학사와 문학비평> 등과 <이상전집 1-4>, <한용운문학전집 1-6>,<이상문학의 비밀 13>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평론상, 서울문화예술평론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평론상, 만해대상 학술상, 시와시학 평론상,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상 등을 수상했다.

[기사입력 : 2013.07.29